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홍수의 지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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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문명의 새벽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도시와 문자가 나타났다. 관개 농업이 잉여를 만들고 신전과 왕궁이 그것을 관리했다.

한반도

선사

빗살무늬토기와 간석기의 시대. 아직 국가라 부를 정치체가 없다.

전쟁

해당 없음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해당 없음

그 무렵의 사건

BC 2900
대홍수의 지층
여러 도시 밑에서 같은 진흙층이 나왔다.
슈루팍·키시·우르의 발굴에서 3m 두께의 무퇴적 진흙층이 나왔다. 유프라테스의 대범람 흔적으로, 길가메시 서사시와 창세기의 홍수 이야기가 여기서 왔으리라 본다. 신화가 지층을 갖고 있는 드문 사례다.
BC 2950
아비도스 왕릉
최초의 왕들이 신하까지 함께 묻혔다.
이집트 제1왕조 왕들의 무덤이 아비도스에 줄지어 있다. 주변에 하인·난쟁이·사냥개의 작은 무덤이 딸려 있어 순장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몇 대 만에 이 관습은 사라지고 인형이 대신하게 된다.
BC 2850
365일 달력
나일강의 범람이 시계가 됐다.
이집트인은 시리우스가 새벽에 다시 뜨는 날과 범람이 겹치는 것을 보고 1년을 365일로 정했다. 12달 30일에 5일을 덧붙인 방식이다. 4년마다 6시간이 밀리는 오차를 로마가 윤년으로 손봐 오늘의 달력이 됐다.

교역로

해당 없음

대홍수의 지층

사건 · BC 2900 · 신화와 진흙 사이

슈루팍·키시·우르의 발굴에서 3m 두께의 무퇴적 진흙층이 나왔다. 유프라테스의 대범람 흔적으로, 길가메시 서사시와 창세기의 홍수 이야기가 여기서 왔으리라 본다. 신화가 지층을 갖고 있는 드문 사례다.

【그때 그 자리】 1929년 우르에서 레너드 울리가 발굴하고 있었다.

왕릉을 파 내려가다 유물이 전혀 없는 층을 만났다.

깨끗한 진흙이었다. 두께가 2.5m였다.

그 아래에서 다시 사람이 살던 흔적이 나왔다.

울리가 아내에게 말했다고 전한다. 「대홍수야.」

【왜 그렇게 됐나】 수메르 기록에 홍수 이야기가 있다.

「수메르 왕명표」가 「그리고 홍수가 휩쓸었다」는 문장으로 시대를 나눈다. 홍수 이전의 왕들과 이후의 왕들을 갈랐다.

「길가메시 서사시」에 우트나피시팀이 나온다. 신들이 인간을 없애기로 했는데 한 신이 그에게 알려 주어 배를 짓게 한다.

배에 가족과 짐승을 싣는다. 물이 빠진 뒤 새를 날려 보내 땅을 찾는다 — 비둘기, 제비, 까마귀 순이다.

성경의 노아 이야기와 구조가 거의 같다.

1872년 조지 스미스가 아슈르바니팔 도서관의 점토판에서 그 대목을 읽었다. 성경보다 오래된 홍수 이야기였다.

너무 흥분해 방 안에서 옷을 벗고 뛰어다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어떻게 흘렀나】 그러면 실제 홍수가 있었는가.

울리는 그렇다고 보았다. 그러나 곧 문제가 드러났다.

진흙층이 우르에는 있는데 다른 도시에는 없거나 연대가 다르다.

키시와 슈루팍에서도 홍수층이 나왔는데 시기가 서로 어긋난다.

지금의 설명은 이렇다. 메소포타미아는 평평한 충적지라 큰 홍수가 반복해서 났다.

여러 번의 홍수 경험이 하나의 이야기로 합쳐졌다는 것이다.

다른 가설도 있다. BC 5600년 무렵 지중해 물이 보스포루스를 넘어 흑해로 쏟아졌다는 「흑해 범람설」이다.

증거를 두고 논쟁이 이어진다.

【그래서】 홍수 이야기는 세계 여러 곳에 있다.

인도의 마누, 그리스의 데우칼리온, 중국의 우 임금이 그렇다.

다만 성격이 다르다. 중국의 것은 물을 다스린 이야기이고, 메소포타미아의 것은 벌을 받고 살아남은 이야기다.

강이 어떻게 흐르느냐가 그 차이를 만들었다는 해석이 있다.

나일강은 규칙적으로 범람했고,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는 예측할 수 없었다.

【남은 것】 이집트 문학은 밝고 메소포타미아 문학은 어둡다는 오래된 비교가 여기서 나온다.

「길가메시 서사시」의 결말이 그것을 보여 준다. 영생을 찾아 떠난 왕이 빈손으로 돌아와, 자기가 쌓은 성벽을 보라는 말로 끝난다.

울리가 찾은 진흙층은 실제로 있다. 다만 그것이 「그 홍수」인지는 알 수 없다.

지도에서 보기: BC 3000년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