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탈리푸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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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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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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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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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고전기

아테네가 델로스 동맹을 제국으로 바꿨고 스파르타가 이를 꺾었다. 도시국가들이 서로를 소모시키는 사이 북쪽 변방의 마케도니아가 그리스 전체를 장악했다.

한반도

고조선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전쟁 2건

춘추시대의 패권 다툼BC 770 – BC 476
제·진·초·오·월 등 제후국

주 왕실이 힘을 잃자 제후들이 「왕을 받든다」는 명분으로 서로를 쳤다. 실제로는 패자 자리를 다툰 것이다.

성복 BC 632필 BC 597취리 BC 506

결과170여 나라가 십여 개로 줄었다. 전쟁이 잦아지자 병법과 외교술이 발달했고, 그 혼란 속에서 공자와 제자백가가 나왔다.

294년 · 170국이 십여 국으로
그리스-페르시아 전쟁BC 499 – BC 449
그리스 도시국가 연합 vs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소아시아의 그리스계 도시들이 페르시아 지배에 반란을 일으켰고 아테네가 이를 도왔다. 다리우스가 보복에 나서면서 전쟁이 그리스 본토로 번졌다.

마라톤 BC 490테르모필레 BC 480살라미스 BC 480플라타이아이 BC 479

결과마라톤과 살라미스에서 그리스가 막아냈다. 유럽이 스스로를 페르시아와 구분하기 시작한 순간이다.

50년 · 페르시아 원정군이 두 차례 궤멸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6명

공자사상BC 500 · 무너진 질서를 다시 묻다
BC 551 – BC 479

춘추의 혼란 속에서 신분이 아니라 배움으로 사람을 평가하자고 가르쳤다. 살아서는 쓰이지 못하고 14년을 떠돌았다.

  • 신분에 상관없이 제자를 받음
  • 인(仁)과 예(禮)로 정치를 설명
  • 「논어」 — 2,500년 동아시아의 교과서
다리우스 1세정치BC 500 · 제국을 행정으로 묶은 왕
BC 550 – BC 486

정복보다 관리로 더 큰 일을 했다. 20개 사트라피로 나누고 감찰관을 돌려 총독을 감시했다.

  • 왕의 길 2,700km와 역참 제도
  • 최초의 금화 다릭 — 제국 통화
  • 그리스 원정 실패 — 마라톤 BC 490
레오니다스장군BC 480 · 테르모필레에서 300명과 함께 싸운 스파르타 왕
재위 BC 489 – BC 480

「와서 가져가라」— 페르시아 대군 앞에서 사흘을 버틴 그의 죽음은 그리스 저항의 상징이 됐다.

  • 테르모필레 전투 지휘(BC 480)
  • 스파르타 정예 300명과 최후 항전
  • 그리스 연합군 후퇴 시간 확보
테미스토클레스장군BC 480 · 살라미스 해전으로 페르시아를 물리친 아테네의 전략가
BC 524 무렵 – BC 459 무렵

은광 수입으로 배를 만들자고 설득해 아테네를 해양 강국으로 바꿨고, 좁은 해협으로 페르시아 함대를 끌어들여 이겼다.

  • 라우리온 은으로 삼단노선 200척 건조
  • 살라미스 해전 승리(BC 480)
  • 도편추방 후 페르시아로 망명
크세르크세스정치BC 480 · 그리스를 침공한 페르시아 대왕
BC 518 무렵 – BC 465, 재위 BC 486 – BC 465

헬레스폰토스에 배다리를 놓고 수십만 대군을 건네 아테네를 불태웠으나 살라미스와 플라타이아이에서 졌다.

  • 이집트·바빌론 반란 진압
  • 제2차 그리스 원정(BC 480)
  • 페르세폴리스 대건축
손자장군BC 510 · 「손자병법」을 남긴 병법가
BC 6세기 말(전승)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다. 2,500년 전 열세 편의 병법이 오늘날 경영과 스포츠에서도 읽힌다.

