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브와 바랑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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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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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세 개의 세계

라틴 유럽·비잔틴·이슬람이 지중해를 나눠 가졌다. 카롤루스의 제국은 곧 쪼개졌고 바이킹과 마자르가 유럽을 휘저었다. 동아시아에서는 당이 무너지고 송이 섰다.

한반도

남북국시대

신라가 당을 몰아내고 대동강 이남을 통일했고 북쪽에는 발해가 섰다. 신라 말 호족이 일어나며 후삼국으로 갈라진다.

전쟁 1건

바이킹 시대793 – 1066
노르드인 vs 유럽 각지

인구 압력과 흘수 얕은 롱십이 결합했다. 강을 거슬러 내륙까지 들이닥칠 수 있는 배가 결정적이었다.

린디스판 약탈 793파리 포위 885스탬퍼드 브리지 1066

결과약탈로 시작해 정착과 건국으로 끝났다. 노르망디·러시아·아이슬란드가 이들의 손에서 생겼고, 북아메리카에도 콜럼버스보다 500년 먼저 닿았다.

273년 · 유럽 지도를 다시 그렸다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2명

알프레드 대왕정치878 · 진 뒤에 이긴 왕
AD 849 – AD 899

바이킹에 밀려 습지로 도망쳤다가 다시 모아 이겼다. 잉글랜드에서 유일하게 「대왕」이라 불린다.

  • 에딩턴 전투 878 — 데인족을 꺾음
  • 성채망과 상비 함대를 만듦
  • 라틴 고전을 영어로 번역시킴
최치원사상885 · 당에서 이름을 얻고 신라에서 좌절한 사람
AD 857 – ?

열두 살에 당으로 유학해 과거에 급제했다. 황소의 난 토벌 격문으로 이름을 날렸으나, 돌아온 신라에서는 골품제에 막혔다.

  • 당 과거 급제 — 「토황소격문」으로 문명을 떨침
  • 시무 10여 조를 올렸으나 쓰이지 않음
  • 가야산으로 들어가 행적이 끊김

그 무렵의 사건

862
슬라브와 바랑기아
북쪽 사람을 불러다 다스리게 했다는 기록.
루스 원초 연대기는 슬라브 부족들이 서로 싸우다 바다 건너 바랑기아인을 불렀다고 적는다.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 나중에 지배를 정당화하려 쓴 것인지는 아직 논쟁 중이다. 그 길이 뒤에 키예프 루스가 된다.
850
화약의 발명
9세기 중국 당나라 시기, 불로장생약을 찾던 연금술사들이 우연히 화약을 발명했다. 처음엔 폭죽과 신호탄으로 쓰이다가 점차 무기로 발전했다.
숯·유황·초석(질산칼륨)을 섞어 불로장생의 영약을 만들려던 도교 연금술사들의 실험 기록에는 오히려 이 혼합물이 불이 붙고 폭발한다는, 당시로선 뜻밖의 위험한 발견이 남아 있다. 송나라 시대에 이르러 화약은 화살에 불을 붙이는 무기, 이어 원시적인 폭탄과 화포로 점차 발전했다. 몽골 제국의 서방 원정을 통해, 또는 실크로드 교역로를 통해 이 기술이 이슬람 세계를 거쳐 유럽까지 전해졌고, 이는 훗날 유럽에서 화약 무기가 중세 기사와 성벽 중심의 전쟁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는 계기가 됐다.
882
키예프 루스가 서다
바이킹이 강을 타고 내려와 세운 나라.
북에서 내려온 루스가 슬라브 부족들을 묶었다. 드네프르강을 타고 콘스탄티노폴리스와 교역했고, 988년 그곳의 정교회를 받아들였다. 러시아·우크라이나·벨라루스가 모두 자기 뿌리로 삼는다 — 그래서 지금도 다툰다.
830
지혜의 집
바그다드의 번역 기관. 그리스·인도·페르시아의 책이 아랍어로 옮겨져 유럽으로 되돌아갔다.
칼리파 알마문은 꿈에 아리스토텔레스를 보았다며 번역을 후원했다고 전한다. 후나인 이븐 이스하크 같은 학자들이 갈레노스·유클리드·프톨레마이오스를 옮겼고, 알콰리즈미는 여기서 대수학과 인도 숫자를 정리했다. 이 책들이 톨레도와 시칠리아에서 라틴어로 다시 번역되지 않았다면 12세기 르네상스도 없었다. 1258년 몽골이 바그다드를 함락하며 장서는 티그리스에 버려졌다.
900
치첸이트사
마야 후기의 도시. 춘분에 쿠쿨칸 피라미드 계단에 뱀 그림자가 내려온다.
유카탄 반도의 저지대에 세워진 이 도시는 마야 고전기 도시들이 무너진 뒤 오히려 번성했다. 91계단짜리 사면에 꼭대기 한 단을 더해 365가 되는 엘 카스티요, 지름 60m의 천문대 카라콜, 길이 168m의 구기장이 있다. 톨텍의 영향으로 보이는 전사 조각과 인신공희의 흔적도 있다. 세노테(성스러운 우물)에서 금과 사람 뼈가 나왔다. 13세기에 버려졌다.
818
발해의 전성기(해동성국)
발해는 선왕 때에 이르러 옛 고구려와 부여의 영토 대부분을 아우르는 최대 영역을 이루며 전성기를 맞아, 중국으로부터 '바다 동쪽의 융성한 나라'라는 뜻의 해동성국이라 불렸다.
발해는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이끌고 세운 나라로, 스스로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의식을 분명히 했다. 9세기 선왕 때에 이르러 만주 대부분과 연해주, 한반도 북부에 걸친 최대 영토를 확보하고 지방 행정 제도를 5경 15부 62주로 정비해 안정적인 통치 체제를 갖췄다. 당시 당나라를 비롯한 주변국들은 발해의 융성함을 인정해 '해동성국'이라 부르며 대등한 이웃 나라로 대우했다.

