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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타이트·이집트 신왕국·바빌로니아가 사신과 군대를 주고받았다.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왜시리아의 카데시와 아무루를 두고 청동기 두 최강국이 부딪쳤다. 이 지역이 지중해 교역로의 길목이었다.
결과무승부로 끝나 세계 최초의 평화조약을 맺었다. 양쪽 기록이 모두 남은 최초의 전쟁이며, 서로 자기가 이겼다고 적었다.
90세 넘게 살며 66년을 다스렸다. 아부심벨을 비롯해 이집트 전역에 자기 조각상을 세웠고, 선왕들의 조각에도 자기 이름을 덧새겼다.
해당 없음
사건 · BC 1259 · 이집트와 히타이트가 문서로 전쟁을 끝냈다.
카데시 이후 16년, 두 제국이 상호 불가침과 범죄인 인도를 약속했다. 이집트어판과 히타이트어판이 모두 남아 있고 내용이 일치한다. 복제본이 유엔 본부에 걸려 있다.
【그때 그 자리】
기원전 13세기 서아시아에는 강대국이 여럿이었다. 이집트 신왕국, 아나톨리아의 히타이트, 메소포타미아의 아시리아, 그리고 미탄니와 바빌로니아다.
이집트와 히타이트는 시리아 지배권을 두고 오래 다퉜다. 이 지역이 교역로의 목이었다.
기원전 1274년 무렵 카데시에서 두 나라 군대가 맞붙었다. 전차 5천 대 이상이 동원된 고대 최대의 전차전이다.
람세스 2세는 이집트로 돌아가 자기가 크게 이겼다고 신전 벽에 새겼다. 여러 신전에 같은 내용을 반복해 새겼다.
히타이트 기록은 다르다. 실제로는 무승부에 가까웠고, 전략적으로는 히타이트가 시리아를 지켰다.
【왜 그렇게 됐나】
두 나라가 15년을 더 대치했다. 그런데 조건이 바뀌었다.
동쪽에서 아시리아가 커졌다. 히타이트에게 새로운 위협이었다.
히타이트 안에서는 왕위 다툼이 있었다. 하투실리 3세가 조카를 몰아내고 왕이 됐는데, 쫓겨난 조카가 이집트로 망명했다.
양쪽 다 상대와의 소모전을 끝낼 이유가 생겼다.
【어떻게 흘렀나】
기원전 1259년 조약이 맺어졌다.
현존하는 세계 최초의 평화조약이다. 이집트어 판본이 카르나크와 라메세움 신전 벽에, 아카드어 판본이 하투샤에서 나온 점토판에 남아 있다. 두 판본의 내용이 거의 일치한다.
조항이 이렇다.
서로 침략하지 않는다. 제3국의 공격을 받으면 서로 돕는다. 상대 나라에서 도망쳐 온 사람을 돌려보낸다.
마지막 조항에 덧붙은 문장이 눈에 띈다. 돌려보낸 사람을 처벌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의 집과 아내와 자식을 해치지 말라고 적혀 있다.
3,300년 전 문서에 송환자의 인권 보호 조항이 들어 있다.
신들이 증인으로 열거되고, 조약을 지키면 축복이 어기면 저주가 내린다는 대목으로 끝난다.
【그래서】
이 평화가 실제로 지켜졌다. 두 나라는 이후 다시 싸우지 않았다.
13년 뒤 하투실리의 딸이 람세스와 혼인했다. 왕비들이 서로 편지를 주고받은 기록도 남아 있다.
기원전 1200년 무렵 히타이트가 청동기 시대의 붕괴 속에서 사라졌다. 이집트도 크게 흔들렸다. 두 나라를 무너뜨린 것은 서로가 아니었다.
【남은 것】
이 조약의 복제본이 뉴욕 유엔 본부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장 옆에 걸려 있다.
오래 인용되는 이유가 있다. 두 강대국이 서로를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문서로 관계를 정한 첫 사례이기 때문이다.
형식도 중요하다. 한쪽이 다른 쪽에 항복을 강요한 것이 아니라 대등한 두 왕이 맺었다. 서로를 형제라 불렀다.
카데시에서 이겼다고 벽에 새긴 람세스가, 15년 뒤 상대와 대등한 조약을 맺었다는 점도 함께 읽힌다. 선전과 실제 정책은 다를 수 있다.
지도에서 보기: BC 15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카데시 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