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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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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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원수정과 로마 평화

아우구스투스가 공화정의 외피를 남긴 채 1인 지배를 세웠다. 200년간 지중해 전역에 큰 전쟁이 없었고 속주마다 도시와 도로와 수도교가 깔렸다.

한반도

삼국의 성립

신라·고구려·백제가 차례로 서고 가야가 낙동강 유역에 자리 잡았다. 아직 연맹왕국 단계로 왕권이 강하지 않았다.

전쟁

해당 없음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4명

예수사상30 · 가장 많은 사람이 따른 이름
BC 4 – AD 30

갈릴리에서 3년을 가르치다 처형됐다. 남긴 글은 없고 제자들의 기억만 남았는데, 그 기억이 서구 2,000년의 뼈대가 됐다.

  • 산상수훈 — 약한 자가 복이 있다
  • 십자가형과 부활 신앙
  • 연도를 세는 기준이 됨
광무제정치36 · 왕망의 신을 무너뜨리고 한을 다시 세운 황제
BC 5 – AD 57, 재위 25 – 57

농촌 호족 출신으로 곤양에서 왕망군을 깨고 낙양에 도읍했다. 후한 200년의 문을 열었다.

  • 곤양 전투 승리(23), 왕망 정권 붕괴
  • 낙양 도읍, 후한 건국(25)
  • 노비 해방령과 세금 경감
김수로왕정치42 · 하늘에서 내려온 알에서 태어나 금관가야를 세우다
42 – 199(전승)

구지봉에 하늘에서 내려온 황금 알 여섯 개 중 가장 먼저 사람으로 태어나 금관가야(오늘날 김해)의 왕이 됐다는 건국 설화가 전한다. 낙동강 하구의 철 생산과 해상 교역을 바탕으로 가야 연맹을 이끌었다.

  • 구지가 설화 속 건국 시조
  • 금관가야 초기 전성기 이끎
  • 낙동강 하구 철 생산·해상 교역 기반 확립
바울사상55 · 작은 종파를 세계 종교로 만든 사람
AD 5 – AD 67

박해자였다가 회심했다. 지중해를 세 번 돌며 이방인에게 문을 열었고, 그의 편지들이 신약의 절반을 차지한다.

  • 할례 없이도 신자가 될 수 있게 함
  • 세 차례 전도 여행 — 지중해 전역
  • 로마에서 처형

그 무렵의 사건

30
예수의 처형
로마 속주 유대에서 벌어진 처형이 세계 종교의 출발점이 됐다.
속주의 처형 하나가 300년 뒤 제국의 국교가 되는 종교의 출발점이 됐다.
79
베수비오 화산
폼페이가 하루 만에 묻혔다.
폼페이가 통째로 묻혀 고대 도시의 일상이 그대로 보존됐다.
80
콜로세움 완공
5만 명을 수용한 로마의 원형경기장이 열렸다. 개막 축제 100일 동안 맹수 9천 마리가 죽었다.
네로의 황금 궁전 연못 자리에 베스파시아누스가 짓기 시작해 아들 티투스가 완성했다. 검투사 경기와 맹수 사냥, 처형이 무료로 열렸고 황제가 민심을 얻는 장치였다. 지하에는 승강기와 통로가 있었다. 5세기까지 쓰이다 지진과 채석으로 허물어졌고, 중세엔 성당 건축의 돌 창고였다. 「콜로세움이 서 있는 한 로마도 선다」는 말이 전한다.
BC 27
아우구스투스
옥타비아누스가 첫 황제가 됐다. 200년의 로마 평화가 시작된다.
이후 200년간 지중해 전역에 큰 전쟁이 없었다. 도시와 도로와 수도교가 깔렸다.
100
악숨
홍해를 쥔 아프리카의 제국.
에티오피아 고원에서 홍해로 나가는 길목에 섰다. 자기 동전을 찍은 아프리카 최초의 나라 축에 든다. 통돌을 깎아 세운 오벨리스크가 가장 큰 것은 33미터였다. 이슬람이 홍해를 쥐면서 고원 안쪽으로 물러났다.
100
모체와 나스카
얼굴을 그대로 빚은 토기, 하늘에서만 보이는 그림.
북쪽의 모체는 사람 얼굴을 사진처럼 빚었고 금세공이 정교했다. 남쪽의 나스카는 사막 바닥의 돌을 걷어 내 수백 미터짜리 선을 그렸다. 두 문화 모두 긴 가뭄과 엘니뇨에 시달리다 흩어졌다.

