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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그리스 각지에 도시국가가 섰다. 왕정이 귀족정으로, 다시 참주정과 민주정으로 갈라졌다. 인구가 늘어 흑해와 시칠리아까지 식민시를 세웠다. 같은 무렵 이탈리아에서는 로마가 왕을 몰아내고 공화정을 세운다.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왜주 왕실이 힘을 잃자 제후들이 「왕을 받든다」는 명분으로 서로를 쳤다. 실제로는 패자 자리를 다툰 것이다.
결과170여 나라가 십여 개로 줄었다. 전쟁이 잦아지자 병법과 외교술이 발달했고, 그 혼란 속에서 공자와 제자백가가 나왔다.
실존 여부조차 확실치 않다. 눈이 멀었다는 전승만 있고, 여러 음유시인의 노래가 한 이름으로 묶였을 수 있다.
남쪽 쿠시의 왕이 북쪽으로 올라가 이집트 전체를 다스렸다. 25왕조를 검은 파라오들이라 부른다. 그들은 이집트를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옛 전통을 되살렸다.
정복지를 속주로 바꾸고 주민을 강제 이주시켜 반란의 뿌리를 뽑았다. 잔혹했지만 효율적이었고, 이후 모든 제국이 이 방식을 참고했다.
해당 없음
사건 · BC 753 · 늑대와 형제 살해
로물루스의 건국 설화는 훗날 로마인의 자기 정체성이 됐다.
【그때 그 자리】 로마인들은 자기 도시가 BC 753년 4월 21일에 세워졌다고 믿었다.
이야기는 이렇다. 알바롱가의 왕위를 빼앗은 아물리우스가 형의 딸 레아 실비아를 베스타 여사제로 만들었다 — 처녀로 지내야 하는 자리다. 후손이 나오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가 쌍둥이를 낳았다. 군신 마르스의 아이라고 했다.
왕이 아이들을 티베르강에 버리게 했다. 바구니가 물가에 걸렸고 암늑대가 젖을 먹였다. 목동 파우스툴루스가 데려다 길렀다.
【왜 그렇게 됐나】 자란 뒤 외할아버지를 왕위에 되돌리고, 자기들의 도시를 세우기로 했다.
어느 언덕에 세울지를 두고 다퉜다. 새점으로 정하기로 했는데 결과 해석이 갈렸다.
로물루스가 팔라티노 언덕에 도랑을 파 경계를 그었다. 레무스가 그것을 비웃으며 뛰어넘었다.
로물루스가 그를 죽였다. 「내 성벽을 넘는 자는 누구든 이렇게 되리라.」
【어떻게 흘렀나】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사람이 모자랐다. 로물루스가 도망자와 범죄자에게 성역을 열어 받아들였다. 남자만 모였다.
이웃 사비니족을 축제에 초대해 놓고 그 여자들을 납치했다. 「사비니 여인들의 겁탈」이다.
사비니가 쳐들어왔는데, 그 여자들이 두 군대 사이에 뛰어들어 말렸다. 아버지와 남편이 서로 죽이는 것을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두 부족이 합쳐 하나의 나라가 됐다.
【그래서】 로마인들이 이 이야기를 감추지 않았다는 점이 눈에 띈다.
건국 신화가 형제 살해와 범죄자 수용과 여성 납치로 되어 있다. 대개의 건국 신화가 영웅적인 것과 다르다.
여기서 읽히는 것이 있다. 로마는 「누구의 후손인가」가 아니라 「누가 들어왔는가」로 만들어진 도시라는 자의식이다.
실제로 로마는 정복한 사람들에게 시민권을 주었다. 그리스 도시들이 끝까지 하지 않은 일이다.
【남은 것】 고고학은 팔라티노 언덕에 BC 8세기의 취락이 있었음을 확인했다. 도시가 하루에 세워지지는 않았다.
늑대 이야기는 다른 설명도 있다. 라틴어 「루파」가 암늑대와 매춘부를 함께 뜻해서, 유모의 별명이 신화가 됐다는 것이다.
카피톨리노의 청동 늑대상은 오래 에트루리아 유물로 여겨졌는데, 2000년대 연대 측정에서 중세의 것이라는 결과가 나와 논쟁 중이다.
로마 건국일 4월 21일은 지금도 로마시의 기념일이다.
지도에서 보기: BC 10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제1회 올림피아 제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