  • 「손자병법」 13편
  • 오나라 합려를 도와 초를 격파(전승)
  • 지피지기 백전불태

그 무렵의 사건

BC 490
마라톤 전투
아테네 중장보병이 페르시아 상륙군을 바다로 몰아냈다. 승전 소식을 전하러 달린 이야기가 마라톤이 됐다.
다리우스 1세가 이오니아 반란을 도운 아테네를 벌하려 보낸 원정군이 마라톤 평원에 상륙했다. 밀티아데스는 스파르타의 원군을 기다리지 않고 양익을 두텁게 한 대형으로 돌격했다. 그리스군 192명, 페르시아군 6,400명이 죽었다고 헤로도토스는 적었다. 페이디피데스가 아테네까지 달려 「이겼다」고 외치고 죽었다는 전설은 후대의 것이지만 1896년 첫 올림픽 마라톤이 여기서 나왔다.
BC 500
반투의 확산
쇠와 농사를 들고 대륙 절반으로 퍼졌다.
나이지리아·카메룬 경계에서 시작한 사람들이 2,000년에 걸쳐 남쪽과 동쪽 끝까지 갔다. 얌과 바나나와 철이 함께 움직였다. 오늘 아프리카 남반부의 언어 대부분이 이 한 갈래에서 나온다.
BC 500
북미의 흙무덤
오하이오 강가에 짐승 모양의 언덕이 있다.
아데나와 호프웰이 무덤과 의례를 위해 거대한 흙둔덕을 쌓았다. 뱀 모양 둔덕은 길이가 400미터가 넘는다. 멕시코만 조개와 로키산맥 흑요석이 함께 나와, 대륙을 가로지르는 교역망이 있었음을 알려 준다.
BC 508
아테네 민주정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으로 시민이 직접 통치하기 시작했다.
추첨과 투표로 공직을 채우는 실험이 시작됐다. 2,500년 뒤 세계의 표준이 된다.
BC 509
로마 공화정 수립
왕을 쫓아내고 두 명의 집정관을 뒀다.
타르퀴니우스를 추방하고 1년 임기의 집정관 둘을 뽑았다. 한 사람에게 권력이 몰리지 않게 나누고 임기를 두는 발상 — 견제와 균형의 원형이 여기서 나왔다.
BC 528
석가의 깨달음
왕자가 고통의 원인을 묻고 답을 냈다.
생로병사를 보고 출가한 싯다르타가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고통은 집착에서 오고 집착을 놓으면 벗어난다는 가르침이 인도를 넘어 동아시아 전체로 퍼진다.

교역로 1개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파탈리푸트라

도시 · BC 490 · 홍수로 여러 번 잠겼다

【그때 그 자리】

갠지스강과 손강이 만나는 자리다. 지금의 인도 비하르주 파트나다.

기원전 6세기 갠지스 유역은 크게 바뀌는 중이었다. 철제 도끼와 쟁기로 숲을 밀고 논을 만들면서 잉여가 생겼다. 부족 사회가 왕국으로 바뀌고 열여섯 개의 큰 나라가 다퉜다.

그 가운데 마가다가 커졌다. 철광석 산지가 가깝고 갠지스 수운을 쥐었다.

처음 수도는 라자그리하였다가 기원전 5세기 무렵 이곳으로 옮겼다. 강이 해자 역할을 하고 수운으로 물자가 모였다.

【왜 그렇게 됐나】

기원전 326년 알렉산드로스가 인더스까지 왔다가 병사들의 거부로 돌아섰다. 그 여파로 서북 인도가 흔들렸다.

기원전 322년 무렵 찬드라굽타 마우리아가 마가다의 난다 왕조를 무너뜨리고 마우리아 제국을 세웠다. 파탈리푸트라가 그 수도다.

그의 조언자가 카우틸리야다. 그가 썼다고 전하는 아르타샤스트라는 통치와 외교와 첩보에 관한 실용서다. 도덕보다 국가의 이익을 앞세운다는 점에서 마키아벨리와 비교된다.

【어떻게 흘렀나】

그리스인 메가스테네스가 셀레우코스의 사절로 이 도시에 머물렀다. 그가 남긴 기록이 전해진다.

성벽에 망루가 570개, 문이 64개였다고 적었다. 나무로 만든 성벽 밖에 넓은 해자가 있었다. 길이가 15킬로미터에 이르는 도시였다. 당시 세계 최대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기원전 268년 아소카가 즉위했다. 형제들을 죽이고 왕이 됐고, 칼링가 정복에서 10만 명이 죽는 것을 보고 돌아섰다.

그는 바위와 돌기둥에 자기 정책을 새겼다. 사람과 짐승을 위한 병원을 짓고, 길가에 나무를 심고, 우물을 팠다는 내용이다. 모든 종교를 존중하라는 대목도 있다.

불교를 국가가 후원했다. 파탈리푸트라에서 3차 결집이 열려 경전이 정리됐고, 스리랑카와 중앙아시아로 전도단이 갔다. 불교가 세계 종교가 되는 출발점이다.

아소카의 사자 기둥머리가 지금 인도의 국장이다. 그 아래 법륜이 국기 한가운데 있다.

이후 굽타 왕조 때 다시 수도가 됐다. 5세기 이 시기에 영이 수학 기호로 쓰이고 십진법이 정리됐다.

【그래서】

6세기 이후 쇠퇴했다. 강의 물길이 바뀌고 홍수가 잦았다. 12세기에는 거의 버려졌다.

【남은 것】

발굴이 어렵다. 고대 유적이 지금 파트나 시내와 논밭 아래에 있고 지하수위가 높다. 나무 성벽 일부가 확인됐다.

이 도시가 남긴 것은 유적이 아니라 제도와 관념이다.

아소카의 비문은 통치자가 자기 잘못을 공개적으로 적은 드문 기록이다. 칼링가에서 죽은 사람들에 대해 깊이 슬퍼한다고 새겼다.

20세기 인도가 독립하며 이 왕의 상징을 국가의 표지로 삼았다. 종교와 언어가 다양한 나라를 하나로 묶을 상징으로, 특정 종교의 것이 아니면서 관용을 내건 이 왕이 선택된 것이다.

2,300년 전 돌에 새긴 문장이 지금 인도 지폐와 여권에 있다.

지도에서 보기: BC 5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메디나 부하라 메르브 제노바 그라나다 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