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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아우구스투스가 공화정의 외피를 남긴 채 1인 지배를 세웠다. 200년간 지중해 전역에 큰 전쟁이 없었고 속주마다 도시와 도로와 수도교가 깔렸다.
신라·고구려·백제가 차례로 서고 가야가 낙동강 유역에 자리 잡았다. 아직 연맹왕국 단계로 왕권이 강하지 않았다.
왜동방에서 돌아온 군대가 옮긴 역병으로 국경 수비가 얇아지자, 다뉴브 너머 부족들이 밀고 들어왔다.
결과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전선 막사에서 「명상록」을 썼다. 이 전쟁 이후 게르만족의 압력은 다시는 사라지지 않는다.
재위 내내 전쟁과 역병에 시달렸다. 다뉴브 전선의 천막에서 자기에게 하는 말을 그리스어로 적었다.
1400년을 지배한 우주 모형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사건 · 165 · 제국 인구의 10분의 1이 사라졌다.
동방 원정에서 돌아온 군대가 옮겼다. 천연두로 추정되며 15년간 500만 명이 죽었다. 군대와 세수가 함께 줄면서 3세기 위기의 바탕이 됐다.
【그때 그 자리】
2세기 중반 로마는 팍스 로마나의 절정이었다. 지중해 전역이 하나의 체제 아래 있었다.
이 통합에는 대가가 있었다. 사람과 물자가 빠르게 오간다는 것은 병도 빠르게 오간다는 뜻이다.
도로망이 촘촘했고, 군단이 국경과 본토를 오갔으며, 도시 인구가 밀집해 있었다.
165년 로마군이 파르티아 원정에 나섰다. 셀레우키아를 함락하고 돌아왔다.
【왜 그렇게 됐나】
돌아온 군대가 병을 옮겼다.
의사 갈레노스가 증상을 기록했다. 발열, 설사, 인후 염증, 그리고 아흐레째 나타나는 검은 발진이다. 발진이 딱지가 되어 떨어졌다.
이 기록을 근거로 천연두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홍역이라는 견해도 있다.
어느 쪽이든 로마인에게 면역이 없는 병이었다.
【어떻게 흘렀나】
165년부터 180년 무렵까지, 그리고 190년에 다시 크게 돌았다.
사망률 추정이 갈린다. 제국 인구의 10퍼센트 안팎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500만에서 1천만 명이다. 어떤 도시에서는 3분의 1이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
군대가 특히 큰 타격을 입었다. 밀집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게르만 전선에서 병력을 채우지 못해 검투사와 노예와 산적까지 징집했다.
황제 루키우스 베루스가 169년에 죽었다. 이 병 때문으로 본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도 180년에 죽었는데 역시 이 병일 가능성이 있다. 안토니누스는 그의 가문 이름이다.
경제가 흔들렸다. 농사지을 사람이 줄어 경작지가 버려졌다. 세수가 줄었다. 광산 생산이 급감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래서】
이 역병이 로마 쇠퇴의 출발점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직후에 무너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구가 줄고 재정이 약해진 상태에서 3세기의 위기를 맞았다. 국경 압력이 커지는데 막을 사람과 돈이 부족했다.
249년에는 키프리아누스 역병이라 불리는 또 다른 유행이 왔다.
【남은 것】
기독교의 확산과 이어진다는 연구가 있다.
역병이 돌 때 사람들이 환자를 버리고 도망쳤다. 기독교 공동체는 그러지 않고 돌봤다. 물과 음식만 제공해도 생존율이 크게 올라간다. 살아난 사람들이 신자가 됐고, 돌본 사람들도 이미 앓고 나서 면역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사회학자 로드니 스타크가 이 설명을 폈다. 논쟁이 있지만 널리 인용된다.
또 하나가 있다. 이 병이 실크로드를 타고 왔을 가능성이다. 같은 시기 중국 후한에서도 큰 역병이 여러 차례 돌았다. 그 혼란 속에서 184년 황건적의 난이 일어났다.
유라시아 양쪽 끝의 두 제국이 비슷한 시기에 역병으로 흔들렸고, 둘 다 그 뒤 무너졌다.
길이 열리면 사람과 물건과 생각이 오간다. 병도 함께 온다는 것을 이 사건이 처음 큰 규모로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