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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혁명과 나폴레옹

프랑스 혁명이 왕정을 무너뜨리고 '국민'이라는 새로운 정치 단위를 만들었다. 나폴레옹이 그 이념을 총검에 실어 유럽 전역에 퍼뜨렸다.

한반도

조선 후기

세도정치와 삼정 문란이 겹쳤다. 서양 선박이 연안에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문을 닫아걸었다.

전쟁 3건

마이소르 전쟁1767 – 1799
영국 동인도회사 vs 마이소르 왕국

하이데르 알리와 아들 티푸 술탄의 마이소르가 프랑스와 손잡고 남인도에서 영국에 맞섰다.

제1차 전쟁 1767–1769폴릴루르에서 영국군 궤멸 1780제3차 전쟁·영토 절반 상실 1792세링가파탐 함락, 티푸 전사 1799

결과네 차례 전쟁 끝에 티푸 술탄이 성벽에서 죽었다. 로켓 부대로 영국군을 놀라게 한 마이소르는 영국의 위성국이 됐다.

4차례 · 티푸 술탄 전사
마라타 전쟁1775 – 1818
영국 동인도회사 vs 마라타 동맹

무굴이 무너진 뒤 인도 중부를 지배하던 마라타 동맹의 내분에 회사가 개입했다.

제1차 전쟁 1775–1782아사예 전투 1803제3차 전쟁 1817–1818페슈와 폐위 1818

결과웰즐리(뒷날 웰링턴)가 아사예에서 이기고 세 번째 전쟁으로 동맹이 해체됐다. 이로써 영국은 인도 아대륙의 실질적 지배자가 됐다.

43년 · 인도 지배 확정
나폴레옹 전쟁1792 – 1815
프랑스 vs 대프랑스 동맹 (영국·오스트리아·러시아·프로이센)

혁명 프랑스를 무너뜨리려는 왕정 국가들의 동맹과, 그 포위를 깨려는 나폴레옹의 팽창이 맞물렸다.

아우스터리츠 1805트라팔가 1805보로디노 1812라이프치히 1813워털루 1815

결과23년간 유럽 지도가 계속 뒤집혔다. 워털루에서 끝나고 빈 체제가 들어섰다.

23년 · 사망자 300만 이상으로 추정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33명

로베스피에르정치1793 · 공포정치를 이끈 「부패할 수 없는 자」
1758 – 1794

덕 없는 공포는 해롭고 공포 없는 덕은 무력하다. 혁명을 지키려 단두대를 돌리다 자신도 거기서 죽었다.

  • 자코뱅 지도자, 국왕 처형 주도(1793)
  • 공안위원회 — 공포정치(1793–1794)
  • 테르미도르 반동으로 처형
마리 앙투아네트정치1793 · 단두대에서 죽은 프랑스의 마지막 왕비
1755 – 1793

오스트리아에서 시집온 14세 소녀가 사치의 상징이 됐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은 하지 않은 말이지만 민중의 분노는 진짜였다.

  • 루이 16세와 결혼(1770)
  • 목걸이 사건(1785), 바렌 도주(1791)
  • 혁명재판소에서 처형(1793)
제너과학1796 · 백신을 처음 만든 의사
1749 – 1823

우두 고름을 접종해 천연두를 막는 첫 백신을 만들었다.

  • 첫 백신 접종 실험 1796
  • 백신(vaccine)이라는 말을 만듦
  • 1980년 천연두 박멸의 시작점
라부아지에과학1789 · 근대 화학의 아버지
1743 – 1794

정밀한 저울로 연소와 질량 보존을 증명했다. 프랑스 혁명 중 단두대에서 처형됐다.

  • 질량 보존 법칙
  • 산소 명명과 연소 이론
  • 1794년 단두대에서 처형
티푸 술탄장군1799 · 영국에 끝까지 맞선 사람
1751 – 1799

마이소르의 왕으로 네 차례 영국과 싸웠다. 로켓 무기를 실전에 썼고, 그 기술이 영국으로 건너가 콩그리브 로켓이 됐다.

