무굴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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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국민국가의 형성

1848년 혁명이 유럽을 휩쓸었다. 이탈리아와 독일이 통일되면서 잘게 쪼개져 있던 유럽 지도가 큰 덩어리로 재편됐다.

한반도

조선 후기

세도정치와 삼정 문란이 겹쳤다. 서양 선박이 연안에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문을 닫아걸었다.

전쟁 5건

영국-미얀마 전쟁1824 – 1885
영국 동인도회사 vs 콘바웅 왕조

콘바웅 왕조가 아삼과 마니푸르로 팽창해 영국령 벵골과 국경을 맞대자 세 차례 전쟁이 벌어졌다.

제1차 전쟁·양곤 점령 1824–1826제2차 전쟁·하부 미얀마 병합 1852제3차 전쟁·만달레이 함락 1885티보 왕 인도 유배

결과첫 전쟁으로 아라칸과 테나세림, 둘째로 양곤 일대, 셋째로 나라 전체를 잃었다. 마지막 왕 티보는 인도로 유배됐고 미얀마는 인도 제국의 한 주가 됐다.

3차례 · 왕조 멸망
태평천국의 난1851 – 1864
청 vs 태평천국

과거에 낙방한 홍수전이 자신을 예수의 동생이라 믿고 배상제회를 만들었다. 기근과 아편전쟁 뒤의 혼란 속에 광시의 농민들이 모였다.

진톈 봉기 1851난징 점령·천경 1853톈진 내분 1856천경 함락 1864

결과난징을 수도로 14년을 버텼으나 내분과 증국번의 상군, 서양의 상승군에 무너졌다. 2천만 명 이상이 죽은 19세기 최대의 전쟁이었고, 청은 한인 지방 군대에 기대게 되어 몰락의 길로 들어섰다.

14년 · 사망 2천만 이상
크림 전쟁1853 – 1856
러시아 vs 오스만·영국·프랑스·사르데냐

성지 관할권 다툼을 구실로 러시아가 오스만령 몰다비아·왈라키아를 점령하자 영국과 프랑스가 오스만 편에 섰다.

시노프 해전 1853알마 전투 1854발라클라바 — 경기병 돌격 1854세바스토폴 함락 1855

결과세바스토폴 요새를 1년 포위한 끝에 러시아가 졌다. 철도·전신·사진·종군기자가 처음 쓰였고 나이팅게일이 간호를 바꿨다. 러시아는 농노제를 개혁했고 빈 체제의 강대국 협조가 깨졌다.

3년 · 사망 50만 이상
세포이 항쟁1857 – 1858
인도인 병사와 각지 세력 vs 영국

소와 돼지 기름을 바른 탄약통을 입으로 물어 뜯게 한 것이 발단이었다. 힌두와 무슬림 모두에게 금기였다.

델리칸푸르러크나우

결과쌓인 것이 터진 것이다. 진압 뒤 무굴 마지막 황제 바하두르 샤 2세가 미얀마로 유배되고, 동인도회사 대신 영국 정부가 직접 다스리게 된다.

이탈리아 통일전쟁1859 – 1870
사르데냐 왕국·가리발디 의용대 vs 오스트리아·교황령·나폴리 왕국

여러 개의 소국과 외세(오스트리아) 지배 지역으로 나뉘어 있던 이탈리아반도를 사르데냐 왕국 중심으로 통일하려는 리소르지멘토(부흥) 운동이 절정에 달했다.

솔페리노 전투 1859천인원정대 1860로마 병합 1870

결과카보우르 총리의 외교와 가리발디의 의용군(천인원정대)이 시칠리아·나폴리를 점령하며 통일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1861년 이탈리아 왕국이 선포됐고, 1870년 로마 병합으로 통일이 완성됐다.

