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쿠테니 — 마을을 태우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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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문명의 새벽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도시와 문자가 나타났다. 관개 농업이 잉여를 만들고 신전과 왕궁이 그것을 관리했다.

한반도

선사

빗살무늬토기와 간석기의 시대. 아직 국가라 부를 정치체가 없다.

전쟁

해당 없음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해당 없음

그 무렵의 사건

BC 4000
쿠쿠테니 — 마을을 태우는 사람들
수십 년마다 자기 마을을 불태우고 옮겨 지었다.
우크라이나와 루마니아 일대에 1만 명이 넘게 살았을 취락이 있었다. 그런데 60~80년마다 마을 전체를 불태운 흔적이 나온다. 사고가 아니라 되풀이된 의식으로 본다. 왜 그랬는지는 아직 답이 없다.

교역로

해당 없음

쿠쿠테니 — 마을을 태우는 사람들

사건 · BC 4000 · 60~80년마다 집을 불태운 이유

우크라이나와 루마니아 일대에 1만 명이 넘게 살았을 취락이 있었다. 그런데 60~80년마다 마을 전체를 불태운 흔적이 나온다. 사고가 아니라 되풀이된 의식으로 본다. 왜 그랬는지는 아직 답이 없다.

【그때 그 자리】 BC 5000~3000년 무렵이다. 지금의 우크라이나·몰도바·루마니아에 걸친 지역이다.

쿠쿠테니-트리필랴 문화라 부른다. 유럽에서 가장 이른 대규모 취락이 여기 있다.

탈리안키 유적은 넓이가 3.5㎢에 이른다. 집이 2,700채 넘게 있었고, 인구가 1만 5천 명까지로 추정된다.

메소포타미아의 우루크보다 이르거나 비슷한 시기다.

【왜 그렇게 됐나】 도시 구조가 특이하다.

집이 동심원으로 배치됐다. 몇 겹의 고리를 이루고 가운데가 비어 있다.

궁전이 없다. 신전으로 볼 만한 압도적인 건물도 없다.

무덤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어떻게 장례를 치렀는지 모른다.

빈부 차를 보여 주는 부장품도 드물다.

지도자가 있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다.

【어떻게 흘렀나】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불이다.

60~80년마다 마을 전체를 태웠다. 그리고 근처에 다시 지었다.

우연한 화재가 아니다. 집 안에 그릇과 물건을 그대로 둔 채 태운 흔적이 있고, 온도가 높아 흙벽이 도자기처럼 구워졌다.

일부러 땔감을 채워 넣어야 나오는 온도다.

왜 그랬는지는 설명이 여럿이다.

한 세대가 끝나는 것을 표시하는 의례였다는 것, 집을 「죽여서」 조상에게 보낸 것이라는 것, 해충과 질병을 없애려는 실용적 이유라는 것이다.

확정된 답은 없다.

【그래서】 도자기가 아름답다.

흰 바탕에 붉고 검은 나선 무늬를 그렸다. 선사 유럽 미술의 정점으로 꼽힌다.

여성 모양의 흙인형이 수만 점 나왔다.

밀과 보리를 기르고 소와 돼지를 쳤다.

【남은 것】 BC 3000년 무렵 사라졌다.

기후 변화, 토양 고갈, 초원에서 온 얌나야 계통 사람들과의 접촉이 원인으로 거론된다.

이 문화가 오래 주목받지 못했다. 유적 대부분이 소련과 루마니아 안에 있어 서방 학계에 늦게 알려졌다.

「도시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됐다」는 서술을 다시 보게 만드는 사례로 지금 인용된다.

다만 문자가 없었고 국가로 발전하지 않았다. 큰 취락이 곧 도시국가는 아니라는 점도 함께 논의된다.

지도에서 보기: BC 3000년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