교역로 3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인도양 계절풍 항로BC 100 – 700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오간 것로마의 금화가 인도로 흘러가고 후추가 로마로 왔다. 로마 원로원이 금 유출을 걱정할 정도였다.
거점미오스호르모스 · 아덴 · 소코트라 · 무지리스

예수의 처형

사건 · 30 · 속주 총독이 내린 정치적 판결

속주의 처형 하나가 300년 뒤 제국의 국교가 되는 종교의 출발점이 됐다.

【그때 그 자리】 1세기 초 유대는 로마의 속주였다. 총독 폰티우스 필라투스(빌라도)가 다스렸다.

직접 통치와 간접 통치가 섞여 있었다. 성전과 종교 문제는 대제사장과 산헤드린이 맡고, 사형 집행권은 로마가 쥐었다.

유월절이었다. 순례자가 몰려 도시 인구가 몇 배로 불었다. 봉기가 나기 가장 쉬운 때다. 총독이 그래서 해안의 카이사레아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와 있었다.

【왜 그렇게 됐나】 예수가 성전에 들어가 환전상의 상을 뒤엎었다.

성전세는 로마 화폐로 낼 수 없어 환전이 필요했고, 제물용 짐승도 성전에서 사야 했다. 거기 이권이 있었다.

성전 체제를 정면으로 건드린 것이다.

그리고 「유대인의 왕」이라는 호칭이 걸렸다. 종교적으로는 메시아라는 뜻이지만, 로마의 귀에는 반역이었다.

【어떻게 흘렀나】 밤에 겟세마네에서 붙잡혔다.

먼저 대제사장 앞에 섰고, 이어 빌라도에게 넘겨졌다.

복음서는 빌라도가 죄를 찾지 못해 손을 씻었다고 적는다. 다만 다른 사료의 빌라도는 다르다 — 필론과 요세푸스는 그를 잔인하고 고집스러운 인물로 그린다.

복음서가 쓰인 시기를 보면 설명이 붙는다. 유대 전쟁(66~70) 이후 로마 안에서 살아야 했던 초기 교회가, 로마의 책임을 줄여 적는 쪽으로 갔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십자가형은 로마가 노예와 반란자에게 쓰던 형벌이다. 유대의 형벌이 아니다. 처형 방식 자체가 로마의 판단이었음을 말해 준다.

십자가 위에 죄패를 붙였다. 「유대인의 왕」이라고 적혀 있었다 — 정치범이라는 표시다.

【그래서】 로마 쪽 기록에도 남았다. 타키투스가 「연대기」에 적었다.

「그 이름의 유래가 된 크리스투스는 티베리우스 치세에 총독 폰티우스 필라투스에게 처형됐다.」

적대적인 로마 역사가가 쓴 문장이라 사료 가치가 높다.

1961년 카이사레아에서 빌라도의 이름이 새겨진 돌이 발견됐다. 그가 실존 인물임이 유물로 확인됐다.

【남은 것】 이 처형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됐다.

제국이 반역자에게 쓰던 형틀이 300년 뒤 그 제국의 상징이 된다. 콘스탄티누스가 십자가를 방패에 그렸다.

오랫동안 「유대인이 예수를 죽였다」는 서술이 유대인 박해의 근거로 쓰였다.

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그때의 유대인 전체나 오늘의 유대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공식 선언했다.

지도에서 보기: BC 1년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