11년 · 이탈리아 왕국 통일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31명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과학1858 · 박물학자
1823 – 1913

다윈과 동시에 진화론에 이르다

  • 자연선택 이론 독자 도달 1858
  • 다윈과 공동 발표
  • 생물지리학의 기초를 놓음
다윈과학1859 · 비글호의 박물학자
1809 – 1882

갈라파고스의 새들을 보고 자연선택을 떠올렸다. 20년을 미루다 종의 기원을 냈다.

  • 비글호 항해 1831–1836
  •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
  • 종의 기원 출판 1859
나이팅게일사회1855 · 크림 전쟁의 「램프를 든 여인」, 근대 간호학의 창시자
1820 – 1910

스쿠타리 병원의 사망률을 위생 개선으로 40%에서 2%로 낮췄다. 통계 그래프로 정부를 설득한 최초의 사람 중 하나다.

  • 크림 전쟁 야전병원 간호(1854–1856)
  • 나이팅게일 간호학교 설립(1860)
  • 「장미 도표」— 통계 시각화의 선구
리빙스턴탐험1855 · 아프리카 내륙을 걸어서 횡단한 선교사 탐험가
1813 – 1873

빅토리아 폭포에 이름을 붙였고 노예무역의 참상을 알렸다. 「리빙스턴 박사님이시죠?」라는 인사가 그를 다시 세상과 이었다.

  • 아프리카 대륙 횡단(1853–1856), 빅토리아 폭포
  • 잠베지 원정, 노예무역 고발
  • 스탠리와 조우(1871), 잠비아에서 사망
최제우사상1860 · 동학을 연 사람
1824 – 1864

사람이 곧 하늘이라 했다. 신분에 상관없이 사람이 같다는 말은 그때 조선에서 위험한 말이었다.

  • 1860년 동학 창시
  • 인내천 — 사람이 곧 하늘
  • 1864년 혹세무민으로 처형
베니토 후아레스정치1860 · 멕시코의 원주민 대통령
1806 – 1872

사포텍 원주민 출신으로 스페인어를 열두 살에 배웠다. 프랑스가 세운 황제를 몰아내고 공화국을 지켰다. 교회와 군의 특권을 없앤 개혁법을 밀어붙였다.

  • 레포르마 개혁
  • 막시밀리안 황제 축출
  • 이웃의 존중이 곧 평화다
주세페 가리발디장군1860 · 천 명의 의용군으로 시칠리아와 나폴리를 얻어 사르데냐 왕에게 바쳤다
1807 – 1882

천인원정대를 이끌고 시칠리아와 나폴리 왕국을 점령한 뒤, 권력을 챙기지 않고 그대로 사르데냐 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에게 헌납했다. 이탈리아 통일의 상징적 인물이다.

  • 천인원정대(1860)로 시칠리아·나폴리 점령
  • 점령지를 사르데냐 왕에게 헌납
  • 여러 나라의 독립운동에도 참여한 국제적 혁명가
김정호과학1861 · 대동여지도를 만든 사람
1804 무렵 – 1866 무렵

22첩을 접었다 펴면 전국이 된다. 목판에 새겨 여러 벌 찍을 수 있게 했다. 지도를 소수의 비밀에서 꺼낸 것이다.

  • 대동여지도 — 22첩 목판본
  • 10리마다 눈금을 넣어 거리를 재게 함
  • 전국을 답사했다는 이야기는 후대의 창작으로 본다
링컨정치1863 · 미국 16대 대통령
1809 – 1865

연방을 지키고 노예 해방을 선언했다. 전쟁이 끝난 직후 암살됐다.

  • 남북전쟁을 지휘
  • 노예해방 선언 1863
  • 게티즈버그 연설
맥스웰과학1865 · 전기·자기·빛을 하나로 묶다
1831 – 1879

네 개의 방정식으로 전자기학을 통합하고 빛이 전자기파임을 계산으로 보였다.

  • 맥스웰 방정식 1865
  • 빛=전자기파 규명
  • 아인슈타인 상대성이론의 단서
흥선대원군정치1866 · 조선 섭정
1820 – 1898

경복궁을 다시 세우고 서양과의 통상을 거부했다. 척화비를 전국에 세웠다.

