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 이집트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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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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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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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문명의 새벽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도시와 문자가 나타났다. 관개 농업이 잉여를 만들고 신전과 왕궁이 그것을 관리했다.

한반도

선사

빗살무늬토기와 간석기의 시대. 아직 국가라 부를 정치체가 없다.

전쟁

해당 없음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해당 없음

그 무렵의 사건

BC 3100
상하 이집트 통일
나르메르가 두 왕관을 하나로 썼다.
나르메르 팔레트에는 한 면에 상이집트의 흰 관, 반대 면에 하이집트의 붉은 관을 쓴 같은 왕이 새겨져 있다. 이후 3,000년간 파라오는 이 두 관을 합친 이중관을 썼다.

교역로

해당 없음

상하 이집트 통일

사건 · BC 3100 · 왕관 둘을 겹쳐 쓴 사람

나르메르 팔레트에는 한 면에 상이집트의 흰 관, 반대 면에 하이집트의 붉은 관을 쓴 같은 왕이 새겨져 있다. 이후 3,000년간 파라오는 이 두 관을 합친 이중관을 썼다.

【그때 그 자리】 BC 3100년 무렵이다. 나일강을 따라 두 지역이 있었다.

북쪽 삼각주가 하(下)이집트, 남쪽 계곡이 상(上)이집트다. 강이 남에서 북으로 흐르므로 상류가 남쪽이다.

하이집트의 상징은 붉은 왕관과 파피루스와 코브라 여신 와제트다.

상이집트는 흰 왕관과 연꽃과 독수리 여신 네크베트다.

【왜 그렇게 됐나】 통일한 사람의 이름이 확정되지 않았다.

그리스 기록에는 「메네스」로 나온다. 이집트 왕명표에는 「나르메르」와 「아하」가 나온다.

같은 사람인지 다른 사람인지 논쟁이 이어진다.

가장 유명한 유물이 「나르메르 팔레트」다. 히에라콘폴리스에서 나온 점판암 판이다.

한 면에서 왕이 흰 왕관을 쓰고 적의 머리채를 잡아 곤봉을 내리친다.

다른 면에서 같은 왕이 붉은 왕관을 쓰고 목이 잘린 시신들을 사열한다.

왕관 둘을 한 사람이 쓴 것 — 통일의 선언으로 읽는다.

다만 이것이 실제 사건의 기록인지 상징적 표현인지는 갈린다. 통일이 한 번의 정복이 아니라 오랜 과정이었다는 견해가 지금은 유력하다.

【어떻게 흘렀나】 통일 뒤 만들어진 것들이 이집트를 정의한다.

수도를 두 지역의 경계인 멤피스에 두었다.

왕이 「두 땅의 주인」이라 불렸다. 붉은 왕관과 흰 왕관을 겹친 이중 왕관을 썼다.

상형문자가 이 무렵 체계를 갖췄다.

나일강의 범람을 재는 나일로미터를 두고, 그 높이로 그해 세금을 정했다.

범람이 해마다 규칙적이었다. 그것이 이집트 문명의 조건이다 — 헤로도토스가 「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이라 적었다.

【그래서】 3,000년을 갔다.

왕조가 서른 번 넘게 바뀌고 이민족의 지배를 여러 번 받았는데, 같은 문자와 같은 신과 같은 예술 양식이 이어졌다.

이만큼 오래 연속된 문명이 드물다.

【남은 것】 「상하 이집트」라는 표현이 나라의 이름이자 왕의 칭호로 끝까지 남았다.

합쳐진 지 3,000년이 지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그리스계 왕들도 그 칭호를 썼다.

이집트인들이 자기 나라를 부른 이름은 「케메트 — 검은 땅」이다. 범람이 남긴 검은 흙을 가리킨다.

그 바깥의 사막은 「데슈레트 — 붉은 땅」이었다.

지도에서 보기: BC 3000년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