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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히타이트·이집트 신왕국·바빌로니아가 사신과 군대를 주고받았다.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왜시리아의 카데시와 아무루를 두고 청동기 두 최강국이 부딪쳤다. 이 지역이 지중해 교역로의 길목이었다.
결과무승부로 끝나 세계 최초의 평화조약을 맺었다. 양쪽 기록이 모두 남은 최초의 전쟁이며, 서로 자기가 이겼다고 적었다.
90세 넘게 살며 66년을 다스렸다. 아부심벨을 비롯해 이집트 전역에 자기 조각상을 세웠고, 선왕들의 조각에도 자기 이름을 덧새겼다.
해당 없음
사건 · BC 1274 · 양쪽 기록이 다 남은 유일한 전투
람세스 2세와 히타이트 무와탈리 2세가 시리아를 두고 붙었다. 람세스는 신전마다 대승이라 새겼지만, 히타이트 기록과 대조하면 무승부에 가까웠다. 양쪽 기록이 다 남은 최초의 전투다.
【그때 그 자리】 BC 1274년이다. 오론테스강가의 카데시다.
지금의 시리아 홈스 근처다.
이집트의 람세스 2세와 히타이트의 무와탈리 2세가 부딪쳤다.
시리아를 두고 두 제국이 겨루던 중이다.
【왜 그렇게 됐나】 람세스가 4개 사단, 2만 명을 이끌고 북상했다.
아문·라·프타·세트 사단이다. 신들의 이름을 붙였다.
도중에 유목민 둘을 잡았다. 그들이 「히타이트군은 멀리 알레포에 있다」고 했다.
거짓이었다. 히타이트가 일부러 보낸 자들이었다.
람세스가 안심하고 아문 사단만 데리고 앞서 갔다.
나머지 세 사단이 뒤에 늘어졌다.
【어떻게 흘렀나】 히타이트 전차대가 도시 뒤에 숨어 있었다.
행군 중이던 라 사단의 옆구리를 쳤다.
대열이 무너졌다. 달아난 병사들이 아문 사단의 진영으로 뛰어들며 그쪽도 흔들렸다.
람세스가 포위됐다.
이집트 기록에 그가 직접 전차를 몰고 여섯 번 돌격했다고 적혀 있다.
그때 「네아린」이라는 부대가 도착했다. 해안 쪽에서 따로 오던 병력이다.
그들이 히타이트 전차대의 뒤를 쳤다.
히타이트군이 물러나 성으로 들어갔다.
다음 날 다시 대치했으나 결판이 나지 않았다. 양쪽 다 물러났다.
전차 5,000~6,000대가 부딪친 싸움이다. 고대 최대의 전차전으로 꼽힌다.
【그래서】 여기서부터가 흥미롭다.
람세스가 돌아가 대승이라 새겼다.
아부심벨·카르나크·룩소르·라메세움 등 신전 다섯 곳 이상에 같은 내용을 새겼다.
긴 서사시 형식이다. 「시」와 「보고서」 두 가지로 남았다.
자기가 홀로 적을 무찔렀다고 적었다. 「나 홀로였다. 내 곁에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히타이트 기록도 남아 있다.
하투샤에서 나온 점토판에 히타이트가 이겼다고 적혀 있다.
실제로 카데시는 히타이트가 계속 쥐었다. 이집트가 얻은 것이 없다.
【남은 것】 같은 전투를 양쪽이 기록한 드문 사례다.
그래서 「승전 기록을 어디까지 믿을 것인가」를 말할 때 늘 인용된다.
16년 뒤 두 나라가 조약을 맺었다.
이집트 신전 벽의 상형문자본과 하투샤의 아카드어 점토판이 다 남아 있다.
지금 뉴욕 유엔 본부에 그 사본이 걸려 있다.
그리고 70년쯤 뒤 두 제국 모두 청동기 붕괴에 휩쓸린다. 히타이트는 아예 사라진다.
지도에서 보기: BC 15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최초의 평화조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