교역로 3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해상 실크로드100 – 1500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오간 것도자기와 차, 향신료와 향목. 배 한 척이 낙타 수천 마리 몫을 실었다.
거점광저우 · 참파 · 말라카 · 스리랑카 · 캘리컷 · 호르무즈 · 바스라

슬라브와 바랑기아

사건 · 862 · 부르러 간 것인가 쳐들어온 것인가

루스 원초 연대기는 슬라브 부족들이 서로 싸우다 바다 건너 바랑기아인을 불렀다고 적는다.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 나중에 지배를 정당화하려 쓴 것인지는 아직 논쟁 중이다. 그 길이 뒤에 키예프 루스가 된다.

【그때 그 자리】 AD 862년으로 적힌 이야기가 있다.

「원초 연대기」에 나온다. 12세기 키예프에서 엮인 책이다.

동슬라브 부족들이 서로 싸우다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 땅은 넓고 풍요로우나 질서가 없다. 와서 우리를 다스려 달라.」

그래서 바다 건너 바랑기아 사람들을 불렀고, 류리크 삼형제가 왔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됐나】 「바랑기아」는 스칸디나비아에서 온 사람들이다.

서쪽으로 간 같은 계통 사람들을 「바이킹」이라 부른다.

동쪽으로는 강을 따라 내려갔다. 발트해에서 볼가강과 드네프르강으로 이어진다.

배를 육지로 끌어 옮기며 강을 갈아탔다.

그 길 끝이 흑해와 카스피해다. 콘스탄티노플과 바그다드로 이어진다.

모피와 밀랍과 꿀과 노예를 팔고 은을 받았다.

스칸디나비아 유적에서 아랍 은화가 수만 개 나온다. 그 교역의 증거다.

【어떻게 흘렀나】 이 이야기를 두고 200년 넘게 논쟁이 이어졌다.

「노르만설」과 「반노르만설」이다.

18세기 독일 출신 학자들이 러시아 국가의 기원을 스칸디나비아에서 찾았다.

러시아 학자 로모노소프가 반발했다. 슬라브인이 스스로 나라를 세우지 못했다는 말이냐는 것이다.

이 논쟁이 정치와 얽혔다.

소련 시기에 노르만설이 공식적으로 배척됐다.

지금의 정리는 이렇다.

스칸디나비아계 사람들이 상인이자 용병으로 들어와 지배층의 일부가 된 것은 고고학으로 뒷받침된다.

다만 「초청」이라는 서사는 뒤에 왕조의 정통성을 위해 다듬어진 것으로 본다.

그리고 그들이 빠르게 슬라브화됐다. 3대 만에 이름이 슬라브식으로 바뀐다.

류리크의 손자 이름이 스뱌토슬라프다.

【그래서】 「루스」라는 이름의 유래도 논쟁이다.

핀란드어로 스웨덴을 뜻하는 「루오치」에서 왔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그것이 「노 젓는 사람들」과 이어진다.

슬라브어의 강 이름에서 왔다는 반론도 있다.

확실한 것은 그 이름이 「러시아」가 됐다는 것이다.

【남은 것】 이 논쟁이 지금도 살아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벨라루스가 모두 키예프 루스를 자기 뿌리로 삼는다.

「누구의 역사인가」가 정치적 쟁점이 된다.

바랑기아 사람들은 콘스탄티노플까지 갔다.

비잔티움 황제의 친위대 「바랑기아 근위대」가 그들이다. 도끼를 들었다.

노르웨이 왕 하랄 하르드라다가 젊을 때 그 부대에 있었다. 그리고 1066년 잉글랜드에서 죽는다.

지도에서 보기: 8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화약의 발명 키예프 루스가 서다 지혜의 집 치첸이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