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왕국의 시작

3000
카메라 투어 · 아무 곳이나 누르면 멈춤
◀ 왼쪽 · 오른쪽 ▶
지도에 표시
주요 국가
오른쪽 게이지를 끌거나 키보드 ↑↓로 5천 년이 흐릅니다
지도는 휠·더블클릭·드래그 · PgUp/PgDn은 스냅샷 이동
게이지를 Shift+드래그하면 10배 정밀 · 오른쪽 눈금은 인물·전쟁·사건이 있는 자리

6억 년 전
AD 2025
시대
주요 공격
주요 공격
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청동기 제국들

히타이트·이집트 신왕국·바빌로니아가 사신과 군대를 주고받았다.

한반도

고조선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전쟁 1건

힉소스 축출BC 1550 – BC 1500
이집트 테베 vs 힉소스

100년의 이민족 지배를 끝내려 상이집트의 테베가 일어섰다. 힉소스가 들여온 전차를 그대로 배워서 썼다.

아바리스 함락샤루헨 공성

결과아흐모세 1세가 이집트를 재통일하고 신왕국을 열었다. 이후 이집트는 방어가 아니라 선제 공격을 국방으로 삼는다.

50년 · 신왕국의 출발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1명

아흐모세 1세장군BC 1550 · 이민족 지배를 끝낸 파라오
BC 1550 – BC 1525 재위

형이 전사한 뒤를 이어 힉소스를 몰아냈다. 적에게 배운 전차로 적을 이겼다.

  • 힉소스 축출과 이집트 재통일
  • 신왕국을 염 — 이집트 최전성기의 출발
  • 누비아까지 남진해 금광을 확보

그 무렵의 사건

BC 1550
신왕국의 시작
힉소스에게 배운 전차로 힉소스를 몰아냈다.
아흐모세 1세가 이민족 지배를 끝내고 이집트를 다시 통일했다. 이후 이집트는 방어에서 공세로 돌아서 시리아까지 진출한다. 왕들은 도굴을 피해 피라미드 대신 왕가의 계곡에 숨어 묻혔다.
BC 1600
테라 대분화
화산이 섬을 날리고 미노아를 흔들었다.
산토리니 화산이 폭발해 섬 한가운데가 사라졌다. 화산재와 쓰나미가 크레타를 덮쳤고 미노아 문명은 회복하지 못한 채 미케네에 넘어갔다. 아틀란티스 전설의 원형으로 자주 지목된다.
BC 1600
갑골문
거북 배딱지에 새긴 점괘가 한자의 조상이 됐다.
상나라 왕은 사냥·전쟁·비·왕비의 출산까지 점을 쳐 물었고, 그 문답을 뼈에 새겼다. 19세기 말 약재로 팔리던 「용골」에서 글자가 발견되면서 상나라가 전설이 아님이 증명됐다.
BC 1500
청동기가 들어오다 — 무문토기
민무늬 토기와 함께 벼농사와 청동기가 퍼졌다. 고인돌이 이때 세워진다. 잉여가 쌓이고 우두머리가 생기면서 나라의 꼴이 잡히기 시작했다.
tool
BC 1500
베다와 카스트
제사를 독점한 자가 맨 위에 섰다.
인도유럽어를 쓰는 집단이 들어와 갠지스로 퍼졌다. 제사를 독점한 브라만을 정점으로 신분이 굳어졌다. 이 질서에 근거가 없다고 본 사람들이 나오는데, 그중 둘이 부처와 마하비라다.

교역로

해당 없음

신왕국의 시작

사건 · BC 1550 · 제국이 된 이집트

아흐모세 1세가 이민족 지배를 끝내고 이집트를 다시 통일했다. 이후 이집트는 방어에서 공세로 돌아서 시리아까지 진출한다. 왕들은 도굴을 피해 피라미드 대신 왕가의 계곡에 숨어 묻혔다.

【그때 그 자리】 BC 1550년 무렵이다. 아흐모세 1세가 힉소스를 몰아냈다.

18왕조가 열렸다. 신왕국의 시작이다.

그 뒤 500년이 이집트의 전성기로 꼽힌다.

【왜 그렇게 됐나】 달라진 것이 있다.

그전까지 이집트는 국경 안에 머물렀다. 사막과 바다가 지켜 주었다.

힉소스에게 당한 뒤 생각이 바뀌었다. 위협은 미리 밖에서 친다는 쪽으로 갔다.

상비군을 두었다. 전차 부대를 만들었다.

그리고 계속 나갔다.

투트모세 1세가 유프라테스까지 갔다. 「거꾸로 흐르는 물」이라 적었다 — 나일과 반대 방향으로 흐르는 강을 처음 본 것이다.

투트모세 3세가 열일곱 번 원정했다. 「고대의 나폴레옹」이라 불리기도 한다.

【어떻게 흘렀나】 이 왕조에 특이한 인물들이 있다.

하트셉수트는 조카의 섭정으로 시작해 스스로 파라오가 됐다.

여성이 왕이 된 드문 사례다. 조각상에서 가짜 수염을 달고 남성 왕의 복장을 했다.

정복보다 교역을 택했다. 푼트로 원정대를 보내 몰약나무와 향료와 흑단을 가져왔다.

그 항해가 데이르 엘바흐리 신전 벽에 그려져 있다. 푼트 여왕의 모습까지 새겼다.

22년을 다스렸다.

죽은 뒤 그의 이름이 기념물에서 지워졌다. 후계자 투트모세 3세가 한 일로 보는데, 시점이 20년쯤 뒤라 개인적 원한보다 왕위 계승의 정통성 문제였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그래서】 왕의 무덤이 달라졌다.

피라미드를 짓지 않았다. 눈에 띄면 도굴되기 때문이다.

테베 서쪽 골짜기에 바위를 파고 숨겼다. 「왕가의 계곡」이다.

그래도 거의 다 도굴됐다. 예외가 투탕카멘이다.

신전을 크게 지었다. 카르나크 신전이 이 시기에 확장됐다.

아문 신의 사제단이 그만큼 부유해졌다. 나중에 왕권을 위협할 만큼 커진다.

【남은 것】 아멘호테프 3세 때가 절정이다. 제국이 누비아에서 시리아까지 걸쳤다.

그 아들이 아케나텐이다. 종교를 뒤집는다.

그리고 람세스 2세가 66년을 다스린다.

BC 1077년 무렵 신왕국이 끝난다. 그 뒤 이집트는 다시 강대국이 되지 못한다.

지금 우리가 「고대 이집트」 하면 떠올리는 것 대부분이 이 500년의 것이다.

지도에서 보기: BC 2000년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