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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알렉산드로스가 후계자를 정하지 못하고 죽자 부하 장군들이 제국을 나눠 가졌다. 셀레우코스·프톨레마이오스·안티고노스 왕조가 서로 싸우는 동안 서쪽에서 로마가 올라왔다.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해당 없음
한니발을 이탈리아에서 끌어내려 카르타고 본토를 쳤다. 자마에서 그를 꺾었다.
정장(亭長)이던 사내가 항우를 꺾고 400년 한 제국의 문을 열었다. 「사람을 쓸 줄 알았다」는 것이 스스로 꼽은 승인이었다.
힘은 산을 뽑고 기세는 세상을 덮었으나, 마지막 전투에서 사면초가에 갇혔다. 비극적 영웅의 전형이 됐다.
부력을 알아내고 지렛대의 원리를 밝혔다. 시라쿠사 공성 때 만든 기계들이 로마 함대를 여러 번 막았다.
아홉 살에 로마를 미워하겠다고 맹세했다고 전한다. 15년간 이탈리아 안에서 싸우며 로마를 여러 번 궤멸시켰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사건 · BC 194 · 위만조선
중국이 전국시대 혼란과 진·한 교체기의 격변을 겪던 시기, 연나라 사람 위만은 무리 천여 명을 이끌고 고조선으로 망명해 왔다. 준왕은 그를 믿고 서쪽 변경을 지키는 자리를 맡겼는데, 위만은 그 병력을 발판 삼아 도읍 왕검성을 기습해 준왕을 내쫓고 왕위를 차지했다(기원전 194년 무렵). 쫓겨난 준왕은 뱃길로 남쪽으로 내려가 한(韓)의 땅에 자리 잡았다고 전한다. 위만은 나라 이름을 그대로 「조선」이라 했지만, 그 이전 단군·기자 계통과는 다른 새 왕조라는 뜻에서 오늘날 역사학계는 이를 「위만조선」이라 구분해 부른다. 위만조선은 이후 손자 우거왕 대에 이르러 한 무제의 침공으로 멸망했다(기원전 108년).
기원전 3세기 말, 중국 대륙은 진나라가 무너지고 한나라가 들어서는 격변의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이 혼란을 피해 옛 연나라 땅에 살던 위만이라는 인물이 무리 천여 명을 이끌고 동쪽 고조선으로 망명해 왔다.
당시 고조선을 다스리던 준왕은 위만을 받아들여 나라의 서쪽 변경을 지키는 자리를 맡겼다. 위만은 이 변경에서 세력을 키워갔다.
얼마 뒤 위만은 「한나라 군대가 쳐들어온다」는 거짓 소식을 전하며 도읍 왕검성 방어를 자청해 병력을 이끌고 입성한 뒤, 그대로 준왕을 몰아내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기원전 194년 무렵). 쫓겨난 준왕은 뱃길로 남쪽 한(韓) 땅으로 내려가 그곳에 정착했다고 전한다.
위만은 나라 이름을 그대로 「조선」이라 이어갔지만, 단군·기자로 이어졌다고 여겨지던 이전 왕조와는 다른 계통이었다. 그래서 오늘날 역사학계는 이때부터를 「위만조선」이라 따로 구분해 부른다.
위만조선은 중국과 한반도 남부 사이의 중계무역으로 부를 쌓으며 강성해졌으나, 이를 견제하려던 한 무제의 대규모 침공을 받아 위만의 손자 우거왕 대인 기원전 108년 멸망했다. 그 자리에는 한의 낙랑군을 비롯한 사군이 설치됐다.
지도에서 보기: BC 2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만리장성 연결 진의 중국 통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