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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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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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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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고전기

아테네가 델로스 동맹을 제국으로 바꿨고 스파르타가 이를 꺾었다. 도시국가들이 서로를 소모시키는 사이 북쪽 변방의 마케도니아가 그리스 전체를 장악했다.

한반도

고조선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전쟁 1건

알렉산드로스 동방원정BC 334 – BC 323
마케도니아·그리스 연합군 vs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아버지 필리포스가 그리스를 통합하며 준비한 페르시아 원정을, 즉위한 알렉산드로스가 그대로 밀어붙였다. 명분은 페르시아 전쟁의 복수였다.

그라니코스 BC 334이소스 BC 333가우가멜라 BC 331히다스페스 BC 326

결과11년 만에 그리스에서 인더스까지 닿았다. 후계자를 정하지 못하고 32세에 죽는다.

11년 · 3만 5천으로 출발해 인더스까지 5천 킬로미터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4명

알렉산드로스장군BC 334 · 마케도니아 왕
BC 356 – BC 323

스무 살에 즉위해 11년 만에 인더스까지 닿았다. 후계자를 정하지 못하고 32세에 죽는다.

  • 가우가멜라에서 다리우스 3세 격파
  • 이집트에 알렉산드리아 건설
  • 그리스 문화를 인더스까지 퍼뜨림
아리스토텔레스사상BC 335 · 논리학에서 생물학까지 학문의 틀을 세운 철학자
BC 384 – BC 322

플라톤의 제자이자 알렉산드로스의 스승. 관찰과 분류로 세계를 설명하려 했고, 그의 체계는 2천 년 동안 서양 학문의 표준이었다.

  • 리케이온 설립, 소요학파
  • 「형이상학」「니코마코스 윤리학」「정치학」
  • 삼단논법 — 형식논리학의 출발
찬드라굽타 마우리아정치BC 322 · 인도 최초의 통일 제국을 세운 사람
BC 340 무렵 – BC 297 무렵

알렉산드로스가 인더스까지 왔다 물러간 뒤의 혼란을 타고 난다 왕조를 무너뜨렸다. 조언자 카우틸리야가 통치와 첩보에 관한 책을 남겼다.

  • BC 322 마우리아 건국
  • 셀레우코스를 물리치고 코끼리 500마리와 강화
  • 아르타샤스트라 — 도덕보다 국익
맹자사상BC 320 · 성선설과 왕도정치를 말한 유가의 2인자
BC 372 무렵 – BC 289 무렵

사람은 본디 착하다 — 그러니 임금은 힘이 아니라 어짊으로 다스려야 하고, 백성을 버린 임금은 갈아치울 수 있다고까지 말했다.

  • 성선설 — 인간 본성은 선하다
  • 왕도정치와 역성혁명의 정당화
  • 「맹자」 7편, 사서(四書)의 하나

그 무렵의 사건

BC 312
아피아 가도
길이 제국을 만든다.
로마 최초의 포장 간선도로. 자갈과 돌을 여러 층으로 깔아 비가 와도 군단이 하루 30km를 갔다. 이후 8만 km의 도로망이 지중해를 하나로 묶는다.
BC 300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세상의 모든 책을 한곳에 모으려 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항구에 들어오는 배의 책을 모두 필사했다. 에라토스테네스가 여기서 지구 둘레를 오차 2%로 계산했고, 유클리드가 「원론」을 썼다.
BC 300
야요이 — 벼와 쇠가 건너오다
한반도에서 논농사와 금속이 함께 건너갔다.
조몬의 채집 생활이 논농사로 바뀌었다. 벼와 청동기와 철기가 한반도를 거쳐 규슈로 들어갔다. 사람이 모이고 잉여가 생기자 다투기 시작했고, 그 위에서 야마타이 같은 나라가 선다.
BC 390
켈트족의 확산
갈리아의 켈트 전사 브렌누스가 로마를 약탈했다. 「패자에게 화 있으라」— 알프스 북쪽 유럽은 켈트의 땅이었다.
할슈타트와 라텐 문화로 알려진 켈트족은 BC 5세기부터 갈리아·브리타니아·이베리아·아나톨리아까지 퍼졌다. BC 390년 알리아에서 로마군을 깨고 도시를 점령해 금을 받고 물러났다. 저울에 칼을 던지며 한 말이 전한다. 카이사르의 갈리아 정복과 로마화로 대륙의 켈트 언어는 사라졌고 아일랜드·웨일스·브르타뉴에만 남았다. 드루이드와 할로윈의 뿌리가 이들이다.
BC 399
소크라테스의 죽음
아테네가 철학자에게 독배를 내렸다.
제자 플라톤이 이 재판을 기록하며 서양 철학이 문서로 남기 시작했다.

