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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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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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원수정과 로마 평화

아우구스투스가 공화정의 외피를 남긴 채 1인 지배를 세웠다. 200년간 지중해 전역에 큰 전쟁이 없었고 속주마다 도시와 도로와 수도교가 깔렸다.

한반도

삼국의 성립

신라·고구려·백제가 차례로 서고 가야가 낙동강 유역에 자리 잡았다. 아직 연맹왕국 단계로 왕권이 강하지 않았다.

전쟁 1건

악티움 해전BC 32 – BC 30
옥타비아누스 vs 안토니우스·클레오파트라

카이사르 사후 로마를 나눠 가진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가 충돌했다.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와 손잡자 옥타비아누스는 이를 '동방에 넘어간 로마인'으로 몰았다.

악티움 BC 31알렉산드리아 BC 30

결과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가 패해 자결했다. 이듬해 이집트가 속주가 된다.

함선 약 400 대 500 · 하루 만에 결판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4명

아우구스투스정치BC 27 · 초대 황제
BC 63 – AD 14

공화정의 외피를 남긴 채 1인 지배를 세웠다. 200년의 로마 평화가 여기서 시작된다.

  • 악티움 승리로 내전을 끝냄
  • 공화정의 외피를 쓴 원수정 수립
  • 200년 로마 평화의 출발
베르길리우스예술BC 19 · 로마의 건국 서사시 「아이네이스」의 시인
BC 70 – BC 19

트로이의 아이네이아스가 로마의 조상이 된다는 이야기로 아우구스투스의 새 질서에 신화를 입혔다. 단테는 그를 저승길 안내자로 삼았다.

  • 「아이네이스」 12권
  • 「농경시」「목가」
  • 중세·르네상스 라틴 문학의 표준
클레오파트라정치BC 41 ·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를 사로잡은 이집트의 마지막 여왕
BC 69 – BC 30, 재위 BC 51 – BC 30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300년의 마지막 통치자. 로마의 힘을 빌려 왕국을 지키려 했으나 악티움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카이사르와 동맹, 아들 카이사리온
  • 안토니우스와 동방 재편
  • 악티움 패배 후 자결, 이집트의 로마 속주화
카이사르정치BC 44 · 종신 독재관
BC 100 – BC 44

갈리아를 정복한 군대로 로마를 차지했다. 공화정을 끝냈고 원로원에서 살해됐다.

  • 갈리아 정복
  • 루비콘을 건너 내전에서 승리
  • 율리우스력 도입

그 무렵의 사건

BC 27
아우구스투스
옥타비아누스가 첫 황제가 됐다. 200년의 로마 평화가 시작된다.
이후 200년간 지중해 전역에 큰 전쟁이 없었다. 도시와 도로와 수도교가 깔렸다.
BC 44
카이사르 암살
원로원에서 살해됐다. 공화정 회복 대신 제국이 왔다.
공화정 회복을 노린 암살이 오히려 제정을 앞당겼다.
30
예수의 처형
로마 속주 유대에서 벌어진 처형이 세계 종교의 출발점이 됐다.
속주의 처형 하나가 300년 뒤 제국의 국교가 되는 종교의 출발점이 됐다.

교역로 3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인도양 계절풍 항로BC 100 – 700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오간 것로마의 금화가 인도로 흘러가고 후추가 로마로 왔다. 로마 원로원이 금 유출을 걱정할 정도였다.
거점미오스호르모스 · 아덴 · 소코트라 · 무지리스

아우구스투스

사건 · BC 27 · 옥타비아누스가 첫 황제가 됐다. 200년의 로마 평화가 시작된다.

이후 200년간 지중해 전역에 큰 전쟁이 없었다. 도시와 도로와 수도교가 깔렸다.

【그때 그 자리】

기원전 44년 카이사르가 암살됐을 때 로마는 100년째 내전 중이었다. 그라쿠스 형제부터 마리우스와 술라,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까지 계속 피로 정권이 바뀌었다. 사람들은 공화정의 자유보다 안정을 원하는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카이사르의 유언장이 열렸을 때 후계자로 지목된 것은 열여덟 살의 종손 옥타비아누스였다. 아무도 그를 셈에 넣지 않았다.

【왜 그렇게 됐나】

그는 카이사르의 이름을 썼다. 그것만으로 카이사르의 병사들이 따라왔다.

안토니우스, 레피두스와 2차 삼두정치를 맺고 암살자들을 쫓았다. 기원전 42년 필리피에서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를 꺾었다.

그다음이 안토니우스와의 싸움이다. 옥타비아누스는 여기서 무력만 쓰지 않았다.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에게 홀려 로마를 이집트에 넘기려 한다는 이야기를 퍼뜨렸다. 안토니우스의 유언장을 강제로 열어 공개하기까지 했다. 여론을 무기로 쓴 것이다. 기원전 31년 악티움 해전에서 이겼고 이듬해 두 사람이 자살했다.

【어떻게 흘렀나】

이제 그는 카이사르가 저지른 실수를 피해야 했다. 양아버지는 왕처럼 보였기 때문에 죽었다.

기원전 27년 그는 원로원에 모든 권한을 돌려주겠다고 선언했다. 원로원은 도로 그에게 권한을 맡기며 아우구스투스, 곧 존엄한 자라는 칭호를 줬다. 그는 왕도 독재관도 아닌 제1시민, 프린켑스라 자칭했다.

형식은 공화정 그대로였다. 집정관을 뽑고 원로원이 열렸다. 다만 군대와 재정과 속주 임명권이 한 사람에게 있었다. 겉을 바꾸지 않고 속만 바꾼 것이다. 이것이 그의 가장 큰 발명이다.

실무도 촘촘했다. 상비군을 두고 퇴역병에게 줄 재원을 국가 예산으로 확보했다. 소방대와 경찰을 만들고 인구 조사를 했다. 로마를 벽돌의 도시로 물려받아 대리석의 도시로 남긴다고 말했다.

【그래서】

기원후 14년 일흔여섯에 죽었다. 41년을 다스렸다. 그 뒤 200년이 팍스 로마나다. 지중해 전역에서 큰 전쟁 없이 사람과 물자가 오갔다.

【남은 것】

8월이 그의 이름 아우구스투스에서 왔다.

그가 다스리던 시기에 유대 지역에서 예수가 태어났다. 로마의 도로와 치안과 그리스어 공용어가 뒷날 기독교가 퍼지는 통로가 됐다.

평가는 두 갈래다. 100년 내전을 끝내고 200년 평화를 만든 사람인가, 공화정을 껍데기만 남기고 1인 지배를 정착시킨 사람인가. 타키투스는 그가 평화라는 이름으로 자유를 가져갔다고 썼다.

안정과 자유를 맞바꾸는 거래가 어떻게 이뤄지는가를 보여주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성공한 사례로 지금도 인용된다.

지도에서 보기: BC 1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카이사르 암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