  • 경복궁 중건
  • 서원 철폐와 호포제
  • 척화비와 통상수교 거부
멘델과학1866 · 수도원의 완두콩 연구자
1822 – 1884

8년간 완두콩을 교배해 유전의 규칙을 찾아냈다. 죽고 나서야 유전학의 아버지로 인정받았다.

  • 완두콩 교배 실험 1856–1863
  • 우성·열성 유전 법칙 발표 1866
  • 사후 1900년 재발견
켈빈과학1848 · 물리학자
1824 – 1907

절대영도를 계산하다

  • 절대온도 눈금 제안
  • 대서양 해저케이블 사업 참여
  • 열역학 이론 정립
도스토옙스키예술1866 · 「죄와 벌」「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소설가
1821 – 1881

총살 직전 사면돼 시베리아 유형을 살았다. 인간의 밑바닥과 신의 문제를 파고든 그의 소설은 20세기 철학과 심리학을 예고했다.

  • 사형 선고와 극적 감형(1849), 시베리아 유형
  • 「죄와 벌」(1866)「백치」「악령」
  •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1880)
젬멜바이스과학1847 · 산부인과 의사
1818 – 1865

손 씻기를 처음 주장한 의사

  • 손 소독으로 산욕열 사망률을 낮춤
  • 당대엔 배척당함
  • 사후에 세균설로 입증됨
카를 마르크스사상1867 · 「자본론」과 「공산당 선언」의 저자
1818 – 1883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역사를 계급투쟁으로 읽은 그의 사상은 20세기 절반의 세계를 움직였다.

  • 「공산당 선언」(1848, 엥겔스 공저)
  • 「자본론」 1권(1867)
  • 제1인터내셔널 창설(1864)
노벨과학1867 · 다이너마이트를 만들고 노벨상을 남긴 화학자
1833 – 1896

폭발 사고로 동생을 잃고도 안전한 폭약을 만들어 거부가 됐다. 「죽음의 상인」이라는 부고를 읽고 유산을 인류에 남겼다.

  • 다이너마이트 발명(1867)
  • 355건 특허, 90개 공장
  • 유언으로 노벨상 제정(1895)
메이지 천황정치1868 · 근대 일본의 상징이 된 천황
1852 – 1912, 재위 1867 – 1912

15세에 즉위해 막부를 끝내고 에도를 도쿄로 삼았다. 그의 이름을 딴 45년 동안 일본은 봉건 국가에서 열강이 됐다.

  • 왕정복고와 메이지 유신(1868)
  • 대일본제국 헌법 반포(1889)
  • 청일·러일전쟁 승리
멘델레예프과학1869 · 빈칸을 남긴 화학자
1834 – 1907

원소를 원자량 순으로 배열해 주기율표를 만들고, 빈자리에 미발견 원소를 예측했다.

  • 주기율표 발표 1869
  • 갈륨·게르마늄 등 예측 적중
  • 근대 화학 분류 체계의 토대
톨스토이예술1869 · 「전쟁과 평화」의 백작, 비폭력의 예언자
1828 – 1910

귀족으로 태어나 농민의 옷을 입고 죽었다. 그의 비폭력 사상이 간디를 거쳐 세계로 퍼졌다.

  • 「전쟁과 평화」(1869)「안나 카레니나」(1877)
  • 회심 후 「참회록」, 톨스토이주의
  • 간디와 서신, 비폭력 저항 사상
비스마르크정치1871 · 프로이센 재상
1815 – 1898

세 번의 전쟁으로 독일을 통일했다. 이후 20년간 유럽의 균형을 관리했다.

  • 세 차례 전쟁으로 독일 통일
  • 세계 최초의 사회보험
  • 동맹 체제로 유럽 균형 관리
에이다 러브레이스과학1843 · 최초의 프로그램을 쓴 사람
1815 – 1852

작동한 적 없는 계산 기계를 위한 절차를 최초로 적어 남겼다.