  • 마이소르 전쟁 네 차례
  • 금속통 로켓 — 영국이 베껴 감
  • 1799년 세링가파탐에서 전사
볼타과학1800 · 물리학자
1745 – 1827

최초의 전지를 만들다

  • 볼타 전지 발명 1800
  • 동물전기설을 반박
  • 전압 단위 볼트의 유래
모차르트예술1786 · 35년의 생애에 600곡을 남긴 천재
1756 – 1791

다섯 살에 작곡하고 여덟 살에 교향곡을 썼다. 「피가로의 결혼」「돈 조반니」「마술피리」와 미완의 「레퀴엠」을 남기고 빈에서 빈곤 속에 죽었다.

  • 유럽 순회 신동 연주(1762–1766)
  • 「피가로의 결혼」(1786)「돈 조반니」「마술피리」
  • 「레퀴엠」 미완성 작
정약용사상1801 · 실학을 모은 사람
1762 – 1836

수원 화성에 거중기를 만들어 썼다. 천주교 문제로 18년간 강진에 유배됐고, 그 유배지에서 500권을 썼다.

  • 거중기 — 수원 화성 공사
  • 목민심서·경세유표·흠흠신서
  • 18년 유배 중에 500여 권 저술
가우스과학1801 · 수학자들의 왕
1777 – 1855

정수론·통계학·측지학까지 남긴 업적이 방대해 수학자들의 왕이라 불린다.

  • 정수론 연구 1801
  • 정규분포·최소제곱법
  • 세레스 궤도 계산으로 명성
투생 루베르튀르정치1801 · 노예 반란을 승리로 이끈 아이티 혁명의 지도자
1743 – 1803

노예로 태어나 프랑스·에스파냐·영국군을 차례로 물리쳤다. 나폴레옹에게 붙잡혀 알프스 감옥에서 죽었으나 이듬해 아이티가 독립했다.

  • 생도맹그 노예 반란 지휘(1791–)
  • 프랑스 총독으로 노예제 폐지 관철
  • 1801년 헌법, 나폴레옹에게 체포
돌턴과학1803 · 화학자
1766 – 1844

원자설을 세우다

  • 근대 원자설 제창 1803
  • 일정 성분비 법칙 설명
  • 색맹을 스스로 연구
나폴레옹장군1804 · 프랑스 황제
1769 – 1821

혁명의 이념을 총검에 실어 유럽에 퍼뜨렸다. 그가 지나간 자리마다 국민국가가 자랐다.

  • 아우스터리츠 대승 1805
  • 나폴레옹 법전
  • 러시아 원정 실패와 몰락
넬슨장군1805 · 영국 제독
1758 – 1805

트라팔가에서 프랑스·에스파냐 연합함대를 꺾고 전사했다. 영국의 제해권이 굳어졌다.

  • 나일 해전 1798
  • 트라팔가 승리 1805
  • 그 전투에서 전사
칸트사상1781 · 「순수이성비판」으로 근대 철학을 뒤집은 사상가
1724 – 1804

평생 쾨니히스베르크를 떠나지 않았다. 우리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우리의 틀로 본다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루었다.

  • 「순수이성비판」(1781)
  • 「실천이성비판」 — 정언명령
  • 「영구평화론」 — 국제연맹의 사상적 뿌리
김홍도예술1780 · 조선의 화가
1745 – ?

임금의 초상을 그리는 화원이면서 씨름하고 서당에서 우는 아이를 그렸다. 그림의 주인공이 왕에서 사람으로 내려온 순간이다.

  • 단원풍속도첩 — 씨름·서당·타작
  • 정조의 어진을 그림
  • 금강산 실경산수
박지원사상1780 · 북학파의 문장가
1737 – 1805

청에 다녀와 열하일기를 썼다. 오랑캐라 부르던 나라가 실제로는 더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적었다.

