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스의 쇠퇴

3000
카메라 투어 · 아무 곳이나 누르면 멈춤
◀ 왼쪽 · 오른쪽 ▶
지도에 표시
주요 국가
오른쪽 게이지를 끌거나 키보드 ↑↓로 5천 년이 흐릅니다
지도는 휠·더블클릭·드래그 · PgUp/PgDn은 스냅샷 이동
게이지를 Shift+드래그하면 10배 정밀 · 오른쪽 눈금은 인물·전쟁·사건이 있는 자리

6억 년 전
AD 2025
시대
주요 공격
주요 공격
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청동기 제국들

히타이트·이집트 신왕국·바빌로니아가 사신과 군대를 주고받았다.

한반도

고조선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전쟁 1건

함무라비의 통일전쟁BC 1792 – BC 1750
바빌론 vs 라르사·마리·에슈눈나

메소포타미아에 대등한 왕국이 넷 있었다. 함무라비는 30년을 기다렸다가 동맹을 갈아타며 하나씩 쳤다.

라르사 BC 1763마리 파괴 BC 1759

결과외교로 판을 짜고 마지막에 군사력을 쓴 전형이다. 정복 뒤에는 법전으로 통치를 굳혔다.

42년 · 메소포타미아 통일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해당 없음

그 무렵의 사건

BC 1750
인더스의 쇠퇴
도시를 비우고 사람들이 동쪽으로 갔다.
가가르-하크라 강의 수량이 줄면서 도시가 유지되지 않았다. 침략의 흔적은 없다 — 서서히 떠났다. 아리아인의 침입설은 오래 주장됐으나 지금은 기후와 하천 변화가 주된 설명이다.
BC 1792
함무라비 법전
왕이 아니라 글이 다스린다.
2.25m 검은 돌기둥에 282조를 새겨 광장에 세웠다. 누구나 읽을 수 있게 — 실제로는 대부분 문맹이었지만, 법이 왕의 기분 밖에 있다는 선언이었다. 신분에 따라 형벌이 다른 점에서 한계도 분명하다.
BC 1700
선형문자 A
아직 아무도 읽지 못하는 글.
미노아인이 쓴 문자로 점토판 1,400여 점이 남았다. 이를 빌려 쓴 미케네의 선형문자 B는 1952년 해독됐지만, 원본인 A는 지금까지 읽히지 않는다. 어떤 언어인지조차 모른다.
BC 1700
파버티 포인트
농사도 짓지 않으면서 거대한 흙둑을 쌓았다.
루이지애나에 반원 여섯 겹의 흙둑이 있다. 흙 75만 세제곱미터를 사람이 바구니로 날라 쌓았다. 사냥과 채집만으로 살던 사람들이 이런 것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큰 건축에는 농경이 필요하다는 통념이 여기서도 깨진다.

교역로

해당 없음

인더스의 쇠퇴

사건 · BC 1750 · 정복당한 것이 아니었다

가가르-하크라 강의 수량이 줄면서 도시가 유지되지 않았다. 침략의 흔적은 없다 — 서서히 떠났다. 아리아인의 침입설은 오래 주장됐으나 지금은 기후와 하천 변화가 주된 설명이다.

【그때 그 자리】 BC 1900년 무렵이다. 인더스 문명의 도시들이 비기 시작했다.

모헨조다로와 하라파의 인구가 줄었다.

도장이 사라지고 도량형이 흩어졌으며 규격 벽돌이 끊겼다.

【왜 그렇게 됐나】 오래 「아리아인의 침입」으로 설명됐다.

1920년대에 모티머 휠러가 그렇게 주장했다.

모헨조다로에서 유골 37구가 흩어진 채 발견됐는데, 그것을 학살의 증거로 보았다.

리그베다에 인드라 신이 「푸르(요새)」를 부순다는 구절이 있다. 그것과 연결했다.

지금은 부정된다.

그 유골들은 시기가 서로 다르고, 무기에 의한 상처가 뚜렷하지 않다. 정상적인 매장이 흐트러진 것으로 본다.

그리고 도시가 비는 시점과 인도유럽계 사람들이 들어온 시점 사이에 몇 백 년의 차이가 있다.

【어떻게 흘렀나】 지금의 설명은 기후와 물이다.

몬순이 약해졌다. 석순과 호수 퇴적물 분석에서 BC 2000년 무렵부터 건조해진 것이 확인된다.

4.2ka 기후 사건과 시기가 겹친다.

그리고 강의 물길이 바뀌었다.

인더스 동쪽에 「가가르-하크라」라는 마른 물길이 있다. 위성 사진으로 확인된다.

리그베다의 「사라스바티강」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인더스 유적의 상당수가 그 물길을 따라 분포한다.

그 강이 말랐다. 히말라야에서 오던 물이 다른 쪽으로 흘렀거나 빙하 융수가 줄었다는 설명이 있다.

농사가 어려워졌다.

【그래서】 사람들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동쪽 갠지스-야무나 유역으로 옮겨 갔다.

작은 마을들로 흩어졌다. 도시 생활만 끝난 것이다.

그 뒤 1,000년 동안 인도에 큰 도시가 없다.

다시 도시가 서는 것은 BC 6세기 갠지스 유역의 「16대국」 시대다.

【남은 것】 인더스의 것이 얼마나 이어졌는가는 논쟁이다.

요가 자세로 앉은 인물이 새겨진 도장이 있다. 시바 신의 원형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목욕과 정결에 대한 관심, 보리수와 소에 대한 태도가 이어졌다는 주장도 있다.

반론도 강하다. 문자를 못 읽으니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이 논쟁이 인도 안에서 정치적 쟁점이기도 하다. 「아리아인이 밖에서 왔는가」를 두고 갈린다.

유전자 연구에서는 BC 2000년 이후 초원 계통 유입이 확인됐다. 다만 그것이 「침입」이었는지 점진적 이주였는지는 별개의 물음이다.

지도에서 보기: BC 2000년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