  • 해석기관 주석 집필 1843
  • 최초의 알고리즘 기록
  • 프로그래밍 언어 Ada의 이름
과학1843 · 물리학자
1818 – 1889

일이 열로 바뀐다는 것을 재다

  • 에너지 보존 법칙의 실험적 증명
  • 열의 일당량 측정
  • 에너지 단위 줄의 유래
시팅불장군1876 · 리틀빅혼에서 커스터를 물리친 라코타족 지도자
1831 무렵 – 1890

라코타족을 비롯한 여러 부족을 규합해 미군에 맞섰다. 1876년 리틀빅혼 전투에서 커스터 중령의 기병대를 전멸시켰으나, 결국 1890년 체포 과정에서 사살됐다.

  • 리틀빅혼 전투 승리 1876
  • 캐나다로 망명했다가 귀순
  • 운디드니 학살 두 주 전 사살됨
배비지과학1837 · 수학자·발명가
1791 – 1871

기계식 컴퓨터를 구상하다

  • 차분기관 설계
  • 해석기관 구상 1837
  • 에이다 러브레이스와 협업
빅토리아 여왕정치1877 ·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63년을 다스린 여왕
1819 – 1901, 재위 1837 – 1901

18세에 즉위해 산업혁명과 제국 팽창의 시대를 살았다. 인도 여제가 됐고 유럽 왕실의 할머니가 됐다.

  • 인도 여제 즉위(1877)
  • 앨버트 공과 결혼, 9자녀
  • 즉위 50·60주년 기념식 — 제국의 절정
에디슨과학1879 · 전구와 축음기를 만든 발명왕
1847 – 1931

1,093건의 특허. 멘로파크 연구소에서 발명을 산업으로 만들었고, 뉴욕에 세계 최초의 발전소를 세워 밤을 밝혔다.

  • 축음기(1877), 실용 백열전구(1879)
  • 멘로파크 연구소 — 조직적 발명
  • 펄스트리트 발전소(1882), 영화 카메라
피에르 퀴리과학1880 · 물리학자
1859 – 1906

압전 효과를 발견하다

  • 압전 효과 발견 1880
  • 마리 퀴리와 방사능 공동연구
  • 교통사고로 갑작스레 사망
코흐과학1882 · 세균학자
1843 – 1910

결핵균과 콜레라균을 찾다

  • 결핵균 발견 1882
  • 코흐의 공리 확립
  • 노벨생리의학상 1905
패러데이과학1831 · 제본소 견습공 출신 실험가
1791 – 1867

정규 교육 없이 독학해 전자기유도를 발견했다. 그의 실험을 맥스웰이 방정식으로 완성한다.

  • 전자기유도 발견 1831
  • 발전기 원리의 토대
  • 왕립학회 크리스마스 강연 창시
니체사상1883 ·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철학자
1844 – 1900

기독교 도덕을 「노예의 도덕」이라 불렀고 위버멘시와 영원회귀를 말했다. 44세에 광기에 빠졌고 그의 책은 20세기 사상을 뒤흔들었다.

  • 「비극의 탄생」(1872)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1885)
  • 「선악의 저편」「도덕의 계보」

