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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도시와 문자가 나타났다. 관개 농업이 잉여를 만들고 신전과 왕궁이 그것을 관리했다.
빗살무늬토기와 간석기의 시대. 아직 국가라 부를 정치체가 없다.
해당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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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 BC 6000 · 빗살무늬 그릇을 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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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자리】 BC 6000년 무렵이다. 한반도에 신석기 문화가 자리 잡았다.
빙하기가 끝나고 해수면이 올라 지금과 비슷한 해안선이 만들어진 시기다.
「즐문(櫛文)」은 빗살무늬라는 뜻이다. 뾰족한 도구로 그릇 표면에 선을 그었다.
【왜 그렇게 됐나】 그릇 바닥이 뾰족하다.
평평하지 않아 세울 수 없다. 모래나 흙에 꽂아 썼다.
그래서 유적이 대개 강가나 바닷가에 있다. 서울 암사동, 부산 동삼동, 황해도 지탑리가 대표적이다.
무늬가 무엇인지는 여러 해석이 있다. 그릇을 단단하게 만들려는 기술적 이유, 물이나 빗줄기를 나타낸다는 상징적 해석이 함께 있다.
【어떻게 흘렀나】 무엇을 먹고 살았는가.
물고기와 조개가 컸다. 조개무지에서 굴과 백합 껍데기가 층층이 나온다.
동삼동에서는 고래뼈와 상어뼈도 나왔다. 배를 타고 나갔다는 뜻이다.
그물추와 낚싯바늘이 출토된다. 결합식 낚싯바늘은 돌과 뼈를 이어 만든 것이다.
도토리도 많이 먹었다. 갈판과 갈돌로 빻았다.
농사도 시작됐다. 지탑리와 마산리에서 조와 기장의 흔적이 나왔다.
다만 주식이 될 만한 규모는 아니었다. 채집과 어로가 여전히 중심이었다.
【그래서】 이 시기 사람들이 어디서 왔는가가 논쟁이다.
즐문토기가 시베리아와 만주에서 유라시아 북부로 이어지는 넓은 계통과 닮았다는 견해가 오래 있었다.
지금은 지역 안에서 발전한 부분도 크다고 본다.
동삼동에서 일본 규슈의 흑요석이 나왔다. 반대로 일본 유적에서 한반도계 토기가 나온다.
신석기에 이미 바다를 오갔다는 뜻이다.
【남은 것】 BC 1500년 무렵 무문토기와 함께 청동기가 들어오며 바뀐다.
그때부터 농사가 중심이 되고, 마을이 언덕으로 올라가며, 무덤에 부장품 차이가 생긴다.
신석기 사람들의 무덤에는 그 차이가 거의 없다. 평등한 사회였다는 근거로 인용된다.
부산 가덕도에서 7,000년 전 인골이 다수 나왔다. 팔을 굽혀 껴안은 자세로 묻힌 사람이 있었다.
지도에서 보기: BC 3000년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