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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히타이트·이집트 신왕국·바빌로니아가 사신과 군대를 주고받았다.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왜힉소스를 몰아낸 이집트가 국경을 시리아 밖으로 밀어내려 했다. 완충지대를 만들어 두 번 다시 침입당하지 않겠다는 발상이었다.
결과투트모세 3세가 17차례 원정해 이집트 최대 판도를 만들었다. 나중에는 두 나라가 공주를 주고받는 동맹으로 돌아섰다.
계모 하트셉수트의 그늘에서 20년을 기다렸다가 즉위했다. 17차례 원정으로 이집트 최대 판도를 만들었다.
조카의 섭정으로 시작해 스스로 파라오가 됐다. 초상에 왕의 수염을 달게 한 것은 속임수가 아니라 왕권의 표식이었다.
해당 없음
사건 · BC 1457 · 이름과 전술이 함께 남은 가장 오래된 전투
투트모세 3세가 좁은 아루나 협로를 택해 적의 허를 찔렀다. 서기관 타네니가 날짜별로 남긴 기록 덕에 우리는 3,500년 전 전투의 진행을 안다. 메기도는 훗날 「아마겟돈」이라는 말의 어원이 된다.
【그때 그 자리】 BC 1457년이다. 이집트 신왕국의 투트모세 3세 때다.
하트셉수트가 죽고 그가 단독 통치를 시작한 직후다.
시리아-팔레스타인의 도시들이 카데시 왕을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메기도에 모였다. 이집트에서 북동쪽으로 가는 길목이다.
【왜 그렇게 됐나】 메기도로 가는 길이 셋이었다.
북쪽 길과 남쪽 길은 넓고 안전했다. 가운데 아루나 협곡은 좁아서 병사들이 한 줄로 가야 했다.
장군들이 반대했다. 「말이 한 마리씩, 사람이 한 명씩 가야 합니다. 앞이 싸우는데 뒤가 보고만 있게 됩니다.」
왕이 밀어붙였다. 「내가 이 길로 갈 것이다. 나를 따르지 않을 자는 원하는 길로 가라.」
적이 그 길을 예상하지 못한다고 보았다.
【어떻게 흘렀나】 실제로 그랬다.
반란군은 북쪽과 남쪽 출구에 병력을 나눠 배치했다.
이집트군이 협곡을 빠져나와 그 사이에 나타났다.
다음 날 전투가 벌어졌고 반란군이 무너져 성으로 달아났다.
여기서 이집트군이 실수했다. 버려진 진영을 약탈하느라 추격하지 않았다.
성문이 닫혔다. 성벽 위에서 옷을 이어 만든 줄로 사람들을 끌어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그래서 7개월을 포위해야 했다. 성 둘레에 목책을 두르고 굶겼다.
왕이 적었다. 「메기도를 함락하는 것은 천 개의 도시를 함락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이 전투가 특별한 이유가 있다.
카르나크 신전 벽에 상세히 새겨져 있다. 서기 차네니가 기록했다.
날짜와 이동 경로와 회의 내용과 병력과 전리품이 나온다.
전차 924대, 갑옷 200벌, 소 2,000마리, 양 2만 마리를 얻었다고 적었다.
지휘관의 판단과 반대 의견까지 남은 것이 드물다.
그래서 「이름과 전술이 함께 기록된 가장 오래된 전투」로 꼽힌다.
【남은 것】 메기도는 그 뒤에도 여러 번 전장이 됐다.
위치 때문이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를 잇는 길이 반드시 지나는 곳이다.
히브리어로 「하르 메기도 — 메기도의 산」이다.
그것이 그리스어로 옮겨져 「아마겟돈」이 됐다.
요한계시록에서 마지막 전쟁이 벌어지는 곳으로 나온다.
1918년에도 영국군과 오스만군이 이곳에서 싸웠다.
지금은 이스라엘의 국립공원이고 세계유산이다. 20개가 넘는 도시 층이 겹쳐 있다.
지도에서 보기: BC 1500년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