  • 열하일기
  • 양반전·허생전 — 양반을 웃음거리로 삼음
  • 수레와 벽돌을 쓰자고 주장
괴테예술1808 · 「파우스트」의 시인, 독일 문학의 정점
1749 – 1832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유럽을 울렸고 60년에 걸쳐 「파우스트」를 완성했다. 시인이자 정치가, 과학자였다.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74)
  • 바이마르 공국의 재상
  • 「파우스트」(1808·1832), 「색채론」
베토벤예술1808 · 귀먹은 뒤 「합창」을 쓴 작곡가
1770 – 1827

청력을 잃고 유서를 썼지만 「운명」을 목덜미로 붙잡겠다며 일어섰다. 9번 교향곡의 「환희의 송가」는 유럽연합의 노래가 됐다.

  • 교향곡 3번 「영웅」(1804), 5번 「운명」(1808)
  • 하일리겐슈타트 유서(1802) — 난청 고백
  • 교향곡 9번 「합창」(1824)
워싱턴정치1776 · 대륙군 총사령관
1732 – 1799

독립을 이끌고 왕이 되기를 거절했다. 두 번의 임기 뒤 스스로 물러났다.

  • 대륙군 총사령관
  • 요크타운 승리
  • 두 번의 임기 뒤 스스로 물러남
정조정치1776 · 조선 22대 왕
1752 – 1800

규장각을 세우고 수원 화성을 쌓았다. 탕평으로 붕당을 눌렀다.

  • 규장각 설치
  • 수원 화성 축조
  • 탕평과 신해통공
애덤 스미스사상1776 · 「국부론」으로 경제학을 세운 철학자
1723 – 1790

「보이지 않는 손」— 각자가 자기 이익을 좇을 때 사회 전체가 부유해진다. 분업과 자유무역을 설명한 이 책이 자본주의의 경전이 됐다.

  • 「도덕감정론」(1759)
  • 「국부론」(1776)
  • 분업·자유시장·보이지 않는 손
제퍼슨정치1776 · 독립선언문을 쓴 미국 3대 대통령
1743 – 1826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고 썼으면서 노예 600명을 소유했다. 루이지애나를 사들여 나라를 두 배로 넓혔다.

  • 독립선언문 기초(1776)
  • 버지니아 종교자유법
  • 루이지애나 매입(1803), 루이스·클라크 원정
벤저민 프랭클린과학1776 · 번개를 잡은 과학자이자 미국 건국의 아버지
1706 – 1790

인쇄공에서 시작해 피뢰침을 발명하고 프랑스를 독립전쟁의 동맹으로 끌어들였다. 독립선언과 헌법에 모두 서명한 유일한 인물 중 하나다.

  • 연 실험으로 번개의 전기 증명(1752), 피뢰침
  • 독립선언 기초위원, 프랑스 동맹 체결(1778)
  •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
제임스 와트과학1776 · 증기기관을 개량해 산업혁명의 동력을 만든 기술자
1736 – 1819

분리 응축기로 증기기관의 효율을 세 배 올렸고 회전 운동으로 바꿔 공장과 기차를 움직였다. 힘의 단위 「와트」가 그의 이름이다.

  • 분리 응축기 특허(1769)
  • 볼턴과 회전식 증기기관 상용화(1776–)
  • 마력(馬力) 단위 정의
테쿰세장군1811 · 부족을 하나로 묶으려 한 사람
1768 무렵 – 1813

땅은 누구의 것도 아니어서 팔 수 없다고 했다. 흩어진 부족을 하나의 연합으로 묶어 서쪽 확장을 막으려 했다. 1813년 전사하며 그 구상도 끝났다.

  • 부족 연합 결성
  • 땅은 팔 수 없다는 논리
  • 템스 전투에서 전사
아보가드로과학1811 · 물리학자
1776 – 1856

기체 속 입자 수의 법칙

  • 아보가드로 가설 1811
  • 분자 개념을 도입
  • 사후 재조명돼 인정받음
호세 아르티가스정치1811 · 우루과이 독립의 아버지
1764 – 1850

스페인, 이어 이 지역을 점령한 브라질(포르투갈)에 맞서 게릴라식 저항운동을 이끌며 우루과이 독립운동의 기틀을 놓았다. 정작 자신은 독립을 보지 못한 채 파라과이로 망명해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 스페인·포르투갈에 맞선 저항운동 지도
  • 토지 개혁 등 급진적 사회 개혁 시도
  • 말년 파라과이 망명, 사후 '독립의 아버지'로 추앙
웰링턴장군1815 ·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을 꺾은 「철의 공작」
1769 – 1852

이베리아반도에서 프랑스군을 몰아냈고 워털루에서 프로이센군과 함께 나폴레옹의 마지막 도박을 끝냈다. 뒤에 총리도 지냈다.

