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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도시와 문자가 나타났다. 관개 농업이 잉여를 만들고 신전과 왕궁이 그것을 관리했다.
빗살무늬토기와 간석기의 시대. 아직 국가라 부를 정치체가 없다.
해당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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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 BC 2500 · 이집트가 금을 캐 가던 곳
나일강 상류의 쿠시는 이집트에 금과 상아를 대다가 결국 이집트를 정복했다. 25왕조가 그것이다. 메로에에 피라미드 200기가 넘게 남았는데 이집트 것보다 작고 가파르다. 자체 문자인 메로에 문자는 아직 해독되지 않았다.
【그때 그 자리】 나일강 제1폭포 남쪽이다. 지금의 수단 북부에 해당한다.
이집트인들이 그곳을 「누비아」 또는 「쿠시」라 불렀다.
「누비아」가 이집트어로 금을 뜻하는 「누브」에서 왔다는 설명이 있다.
실제로 금이 났다. 그리고 흑단과 상아와 향료와 표범 가죽이 나왔다.
【왜 그렇게 됐나】 이집트가 계속 남쪽으로 갔다.
고왕국 때부터 원정이 있었다.
중왕국의 센우스레트 3세가 제2폭포 위까지 밀어 올리고 요새를 여덟 곳 넘게 지었다.
그 요새들은 벽 두께가 8m에 해자와 총안이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요새 체계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신왕국 때는 아예 총독(쿠시의 왕자)을 두고 다스렸다.
누비아인 궁수가 유명했다. 이집트가 그들을 용병으로 썼다.
이집트 기록에서 누비아는 「타세티 — 활의 땅」이라 불렸다.
【어떻게 흘렀나】 BC 2500년 무렵 케르마 왕국이 섰다.
지금까지 아프리카에서 이집트 밖의 가장 이른 도시 문명으로 꼽힌다.
「데푸파」라 불리는 거대한 흙벽돌 구조물이 남아 있다. 높이 18m다.
이집트가 힉소스에게 밀리던 시기에 케르마가 북쪽으로 올라오기도 했다.
그러다 신왕국 이집트에게 정복됐다.
이집트 문화를 받아들였다. 아문 신을 섬기고 상형문자를 쓰고 피라미드를 세웠다.
【그래서】 BC 8세기에 판이 뒤집혔다.
이집트가 갈라지자 쿠시의 피예가 북진해 이집트를 다스렸다. 25왕조, 「검은 파라오」다.
약 100년을 갔다. 아시리아에게 밀려 남쪽으로 물러났다.
수도를 메로에로 옮겼다.
메로에는 철 생산지였다. 「고대 아프리카의 버밍엄」이라 불릴 만큼 제철 유적이 많다.
그리고 자기 문자를 만들었다. 메로에 문자다. 소리값은 알아냈는데 언어를 모른다 — 읽을 수는 있으나 뜻을 모르는 상태다.
【남은 것】 수단에 피라미드가 200기 넘게 남아 있다. 이집트에 있는 것보다 많다.
작고 가파르며 무덤 방이 아래에 있다.
AD 4세기 악숨에게 밀려 쇠퇴했다.
19세기 유럽 학자들이 이 지역을 오래 이집트의 부속으로만 다뤘다. 지금은 독자적인 문명으로 연구된다.
2016년 이후 무장 충돌과 도굴로 유적이 위협받고 있다.
지도에서 보기: BC 30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카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