그 무렵의 사건

1856
베서머 강철
녹인 선철에 공기를 불어넣어 강철을 값싸게 대량으로 만들었다. 철도·교량·마천루의 시대가 열렸다.
헨리 베서머는 대포를 만들다 철을 강철로 바꾸는 방법을 찾았다. 공기가 탄소를 태우며 열까지 내어 20분 만에 강철 몇 톤이 나왔고 값은 6분의 1로 떨어졌다. 카네기가 이 방법으로 미국 철강왕이 됐고, 브루클린 다리와 에펠탑, 시카고의 고층 건물이 뒤따랐다. 이후 지멘스-마르탱 평로와 20세기 산소 전로로 이어진다.
1859
종의 기원 출간
다윈이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를 발표했다. 초판 1,250부가 첫날 다 팔렸다.
비글호 항해에서 돌아온 지 20년 넘게 그는 원고를 묵혔다. 월리스가 같은 생각을 편지로 보내오자 서둘러 냈다. 생물은 변이하고 환경에 맞는 것이 살아남아 종이 갈라진다는 설명은 창조의 설계자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옥스퍼드 논쟁에서 「원숭이가 조상이냐」는 조롱을 받았지만, 이 책 이후 생물학은 물론 인간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1854
콜레라 대유행
존 스노가 런던 소호의 우물 손잡이를 떼어 냈다. 물이 병을 옮긴다는 증명이 공중보건의 시작이 됐다.
갠지스 삼각주의 풍토병이던 콜레라는 1817년부터 무역로를 타고 세계를 일곱 차례 휩쓸었다. 1854년 브로드가 우물 주변에서 열흘 만에 500명이 죽자 의사 스노는 사망자를 지도에 찍어 우물이 원인임을 보였다. 당시 정설은 나쁜 공기였다. 이후 런던은 하수도를 새로 깔았고 세균학이 뒤따랐다. 콜레라는 지금도 아이티·예멘에서 돈다.
1860
텐진·베이징 조약과 원명원 방화
제2차 아편전쟁 끝에 영불 연합군이 베이징에 들어와 황제의 여름 궁전을 불태웠다.
애로호 사건을 빌미로 영국과 프랑스가 다시 청을 쳤다. 함풍제는 열하로 달아났고 연합군은 유럽식 분수와 보물로 가득한 원명원을 사흘 동안 약탈한 뒤 불질렀다. 베이징 조약으로 톈진이 열리고 주룽이 영국에, 연해주가 러시아에 넘어갔으며 외국 공사가 베이징에 상주하게 됐다. 중국이 「백년국치」로 기억하는 장면이다.
1861
양무운동
아편전쟁과 태평천국의 충격 뒤 청이 서양 무기와 기술을 들여왔다. 「중체서용」— 정신은 중국, 기술은 서양.
증국번·이홍장·좌종당 등 한인 관료들이 강남제조국과 복주선정국을 세워 대포와 군함을 만들고, 유학생을 보내고 전신과 철도를 놓았다. 그러나 정치 제도는 손대지 않았다. 1894년 청일전쟁에서 이홍장의 북양함대가 메이지 일본에 궤멸되면서 30년 운동의 한계가 드러났고, 제도 개혁을 외치는 변법파가 나온다.
1862
임술농민봉기
삼정의 문란에 시달리던 진주 농민들의 봉기를 시작으로, 1862년 한 해 동안 전국 70여 곳에서 민란이 잇따라 일어났다.
세도정치 아래 탐관오리들의 수탈과 삼정(전정·군정·환곡)의 문란이 극에 달하자, 경상도 진주에서 몰락 양반 유계춘의 주도로 농민들이 봉기해 관아를 습격하고 탐관오리를 응징했다(1862년, 임술농민봉기). 이 소식이 전해지자 삼남 지방을 중심으로 전국 70여 개 고을에서 비슷한 농민 봉기가 잇따라 일어났다. 정부는 사태 수습을 위해 삼정이정청을 설치해 개혁을 약속했지만, 근본적인 제도 개혁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이 대규모 봉기는 조선 왕조 통치 체제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으며, 이후 동학농민운동으로 이어지는 19세기 후반 농민 저항의 흐름 속에서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된다.

교역로 1개

희망봉 항로1500 – 1900

바스쿠 다 가마 이후 400년. 지중해를 거치지 않고 아시아에 닿는 길이 열리며 베네치아와 오스만이 밀려났다.