  • 반도전쟁 — 살라망카·비토리아 승리
  • 워털루 전투 승리(1815)
  • 영국 총리(1828–1830), 가톨릭 해방법
메테르니히정치1815 · 빈 체제를 설계한 반동의 재상
1773 – 1859

나폴레옹 이후의 유럽을 왕정과 세력 균형으로 되돌렸다. 33년간 혁명을 억눌렀으나 1848년 혁명에 쫓겨났다.

  • 빈 회의 주도(1814–1815)
  • 카를스바트 결의 — 언론·대학 통제
  • 1848년 혁명으로 실각·망명
제임스 쿡탐험1770 · 태평양을 지도에 올린 항해가
1728 – 1779

세 차례 항해로 태평양의 해안선을 그렸다. 감귤로 괴혈병을 막아 긴 항해를 가능하게 했다. 그가 그린 지도가 곧 식민의 지도가 됐다.

  • 뉴질랜드와 호주 동해안 측량
  • 괴혈병 예방
  • 하와이에서 살해
주제 지 산마르틴장군1817 · 안데스를 넘긴 장군
1778 – 1850

아르헨티나에서 군대를 만들어 눈 덮인 안데스를 넘어 칠레를 해방하고 배로 페루로 갔다. 볼리바르와 만난 뒤 지휘권을 넘기고 스스로 유럽으로 떠났다.

  • 안데스 도하 — 5,000명이 4,000m를 넘었다
  • 과야킬 회담 뒤 은퇴
샤카 줄루장군1818 · 줄루를 제국으로 만든 사람
1787 무렵 – 1828

던지는 창 대신 짧은 찌르는 창을 쓰게 하고, 소뿔 모양으로 감싸는 진형을 만들었다. 작은 부족을 10년 만에 남아프리카 최강으로 바꿨다.

  • 이클와 — 짧은 찌르는 창
  • 소뿔 진형
  • 이복동생들에게 살해
시몬 볼리바르장군1819 · 여섯 나라를 떼어 낸 사람
1783 – 1830

안데스를 넘어 스페인군의 뒤를 쳤다. 오늘의 베네수엘라·콜롬비아·에콰도르·페루·볼리비아·파나마가 그의 원정에서 나왔다. 하나로 묶으려 했으나 갈라졌다.

