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다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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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년 전
AD 2025
시대
주요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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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서로마의 붕괴

제국이 동서로 갈라진 뒤 서쪽은 게르만 이동을 감당하지 못했다. 황제는 게르만 출신 장군의 허수아비가 됐고 속주가 하나씩 떨어져 나갔다.

한반도

삼국의 각축

고구려가 낙랑을 몰아내고 남하했다. 광개토대왕·장수왕 대에 최전성기를 맞았고 백제와 신라가 동맹으로 맞섰다.

전쟁

해당 없음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3명

장수왕정치427 · 고구려 20대 왕
394 – 491

수도를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옮겨 아버지가 만든 힘을 남쪽으로 돌렸다. 79년을 다스렸다.

  • 427년 평양 천도
  • 475년 백제 한성 함락
  • 광개토왕릉비를 세움
알라리크장군410 · 800년 만에 로마를 턴 사람
AD 370 – AD 410

로마군에 복무했던 고트족 지휘관이었다. 약속받은 땅과 봉급을 받지 못하자 로마로 향했다.

  • 로마 약탈 410 — 800년 만의 함락
  • 제국 안에서 자란 뒤 제국을 침
  • 약탈 몇 달 뒤 병사
아틸라장군450 · 훈족 왕
406 – 453

갈리아까지 밀고 들어와 로마를 떨게 했다. 그가 급사하자 훈 제국은 곧 흩어졌다.

  • 동로마에서 막대한 공물을 받아냄
  • 갈리아까지 진격
  • 이탈리아 침공 직후 급사

그 무렵의 사건

427
나란다 대학
승려 1만 명이 배우던 곳. 도서관이 몇 달을 탔다.
교사 2천 명과 학생 1만 명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중국·티베트·한국·동남아시아에서 유학이 왔다. 신라의 혜초도 인도를 다녀와 왕오천축국전을 남겼다. 1197년 침입으로 불탔고 도서관이 몇 달을 탔다고 전한다.
410
로마 약탈
알라리크의 서고트족이 800년 만에 로마를 점령해 사흘 동안 약탈했다.
발칸에서 굶주리던 서고트족은 이탈리아로 내려와 세 차례 로마를 포위했고, 8월 24일 밤 살라리아 문이 열렸다. 대규모 학살은 없었지만 「영원한 도시」가 무너졌다는 충격은 제국 전체를 흔들었다. 히에로니무스는 베들레헴에서 「온 세계를 사로잡은 도시가 사로잡혔다」고 썼고,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사건에 답하려 「신국론」을 썼다.
455
반달족의 로마 약탈
카르타고에서 건너온 반달족이 2주 동안 로마를 털었다. 「반달리즘」이란 말이 여기서 나왔다.
게르만계 반달족은 갈리아와 히스파니아를 거쳐 429년 북아프리카로 건너가 카르타고에 왕국을 세우고 지중해 해적이 됐다. 가이세리크 왕은 황제가 살해된 틈에 함대를 이끌고 테베레강을 올라왔다. 교황 레오 1세가 살인과 방화만은 막았으나 판테온의 청동 지붕과 예루살렘 신전의 보물, 황후와 공주들까지 실려 갔다. 534년 벨리사리우스가 왕국을 멸망시켰다.
372
고구려 불교 수용
소수림왕이 불교를 받아들이고 태학을 세웠다.
왕권 강화의 이념이 들어왔다. 백제·신라가 뒤이어 받아들인다.
372
소수림왕의 체제 정비
고구려 소수림왕은 불교를 받아들이고 율령을 반포하며 태학을 세워, 이전보다 훨씬 체계적인 국가 체제를 갖췄다.
직전 고국원왕이 백제와의 전투에서 전사하는 위기를 겪은 뒤 왕위에 오른 소수림왕은, 372년 중국 전진에서 불교를 들여와 왕실의 권위를 뒷받침하는 사상적 기반으로 삼고, 국가 최고 교육기관인 태학을 세워 인재를 길렀으며, 나라를 다스리는 법 체계인 율령을 반포해 왕권 아래 통치 질서를 확립했다. 이 정비를 바탕으로 다음 대인 광개토대왕·장수왕 때 고구려는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교역로 4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해상 실크로드100 – 1500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오간 것도자기와 차, 향신료와 향목. 배 한 척이 낙타 수천 마리 몫을 실었다.
거점광저우 · 참파 · 말라카 · 스리랑카 · 캘리컷 · 호르무즈 · 바스라
인도양 계절풍 항로BC 100 – 700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오간 것로마의 금화가 인도로 흘러가고 후추가 로마로 왔다. 로마 원로원이 금 유출을 걱정할 정도였다.
거점미오스호르모스 · 아덴 · 소코트라 · 무지리스

나란다 대학

사건 · 427 · 1만 명이 배우던 곳

교사 2천 명과 학생 1만 명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중국·티베트·한국·동남아시아에서 유학이 왔다. 신라의 혜초도 인도를 다녀와 왕오천축국전을 남겼다. 1197년 침입으로 불탔고 도서관이 몇 달을 탔다고 전한다.

【그때 그 자리】 AD 427년 무렵이다. 지금의 인도 비하르주다.

굽타 왕조의 후원으로 세워졌다.

붓다가 여러 번 머문 곳으로 전해지는 자리다.

【왜 그렇게 됐나】 승원이면서 학교였다.

불교 승원은 원래 공부하는 곳이다. 그것이 커져 종합 교육 기관이 됐다.

왕들이 마을의 세금을 떼어 주었다. 200개 마을의 수입이 운영비가 됐다는 기록이 있다.

가르친 것이 불교만이 아니었다.

논리학·문법·의학·수학·천문학·베다 철학을 함께 가르쳤다.

반대편 학파의 교리도 가르쳤다. 논쟁하려면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흘렀나】 중국 승려들이 기록을 남겼다.

현장이 7세기에 와서 5년을 머물렀다.

그가 적기를, 학승이 1만 명, 교사가 1,500명이었다.

입학이 어려웠다. 문 앞에서 시험을 봤다.

「열에 일고여덟은 답하지 못하고 돌아갔다」고 했다.

도서관이 셋 있었다. 가장 큰 것이 「라트나사가라(보석의 바다)」로 9층이었다고 전한다.

의정도 뒤에 와서 10년을 머물렀다.

그가 승원의 일과와 규율을 자세히 적었다. 물시계로 시간을 알렸다는 기록이 있다.

한국 승려 혜초도 8세기에 인도를 다녀갔다.

【그래서】 여기서 나온 것이 있다.

나가르주나·아상가·바수반두 같은 이름이 나란다와 이어진다.

티베트 불교가 이곳의 계통을 이었다. 8세기에 산타락시타가 티베트로 가서 삼예 사원을 세웠다.

지금 티베트 불교가 스스로를 「나란다 전통」이라 부른다.

달라이 라마가 그 표현을 자주 쓴다.

【남은 것】 1193년 파괴됐다.

델리 술탄국의 장군 바크티아르 킬지가 이끈 군대였다.

페르시아 사료 「타바카트이 나시리」에 그 기록이 있다.

도서관이 몇 달을 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다만 그 대목은 뒤에 덧붙은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불교가 인도에서 사라지는 것과 시기가 겹친다. 그 원인이 이 파괴만은 아니다 — 힌두교의 흡수와 후원의 소멸이 함께 작용했다.

1861년 커닝엄이 유적을 확인했다.

2016년 세계유산이 됐다.

2014년 그 옆에 나란다 대학이 새로 문을 열었다. 800년 만이다.

지도에서 보기: 4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로마 약탈 반달족의 로마 약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