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남무 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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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문명의 새벽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도시와 문자가 나타났다. 관개 농업이 잉여를 만들고 신전과 왕궁이 그것을 관리했다.

한반도

고조선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전쟁

해당 없음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1명

우르남무정치BC 2100 · 가장 오래된 법을 남긴 왕
BC 2112 – BC 2095 재위

구티인을 몰아내고 우르를 다시 세웠다. 함무라비보다 300년 앞서 법을 글로 새겼고, 형벌이 오히려 더 온건했다.

  • 우르남무 법전 — 현존 최고(最古)의 성문법
  • 눈에는 눈이 아니라 벌금으로
  • 우르 대지구라트 건립

그 무렵의 사건

BC 2100
우르남무 법전
함무라비보다 300년 앞선 법.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성문법이다. 눈에는 눈이 아니라 벌금으로 갚게 한 것이 특징 — 눈을 상하게 하면 은 반 미나를 낸다. 신체형으로 되돌아간 함무라비보다 이쪽이 오히려 근대적이다.
BC 2130
구데아의 라가시
전쟁을 안 한 왕이 조각으로 남았다.
정복 기록 대신 신전을 짓고 운하를 판 기록을 남겼다. 멀리 레바논에서 삼나무, 인더스에서 홍옥수를 들여왔다고 새겼으니 당시 교역망의 범위를 알려준다. 그의 섬록암 좌상 20여 점이 남아 있다.

교역로

해당 없음

우르남무 법전

사건 · BC 2100 · 함무라비보다 300년 앞선 법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성문법이다. 눈에는 눈이 아니라 벌금으로 갚게 한 것이 특징 — 눈을 상하게 하면 은 반 미나를 낸다. 신체형으로 되돌아간 함무라비보다 이쪽이 오히려 근대적이다.

【그때 그 자리】 BC 21세기다. 아카드가 무너지고 구티족이 물러난 뒤, 우르가 다시 메소포타미아를 묶었다. 우르 제3왕조다.

우르남무가 그 시조다. 지구라트를 지은 왕으로도 알려져 있다 — 우르의 지구라트가 지금도 이라크에 남아 있다.

【왜 그렇게 됐나】 법전의 머리말에 이유가 적혀 있다.

「고아를 부자에게 넘기지 않았고, 과부를 힘 있는 자에게 넘기지 않았으며, 한 세겔을 가진 사람을 한 미나를 가진 사람에게 넘기지 않았다.」

함무라비 법전의 머리말과 논리가 같다. 300년 앞선다.

【어떻게 흘렀나】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법전이다. 40개 남짓의 조항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처벌 방식이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발을 다치게 하면 은 10세겔을 지불한다.」

「사람이 싸움 중에 다른 사람의 뼈를 부러뜨리면 은 1미나를 지불한다.」

함무라비 법전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다르다. 여기서는 대부분 벌금이다.

살인과 강도와 강간은 사형이다. 그 밖의 상해는 배상으로 처리했다.

그러니까 시간이 흐르며 법이 더 부드러워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 이른 시기의 법이 배상 중심이었고, 뒤에 동해보복(같은 것으로 갚음)이 강해졌다.

왜 그런가에 대한 설명이 여럿이다. 우르 제3왕조가 관료제가 발달해 국가가 배상을 강제할 수 있었다는 것, 함무라비 시대에는 신분 사회가 굳어져 신체형이 필요했다는 것 등이다.

【그래서】 이 법전에 무죄 추정의 흔적도 있다.

혐의를 부인하면 강물에 뛰어들게 하는 「강의 심판」 조항이 있는데, 살아 나오면 무죄이고 고발한 사람이 대신 벌금을 문다.

미신적인 방식이지만, 무고한 고발에 대가를 물린다는 발상이 들어 있다.

【남은 것】 점토판 조각으로만 전한다. 완전한 판본이 없다.

1952년 이스탄불 박물관에 있던 조각을 사무엘 노아 크레이머가 해독했다. 그때까지 함무라비 법전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우르남무가 지었는지 아들 슐기가 지었는지도 논쟁이 있다.

확실한 것은 하나다. 사람이 법을 글로 새겨 세우기 시작한 것이 4,100년 전이라는 것.

지도에서 보기: BC 30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구데아의 라가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