  • 보야카 1819
  • 그란콜롬비아의 결성과 해체
  • 혁명에 헌신한 자는 바다를 간 것이나 같다

그 무렵의 사건

1795
폴란드 분할
1772·1793·1795년 세 차례에 걸쳐 러시아·프로이센·오스트리아가 폴란드-리투아니아를 나눠 가졌다. 1795년 폴란드는 유럽 지도에서 123년간 사라졌다.
국내 정치 마비(자유거부권)를 틈타 이웃 세 나라가 영토를 잠식했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서야 독립국으로 부활했다.
1796
규장각과 수원 화성
정조는 왕실 도서관이자 정책 연구 기구인 규장각을 세워 친위 세력을 길렀고, 개혁의 이상을 담아 수원 화성을 쌓았다.
정조는 즉위하자마자 창덕궁 후원에 규장각을 설치했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왕실 서적을 보관하는 도서관이었지만, 실제로는 정약용을 비롯한 젊고 유능한 학자들을 뽑아 국왕의 개혁을 뒷받침하는 정책 참모 기구로 키우려는 목적이 컸다. 정조는 여기서 기른 인재들을 통해 붕당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정치 세력을 만들고자 했다.
1789
프랑스 혁명
바스티유가 함락되고 왕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국민'이라는 새 정치 단위가 생겼다. 나폴레옹이 이를 총검에 실어 유럽에 퍼뜨린다.
1800
세도정치
정조 사후 어린 왕들이 잇따라 즉위하면서, 왕실 외척인 안동 김씨·풍양 조씨 등 소수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는 세도정치가 60여 년간 이어졌다.
정조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고 11살의 순조가 즉위하자, 순조의 장인 가문인 안동 김씨가 권력을 독점하기 시작했다. 이후 헌종·철종 대에도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 등 왕실과 혼인 관계를 맺은 소수 가문이 비변사 등 핵심 권력 기구를 장악하고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세도정치가 계속되었다. 관직이 뇌물로 사고 팔리는 매관매직이 성행했고, 이렇게 관직을 산 지방관들은 부임지에서 백성을 수탈해 본전을 되찾으려 했다. 이 과정에서 삼정(전정·군정·환곡)의 문란이 극에 달해 전국 각지에서 농민 봉기가 잇따랐고, 세도정치는 조선 후기 사회 혼란과 민란의 근본적인 배경이 되었다.
1782
차크리 왕조 성립
1782년, 라마 1세가 방콕을 수도로 삼아 차크리 왕조를 열었다. 이 왕조는 지금까지 태국을 통치하고 있다.
태국(당시 시암)은 이 왕조 아래 동남아시아에서 식민지가 되지 않고 독립을 유지한 유일한 나라가 됐다 — 영국령과 프랑스령 사이에서 완충국 역할을 하며 외교적으로 줄타기를 한 결과였다.
1776
미국 독립선언
7월 4일 필라델피아에서 13개 식민지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차 세금과 대표 없는 과세에 반발한 식민지는 1775년 렉싱턴에서 총을 들었다. 제퍼슨이 쓴 선언문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창조됐고 생명·자유·행복 추구의 권리를 가지며 정부가 이를 어기면 갈아치울 수 있다고 했다. 서명자들은 반역죄로 교수형을 각오했다. 8년 전쟁 뒤 독립이 인정됐고, 이 문서는 프랑스 혁명과 이후 모든 독립선언의 본보기가 됐다.

교역로 2개

희망봉 항로1500 – 1900

바스쿠 다 가마 이후 400년. 지중해를 거치지 않고 아시아에 닿는 길이 열리며 베네치아와 오스만이 밀려났다.

오간 것후추와 면직물, 그리고 나중엔 차와 아편. 지중해를 거치지 않는 길이 베네치아와 오스만을 밀어냈다.
거점리스본 · 카나리아 · 희망봉 · 모잠비크 · 고아 · 말라카
대서양 삼각무역1600 – 1850

유럽의 공산품 → 아프리카의 노예 → 아메리카의 설탕·면화 → 유럽. 세 대륙이 하나의 경제로 묶였다.

오간 것유럽의 총기·직물 → 아프리카의 노예 → 아메리카의 설탕·면화. 1,200만 명이 대서양을 건넜다.
거점리버풀 · 리스본 · 기니만 · 카리브 · 버지니아

토론토

도시 · 1793 · 요크라 불리던 호숫가 요새에서 캐나다 최대 도시로

온타리오호 북안에 자리했다. 1793년 영국이 이곳에 「요크」라는 이름의 요새 도시를 세워 어퍼캐나다(지금의 온타리오주)의 수도로 삼았다.

1812년 미영전쟁 때 미군에 점령·방화되는 피해를 입었으나 곧 재건됐고, 1834년 원래 원주민 지명이던 「토론토」로 이름을 바꿨다.

19~20세기 이민(특히 20세기 후반 이후 아시아·카리브해 등 비유럽권 이민)이 크게 늘면서 캐나다에서 가장 인구가 많고 다인종적인 도시로 성장했다. 정치적 수도는 오타와지만, 경제·금융 규모로는 캐나다 최대 도시다.

지도에서 보기: 1783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워싱턴 수원 화성 시드니 테헤란 방콕 로스앤젤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