오간 것후추와 면직물, 그리고 나중엔 차와 아편. 지중해를 거치지 않는 길이 베네치아와 오스만을 밀어냈다.
거점리스본 · 카나리아 · 희망봉 · 모잠비크 · 고아 · 말라카

무굴 제국

나라의 멸망 · 1857 · 마지막 황제가 시인으로 랑군에 유배됐다

이미 100년 전부터 델리 주변만 다스리는 명목상의 제국이었다. 세포이 항쟁이 바하두르 샤 2세를 명분상 지도자로 세우자, 영국은 항쟁을 진압한 뒤 그를 폐위해 버마로 유배했다. 아들들은 처형됐고, 통치권은 동인도회사에서 영국 왕실로 넘어갔다.

【그때 그 자리】

16세기 초 인도 북부는 델리 술탄국이 약해진 상태로 여러 세력이 다투고 있었다. 인구의 대다수는 힌두교도였고 지배층은 이슬람이었다.

바부르는 중앙아시아 페르가나의 작은 군주였다. 아버지 쪽으로 티무르, 어머니 쪽으로 칭기즈 칸의 후손이다. 사마르칸트를 되찾으려다 실패하고 카불로 밀려났다.

【왜 그렇게 됐나】

1526년 그가 파니파트에서 델리 술탄국 군대와 맞섰다. 병력은 1만 대 10만이었다.

그는 대포와 화승총을 썼다. 수레를 사슬로 이어 방벽을 만들고 그 뒤에서 쐈다. 코끼리 부대가 총소리에 놀라 자기 군대를 밟았다. 화약이 인도의 판을 바꾼 순간이다.

무굴이라는 이름은 몽골에서 왔다. 페르시아어로 몽골을 무굴이라 불렀다.

【어떻게 흘렀나】

손자 아크바르가 제국의 성격을 정했다. 그는 열세 살에 즉위해 49년을 다스렸다.

그의 핵심 정책은 통합이었다. 비무슬림에게 물리던 인두세 지즈야를 없앴다. 힌두 라지푸트 가문과 혼인하고 그들을 고위직에 썼다. 세금을 실제 수확에 맞춰 매기는 제도를 도입했다.

종교에 대한 태도가 특히 남달랐다. 궁정에 이슬람 학자와 힌두 브라만과 자이나교 승려와 조로아스터교도와 예수회 신부를 불러 토론시켰다. 자기는 글을 읽지 못했는데 남이 읽어 주는 것을 듣고 기억했다.

손자 샤 자한이 아내 뭄타즈 마할을 위해 타지마할을 지었다. 22년이 걸렸다. 흰 대리석에 페르시아와 인도와 이슬람 양식이 섞여 있다.

아우랑제브 때 영토는 가장 넓어졌지만 방향이 바뀌었다. 그는 엄격한 이슬람 정책을 폈다. 지즈야를 되살리고 힌두 사원을 헐었다. 데칸 원정에 25년을 쏟았다.

【그래서】

1707년 아우랑제브가 죽은 뒤 급격히 무너졌다. 마라타와 시크 세력이 일어나고 지방 총독들이 독립했다.

그 틈에 영국 동인도회사가 들어왔다. 1757년 플라시 전투에서 벵골 태수를 이겼다. 회사가 나라를 이긴 것이다.

1857년 세포이 항쟁 때 반란군이 마지막 황제 바하두르 샤 2세를 추대했다. 진압된 뒤 그는 미얀마로 유배돼 거기서 죽었다. 331년이었다.

【남은 것】

우르두어가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페르시아어와 아랍어 어휘가 인도 토착어와 섞인 말이다. 지금 파키스탄의 국어다.

음식도 남았다. 비리야니와 케밥, 그리고 커리에 쓰는 향신료 조합 상당수가 무굴 궁정 요리에서 나왔다.

아크바르의 통합 정책과 아우랑제브의 엄격한 정책은 지금 인도 정치에서 계속 인용된다. 무굴을 인도 역사의 일부로 볼 것인가 외래 지배로 볼 것인가가 현재의 논쟁이다. 교과서 서술이 정권에 따라 바뀌기도 한다. 400년 전의 나라가 오늘의 정치 언어가 된 경우다.

지도에서 보기: 1815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에도 막부 참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