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니키아 알파벳

3000
카메라 투어 · 아무 곳이나 누르면 멈춤
◀ 왼쪽 · 오른쪽 ▶
지도에 표시
주요 국가
오른쪽 게이지를 끌거나 키보드 ↑↓로 5천 년이 흐릅니다
지도는 휠·더블클릭·드래그 · PgUp/PgDn은 스냅샷 이동
게이지를 Shift+드래그하면 10배 정밀 · 오른쪽 눈금은 인물·전쟁·사건이 있는 자리

6억 년 전
AD 2025
시대
주요 공격
주요 공격
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청동기의 붕괴

해양 민족의 이동과 함께 여러 왕국이 한꺼번에 무너졌다.

한반도

고조선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전쟁 1건

도리아인의 남하BC 1100 – BC 1050
도리아계 vs 미케네 잔존 세력

미케네 궁전이 무너진 뒤 북쪽에서 그리스어를 쓰는 집단이 펠로폰네소스로 내려왔다.

펠로폰네소스 정착

결과정복인지 이주인지 지금도 논쟁이다. 결과로 스파르타 등 도리아계 폴리스가 자리 잡고, 이오니아계는 소아시아로 건너갔다.

암흑기의 인구 이동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해당 없음

그 무렵의 사건

BC 1050
페니키아 알파벳
서기관의 독점이 22자로 깨졌다.
쐐기문자는 수백 자, 상형문자도 수백 자였다. 페니키아인은 자음 22자로 줄였고, 상인이라면 며칠이면 배웠다. 그리스인이 여기에 모음을 더해 오늘날 우리가 쓰는 알파벳이 됐다.
BC 1046
목야 전투
천명이 옮겨간다는 논리가 태어났다.
주 무왕이 상 주왕을 쳤다. 주는 「하늘이 덕 없는 왕에게서 명을 거둬 갔다」는 천명 사상으로 왕조 교체를 정당화했고, 이 논리가 이후 3,000년 동아시아 정치의 문법이 된다.
BC 1000
다윗의 예루살렘
작은 산성 마을이 수도가 됐다.
다윗이 여부스족의 성을 빼앗아 도읍으로 삼았다. 남북 지파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중립지였다는 점이 선택의 이유로 꼽힌다. 3,000년 뒤에도 같은 이유로 다투는 땅이 됐다.
BC 1000
고조선이 모습을 드러내다
「삼국유사」는 단군의 건국을 BC 2333년으로 적었다. 고고학으로 실체가 잡히는 것은 비파형동검이 나오는 BC 10세기 무렵이다. 지도는 유물이 말하는 쪽을 따라 그렸다.
flag
BC 1000
노크 문화
사하라 이남에서 가장 이른 철.
나이지리아 중부에서 실물 크기에 가까운 테라코타 두상이 나온다. 눈이 삼각형이고 표정이 뚜렷하다. 같은 층에서 제철 유적이 나와, 이 지역이 청동을 건너뛰고 철로 갔음을 보여 준다.

교역로

해당 없음

페니키아 알파벳

사건 · BC 1050 · 서기관의 독점이 22자로 깨졌다.

쐐기문자는 수백 자, 상형문자도 수백 자였다. 페니키아인은 자음 22자로 줄였고, 상인이라면 며칠이면 배웠다. 그리스인이 여기에 모음을 더해 오늘날 우리가 쓰는 알파벳이 됐다.

【그때 그 자리】

기원전 2천 년기 문자는 어려운 것이었다.

메소포타미아의 쐐기문자는 수백 개 기호를 익혀야 했다. 이집트 상형문자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한자는 수천 자다.

이런 문자는 전업 서기가 필요하다. 몇 년을 배워야 하니 아무나 할 수 없다. 문자가 소수 계층의 것이 된다.

페니키아는 지금의 레바논 해안에 있던 도시들이다. 비블로스, 티레, 시돈이 그렇다. 땅이 좁아 바다로 나갔다. 지중해 전역에 교역망을 폈다.

상인에게 필요한 것은 빠르고 간편한 기록이다.

【왜 그렇게 됐나】

기원전 2천 년기 초 시나이반도에서 일하던 셈계 노동자들이 이집트 상형문자를 다르게 쓰기 시작했다.

이집트 문자에서 소머리 그림을 가져오되, 소를 뜻하는 자기네 말 알프의 첫소리만 나타내게 한 것이다. 집을 뜻하는 그림은 베트의 첫소리를 나타냈다.

두음법이라 한다. 그림의 뜻을 버리고 그 이름의 첫소리만 남기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기호 수가 급격히 줄어든다. 소리는 수십 개뿐이기 때문이다.

기원전 1050년 무렵 페니키아 문자가 22개 자음 기호로 정리됐다.

【어떻게 흘렀나】

스물두 개다. 며칠이면 배운다.

이것이 문자의 성격을 바꿨다. 서기 계층 없이도 기록할 수 있게 됐다. 상인이 스스로 장부를 적었다.

페니키아 배가 다니는 곳마다 이 문자가 따라갔다.

기원전 8세기 무렵 그리스인이 받아들였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페니키아 문자에는 모음 기호가 없다. 셈어는 자음만으로도 대체로 읽히지만 그리스어는 그렇지 않다.

그리스인이 쓰지 않는 자음 기호 몇 개를 모음으로 바꿔 썼다. 알레프가 알파, 베트가 베타가 됐다. 자음과 모음을 모두 적는 첫 문자 체계가 이렇게 나왔다.

알파벳이라는 말이 알파와 베타에서 왔다. 그 알파와 베타는 소와 집이라는 페니키아어에서 왔다.

【그래서】

그리스 문자에서 에트루리아를 거쳐 라틴 문자가 나왔다. 지금 이 글을 적는 영어 알파벳이 그것이다.

동쪽으로는 아람 문자가 나왔다. 여기서 히브리 문자와 아랍 문자가 갈렸고, 인도의 브라흐미 문자를 거쳐 동남아시아 문자들이 나왔다. 몽골 문자와 만주 문자도 이 계보다.

키릴 문자도 그리스 문자에서 나왔다.

오늘날 세계에서 쓰이는 문자 대부분이 이 하나에서 갈라졌다. 한자와 한글 정도가 계보 밖에 있다.

【남은 것】

페니키아인은 자기 문헌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파피루스에 적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것은 그리스와 로마와 성서의 기록이다.

문자를 퍼뜨린 사람들이 정작 자기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

이 문자의 진짜 의미는 간단하다. 읽고 쓰는 일을 어렵지 않게 만든 것이다. 어려운 문자는 권력이 되고 쉬운 문자는 퍼진다.

2,500년 뒤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들며 같은 문제를 다르게 풀었다. 소리를 적되 발음기관의 모양에서 글자를 뽑았다.

지도에서 보기: BC 15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목야 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