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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히타이트·이집트 신왕국·바빌로니아가 사신과 군대를 주고받았다.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해당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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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 BC 1950 · 왕이 지친 얼굴로 새겨진 시대
제1중간기의 혼란을 겪은 뒤 왕들은 백성을 돌보는 목자의 이미지를 내세웠다. 파이윰 간척과 누비아 요새망이 이때 지어졌고, 「시누헤 이야기」 같은 문학이 나왔다.
【그때 그 자리】 BC 2000~1700년 무렵이다. 12왕조 때다.
고왕국이 무너진 뒤 200년 가까운 혼란(제1중간기)이 있었다.
테베의 멘투호테프 2세가 다시 통일했고, 그 뒤 아메넴헤트 1세가 12왕조를 열었다.
【왜 그렇게 됐나】 혼란을 겪은 뒤라 달라진 것이 있다.
왕이 신이라는 관념이 흔들렸다. 고왕국의 왕은 절대적이었는데, 그 왕조가 무너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문학에 그것이 나타난다.
「아메넴헤트의 가르침」은 암살된 왕이 아들에게 하는 말의 형식이다.
「누구도 믿지 마라. 형제를 알지 말고 친구를 만들지 마라. (…) 내가 가난한 자에게 베풀고 고아를 길렀으나, 내 빵을 먹은 자가 나를 배신했다.」
왕의 죽음과 배신을 문학으로 적은 것이다. 고왕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어떻게 흘렀나】 「시누헤 이야기」가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왕이 암살됐다는 소식을 듣고 겁에 질려 도망친 신하의 이야기다.
시리아로 가서 성공해 부족장의 사위가 되고 부자가 된다.
그런데 늙어서 고향에 묻히고 싶어 한다. 왕이 용서하고 불러들인다.
「내 몸에 아마포를 두르고, 무덤을 짓고, 관을 준비했다.」
이집트 문학의 고전이 됐다. 그 뒤 500년 동안 학생들이 베껴 쓰며 배웠다.
【그래서】 통치도 실질적이었다.
파이윰 저지대를 개간했다. 나일강 물을 끌어들여 호수 수위를 조절하고 농지를 만들었다.
누비아로 남진해 요새를 여덟 곳 넘게 지었다. 금을 얻기 위해서다.
센우스레트 3세가 지방 귀족의 권력을 없앴다. 그 시기부터 지방의 크고 화려한 무덤이 끊긴다.
그 왕의 조각상이 눈에 띈다.
눈 밑이 처지고 입가가 내려가 있으며 지쳐 보인다.
이집트 왕은 대개 젊고 무표정하게 새긴다. 이 얼굴은 예외다.
다스리는 일의 무게를 나타낸 것이라는 해석과, 늙음을 그대로 새긴 사실주의라는 해석이 갈린다.
【남은 것】 중왕국의 이집트어가 「고전 이집트어」가 됐다.
그 뒤 1,500년 동안 종교 문서와 비문에 이 시기의 문체를 썼다.
라틴어가 유럽에서 한 역할과 비슷하다.
왕조는 BC 1700년 무렵 약해졌고, 힉소스가 삼각주로 들어온다.
고왕국이 피라미드로 기억된다면 중왕국은 글로 기억된다.
지도에서 보기: BC 2000년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