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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아라비아에서 일어난 새 종교가 100년 만에 이베리아부터 인더스까지를 하나의 정치권으로 묶었다. 사산조는 사라지고 동로마는 영토의 절반을 잃었다.
신라가 당을 몰아내고 대동강 이남을 통일했고 북쪽에는 발해가 섰다. 신라 말 호족이 일어나며 후삼국으로 갈라진다.
해당 없음
관직에는 오래 붙어 있지 못하고 평생을 떠돌았다. 즉흥으로 지은 시 1,000여 편이 남았다.
궁재로서 왕보다 실권을 쥐었다. 투르에서 우마이야 기병을 보병 방진으로 막아냈다.
아바스가 우마이야 일족을 몰살할 때 혼자 살아 다섯 해를 도피해 이베리아에 닿았다. 거기서 코르도바에 나라를 세웠고 300년을 갔다.
「나라는 부서졌으나 산하는 남았다」— 이백이 하늘의 시인이라면 두보는 땅의 시인이었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나라의 멸망 · 744 · 글자를 남긴 유목 국가
동서로 갈라진 뒤 부흥했다가 다시 무너졌다. 위구르·카를루크·바스밀 연합이 마지막 카간을 죽이며 끝났다. 오르혼 비문은 튀르크어로 남은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중국의 비단과 말에 속지 말라」는 경고를 새겨놓았다.
【그때 그 자리】 552년 부민 카간이 유연을 무너뜨리고 세웠다.
몽골 초원에서 카스피해까지 뻗었다.
「돌궐」은 「튀르크」의 한자 표기다.
【왜 그렇게 됐나】 583년 동서로 갈렸다.
수가 이간했다. 「원교근공」과 함께 유목민을 다루는 기본 방식이다.
형제와 숙질 사이에 자리를 두고 다투게 만들었다.
동돌궐이 630년 당에게 항복했다.
힐리 카간이 사로잡혀 장안으로 끌려갔다.
당 태종이 「천가한(텡그리 카간)」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초원의 군주를 겸한다는 뜻이다.
50년 동안 당의 지배 아래 있었다.
【어떻게 흘렀나】 682년 다시 일어섰다.
쿠틀룩이 부족을 모아 독립했다. 제2돌궐 제국이다.
그 시기에 비석이 세워졌다.
「오르혼 비문」이다. 몽골 오르혼강 유역에 있다.
빌게 카간과 그 동생 퀼 테긴을 기려 732년과 735년에 세웠다.
돌궐 문자로 새겼다. 룬 문자와 모양이 비슷해 「튀르크 룬 문자」라 부른다.
튀르크계 언어로 된 가장 오래된 문헌이다.
1893년 덴마크 학자 톰센이 해독했다.
【그래서】 그 내용이 특별하다.
유목 국가가 스스로 남긴 기록이다.
대개 유목민에 대해서는 정주 문명의 기록만 남는다. 이것은 반대다.
그리고 자기 반성을 적었다.
「튀르크 벡들이여, 백성들이여, 들으라. (…) 중국인의 달콤한 말과 부드러운 비단에 속아 너희가 많이 죽었다.」
「그들의 달콤한 말과 부드러운 비단에 속은 튀르크 백성들아, 너희가 많이 죽었다.」
「가까이 살면 나쁜 지식을 준다. 좋은 땅에 살라고 하지 않는다.」
왜 나라가 무너졌는지를 자기 말로 설명한 것이다.
그리고 「내가 백성을 먹였다」는 표현이 반복된다. 유목 군주의 정당성이 무엇이었는지 보여 준다.
【남은 것】 744년 위구르가 돌궐을 무너뜨렸다.
그런데 「돌궐」이라는 이름은 남았다.
튀르크계 사람들이 서쪽으로 이동한다.
셀주크가 되고, 오스만이 되고, 지금의 튀르키예가 된다.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도 그 계통이다.
「튀르크」라는 말이 지금 2억 명 가까이가 쓰는 언어 계통의 이름이다.
오르혼 비문이 그 시작점에 서 있다.
튀르키예에서 그 비문을 국가 정체성의 뿌리로 삼는다. 앙카라에 복제품이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