교역로 1개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알렉산드리아

도시 · BC 331 · 도서관과 등대가 있었다

【그때 그 자리】

기원전 331년 알렉산드로스가 이집트에 들어왔다. 페르시아 지배에 시달리던 이집트인들은 그를 해방자로 맞았다.

그는 나일강 삼각주 서쪽 끝 지중해변에 새 도시를 계획했다. 자기 이름을 붙인 도시를 여럿 세웠는데, 그중 이곳만 크게 성공했다.

자리가 이유다. 나일강의 물과 물자를 받으면서 지중해로 열려 있다. 앞바다의 파로스섬이 천연 방파제가 되어 항구를 만들기 좋았다.

【왜 그렇게 됐나】

알렉산드로스가 죽은 뒤 부하 프톨레마이오스가 이집트를 차지하고 이 도시를 수도로 삼았다. 그는 알렉산드로스의 시신까지 가져와 여기 안치했다. 정통성을 도시에 심은 것이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그리스인이 이집트를 다스리는 구조였다. 그래서 문화적 권위가 필요했다. 그 답이 학문이었다.

【어떻게 흘렀나】

무세이온이라는 연구 기관을 세우고 학자들을 국비로 초빙했다. 숙식과 급여를 주고 세금을 면제했다. 오늘날 뮤지엄이라는 말이 여기서 왔다.

부속 도서관에 파피루스 두루마리 수십만 권을 모았다. 항구에 들어온 배의 책을 모두 압수해 베낀 뒤 사본을 돌려주고 원본을 보관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여기서 나온 것이 이렇다. 유클리드가 기하학원론을 썼다. 에라토스테네스가 두 도시의 그림자 각도 차이로 지구 둘레를 계산했는데 오차가 몇 퍼센트에 불과했다. 아리스타르코스가 태양이 중심이라고 주장했다. 코페르니쿠스보다 1,700년 앞선다. 헤로필로스가 인체를 해부해 신경을 밝혔다. 히브리어 성경이 그리스어로 옮겨진 70인역이 여기서 나왔다.

파로스 등대가 세워졌다. 높이 100미터 이상으로 고대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다. 14세기 지진으로 무너졌다.

인구가 50만을 넘어 로마 다음가는 도시였다. 그리스인과 이집트인과 유대인이 각자의 구역에 살았다.

【그래서】

기원전 30년 클레오파트라가 죽고 로마의 속주가 됐다. 로마의 곡창 역할을 했다.

도서관은 한 번에 사라진 것이 아니다. 기원전 48년 카이사르의 내전 때 항구의 화재가 번졌고, 3세기 아우렐리아누스의 진압 때 학자 구역이 파괴됐으며, 391년 테오도시우스의 이교 신전 폐쇄령으로 세라피움이 헐렸다. 여러 차례에 걸쳐 흩어졌다.

415년 여성 수학자이자 철학자 히파티아가 군중에게 살해됐다. 종교 갈등이 배경이었다. 이 사건이 고대 학문 도시의 끝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자주 인용된다.

641년 이슬람 세력이 들어왔고 수도가 카이로로 옮겨가면서 쇠퇴했다.

【남은 것】

인류가 아는 것을 한곳에 모으려 한 첫 시도였다. 국가가 학자에게 급여를 주고 연구하게 한 것도 여기가 처음이다. 지금 연구소와 대학의 원형이 이 도시에 있다.

잃어버린 것의 크기는 알 수 없다. 목록조차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리스타르코스의 태양중심설도 다른 사람이 인용한 문장으로만 전한다.

2002년 같은 자리에 새 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이름이 비블리오테카 알렉산드리나다.

지도에서 보기: BC 4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함양 성도 안티오키아 충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