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카기나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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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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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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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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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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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문명의 새벽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도시와 문자가 나타났다. 관개 농업이 잉여를 만들고 신전과 왕궁이 그것을 관리했다.

한반도

선사

빗살무늬토기와 간석기의 시대. 아직 국가라 부를 정치체가 없다.

전쟁

해당 없음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해당 없음

그 무렵의 사건

BC 2380
우루카기나 개혁
기록에 남은 최초의 개혁, 그리고 최초의 「자유」.
라가시의 왕 우루카기나가 사제와 관리의 수탈을 금하고 과부와 고아를 보호하는 법을 폈다. 이때 쓰인 아마기(ama-gi)가 문자로 남은 최초의 「자유」라는 말이다 — 원뜻은 「어머니에게 돌아감」, 곧 빚의 탕감이었다.
BC 2334
사르곤의 정복
정원사의 아들이 최초의 제국을 세웠다.
버려져 강에 떠내려온 것을 정원사가 길렀다는 탄생 설화가 전한다 — 모세 이야기보다 천 년 앞선다. 34번의 전투로 수메르 전역을 묶고 상비군을 두었으며, 정복지에 자기 사람을 총독으로 보내는 통치 방식을 처음 만들었다.

교역로

해당 없음

우루카기나 개혁

사건 · BC 2380 · 문서로 남은 가장 오래된 개혁

라가시의 왕 우루카기나가 사제와 관리의 수탈을 금하고 과부와 고아를 보호하는 법을 폈다. 이때 쓰인 아마기(ama-gi)가 문자로 남은 최초의 「자유」라는 말이다 — 원뜻은 「어머니에게 돌아감」, 곧 빚의 탕감이었다.

【그때 그 자리】 BC 24세기 수메르의 라가시다.

이웃 움마와 150년 넘게 국경 밭을 두고 싸우던 도시다.

그 오랜 전쟁이 안을 갉았다.

왕과 신전 관리들이 세금을 늘렸다. 전쟁 비용을 대야 했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됐나】 그 착취가 기록에 남아 있다.

장례를 치르려면 관리에게 보리와 빵과 술을 바쳐야 했다.

양털을 깎으면 세리가 와서 몫을 가져갔다.

배를 가진 사람에게서 배를, 목자에게서 가축을, 어부에게서 어장을 관리들이 빼앗았다.

신전의 땅을 왕이 자기 것으로 삼았다.

「신들의 밭에서 왕의 소가 풀을 뜯었다」고 적혀 있다.

【어떻게 흘렀나】 우루카기나가 왕이 되어 그것을 되돌렸다.

세리를 물리쳤다. 장례비를 크게 줄였다.

신전의 재산을 신에게 돌려주었다.

빚 때문에 갇힌 사람들을 풀어 주었다 — 「아마기」라는 낱말이 여기 나온다. 「어머니에게로 돌아감」이라는 뜻으로, 문자로 기록된 가장 오래된 「자유」에 해당하는 말로 꼽힌다.

그리고 이렇게 적었다.

「고아와 과부를 힘 있는 자에게 넘기지 않겠다고, 그는 닌기르수 신과 약속했다.」

이 문장이 그 뒤 되풀이된다.

300년 뒤 우르남무 법전에 거의 같은 표현이 나오고, 다시 300년 뒤 함무라비 법전 머리말에 나온다.

【그래서】 개혁은 오래가지 못했다.

7~8년쯤 뒤 움마의 루갈자게시가 쳐들어와 라가시를 부수었다.

신전이 불탔고 도시가 약탈당했다.

라가시의 서기가 그 뒤에 적었다.

「움마 사람이 라가시를 부수었으니 그 죄는 그의 신 니사바에게 있다. 우루카기나에게는 죄가 없다.」

패배의 기록을 남기면서 왕을 변호한 문서다.

【남은 것】 그 루갈자게시도 곧 사르곤에게 무너졌다.

우루카기나의 개혁문이 「가장 오래된 사회 개혁 기록」으로 자주 인용된다.

다만 조심할 데가 있다. 이것도 왕이 자기 정당성을 위해 남긴 문서다.

실제로 얼마나 시행됐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4,400년 전에 「누가 약자를 지킬 것인가」가 정치의 언어였다는 사실은 남는다.

지도에서 보기: BC 3000년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