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톤헨지 착공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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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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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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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문명의 새벽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도시와 문자가 나타났다. 관개 농업이 잉여를 만들고 신전과 왕궁이 그것을 관리했다.

한반도

선사

빗살무늬토기와 간석기의 시대. 아직 국가라 부를 정치체가 없다.

전쟁

해당 없음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해당 없음

그 무렵의 사건

BC 3000
스톤헨지 착공
글자 없는 사람들이 30톤 돌을 240km 옮겼다.
문자도 금속도 없이 천 년에 걸쳐 지어졌다. 하지의 해가 정확히 힐스톤 위로 뜨도록 배치돼 있어 달력이자 신전이었다고 본다. 국가 없이도 이만한 협업이 가능했다는 증거다.
BC 2950
아비도스 왕릉
최초의 왕들이 신하까지 함께 묻혔다.
이집트 제1왕조 왕들의 무덤이 아비도스에 줄지어 있다. 주변에 하인·난쟁이·사냥개의 작은 무덤이 딸려 있어 순장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몇 대 만에 이 관습은 사라지고 인형이 대신하게 된다.

교역로

해당 없음

스톤헨지 착공

사건 · BC 3000 · 5,000년에 걸쳐 지은 것

문자도 금속도 없이 천 년에 걸쳐 지어졌다. 하지의 해가 정확히 힐스톤 위로 뜨도록 배치돼 있어 달력이자 신전이었다고 본다. 국가 없이도 이만한 협업이 가능했다는 증거다.

【그때 그 자리】 BC 3000년 무렵 잉글랜드 남부 솔즈베리 평원이다.

처음 만들어진 것은 지금 보이는 돌기둥이 아니다. 도랑과 둑, 그리고 나무 기둥을 세운 구덩이들이었다.

한 번에 지어진 것이 아니다. 1,500년에 걸쳐 여러 번 바뀌었다.

【왜 그렇게 됐나】 BC 2500년 무렵 돌이 들어왔다.

두 종류다.

작은 「블루스톤」은 웨일스의 프레셀리 언덕에서 왔다. 250km 떨어진 곳이다. 무게가 2~4톤이고 80개 가까이 옮겨졌다.

왜 그렇게 먼 곳의 돌을 가져왔는지가 오래된 물음이다.

2021년 연구에서 그 언덕에 이미 비슷한 원형 유적이 있었고, 그것을 해체해 옮겨 온 것일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큰 「사르센석」은 30km 떨어진 곳에서 왔다. 하나가 25톤이 넘고, 가장 큰 것은 40톤이다.

썰매와 통나무와 밧줄로 옮겼을 것으로 본다.

【어떻게 흘렀나】 만드는 방식이 정교하다.

위에 얹은 가로 돌(린텔)이 흔들리지 않게 장부와 홈을 팠다. 목공 기법을 돌에 적용한 것이다.

린텔 윗면을 원의 곡선에 맞춰 다듬었다. 눈으로 보면 평평해 보이도록 각도를 조정했다.

기둥도 위로 갈수록 가늘게 깎았다. 아래에서 올려다볼 때 곧게 보이게 하는 방식이다.

그리스 신전에서 쓰는 기법과 같은 발상인데, 1,500년 앞선다.

【그래서】 무엇에 썼는가.

하지에 해가 힐스톤 쪽에서 떠오르고, 동지에는 그 반대편으로 진다.

천문 관측소라는 설명이 오래 통용됐다. 지금은 동지 쪽 정렬이 더 중요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 겨울의 축제와 관련된다는 것이다.

근처 더링턴 월스에서 대규모 잔치의 흔적이 나왔다. 돼지뼈 수천 점이 동지 무렵에 도살된 것으로 분석됐다.

그리고 무덤이다. 초기 단계의 구덩이에서 화장한 유골 수백 구가 나왔다.

동위원소 분석 결과 일부는 웨일스 출신이었다. 돌과 함께 사람도 왔다는 뜻이다.

【남은 것】 드루이드가 지었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는데, 그들은 2,000년 뒤 사람들이다.

만든 이들은 문자를 남기지 않았다.

우리가 아는 것은 돌과 뼈와 흙에서 읽어 낸 것뿐이다.

지금도 하지에 수만 명이 모인다.

지도에서 보기: BC 3000년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