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투어 · 아무 곳이나 누르면 멈춤
지도에 표시
지도는 휠·더블클릭·드래그 · PgUp/PgDn은 스냅샷 이동
게이지를 Shift+드래그하면 10배 정밀 · 오른쪽 눈금은 인물·전쟁·사건이 있는 자리
틀린 데나 빠진 데를 알려주시면 확인하고 고칩니다.
이 브라우저에만 저장됩니다. 서버로 아무것도 보내지 않습니다.
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알렉산드로스가 후계자를 정하지 못하고 죽자 부하 장군들이 제국을 나눠 가졌다. 셀레우코스·프톨레마이오스·안티고노스 왕조가 서로 싸우는 동안 서쪽에서 로마가 올라왔다.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해당 없음
한니발을 이탈리아에서 끌어내려 카르타고 본토를 쳤다. 자마에서 그를 꺾었다.
정장(亭長)이던 사내가 항우를 꺾고 400년 한 제국의 문을 열었다. 「사람을 쓸 줄 알았다」는 것이 스스로 꼽은 승인이었다.
힘은 산을 뽑고 기세는 세상을 덮었으나, 마지막 전투에서 사면초가에 갇혔다. 비극적 영웅의 전형이 됐다.
부력을 알아내고 지렛대의 원리를 밝혔다. 시라쿠사 공성 때 만든 기계들이 로마 함대를 여러 번 막았다.
아홉 살에 로마를 미워하겠다고 맹세했다고 전한다. 15년간 이탈리아 안에서 싸우며 로마를 여러 번 궤멸시켰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도시 · BC 190 · 서고트의 도읍, 번역 학교가 있던 곳
서고트의 도읍. 번역 학교가 있었다
타호강이 굽이쳐 흐르는 고지에 자리해 방어에 유리한 지형이다. 6세기 무렵 서고트 왕국이 이곳을 도읍으로 삼으며 이베리아반도의 정치적 중심지가 됐다.
711년 이슬람 세력의 침입으로 서고트 왕국이 무너진 뒤에도 톨레도는 지역 중심 도시로 이어졌고, 1085년 카스티야 왕국이 이곳을 되찾으며 레콩키스타의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정복 이후에도 무슬림·유대인·기독교인이 함께 살아, 12~13세기 「톨레도 번역 학교」를 통해 아랍어로 보존돼 있던 그리스 고전(아리스토텔레스 등)과 이슬람 학자들의 연구가 라틴어로 대거 번역됐다. 이는 훗날 유럽 스콜라 철학과 르네상스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받는다.
1561년 펠리페 2세가 수도를 마드리드로 옮기면서 정치적 중심의 지위는 잃었지만, 도시 자체는 크게 훼손되지 않고 남아 지금도 스페인을 대표하는 역사 도시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