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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도시와 문자가 나타났다. 관개 농업이 잉여를 만들고 신전과 왕궁이 그것을 관리했다.
빗살무늬토기와 간석기의 시대. 아직 국가라 부를 정치체가 없다.
해당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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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없음
도시 · BC 3000 · 다르다넬스 길목의 언덕 도시. 아홉 겹으로 쌓인 층 가운데 하나가 BC 1180년경 불탔다
【그때 그 자리】
다르다넬스 해협 입구 언덕이다. 흑해와 지중해를 잇는 물길의 목이다. 이 해협은 북에서 남으로 물살이 세고 바람도 자주 거슬러, 고대 배들이 통과하려면 바람을 기다려야 했다. 그동안 머물 자리와 통행세를 챙길 수 있는 위치다.
기원전 3천 년기부터 사람이 살았다. 발굴 결과 아홉 개의 층이 겹쳐 있다. 무너지면 그 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왜 그렇게 됐나】
호메로스의 일리아스가 이 도시의 전쟁을 노래했다. 스파르타 왕비 헬레네를 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데려가자 그리스 연합군이 10년을 포위했다는 이야기다.
이 서사시는 기원전 8세기에 정리된 것으로 보이고, 노래한 사건은 그보다 400년쯤 앞선다. 오랫동안 순수한 신화로 여겨졌다.
【어떻게 흘렀나】
1870년대 독일 사업가 하인리히 슐리만이 이 이야기를 사실로 믿고 발굴에 나섰다.
그는 히사를리크 언덕을 팠다. 실제로 성벽과 불탄 층이 나왔다. 황금 유물을 찾아내 프리아모스의 보물이라 이름 붙이고 아내에게 걸어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그의 발굴은 문제가 많았다. 그는 가장 오래된 층을 찾겠다며 위쪽을 마구 파냈다. 그 과정에서 정작 호메로스가 노래한 시기에 해당하는 층을 상당 부분 파괴했다. 그가 찾은 보물도 트로이 전쟁보다 천 년 앞선 층의 것이었다.
보물은 독일로 반출됐다가 2차 세계대전 때 소련군이 가져갔다. 지금 모스크바에 있다. 튀르키예가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이후 발굴로 층이 정리됐다. 기원전 13세기의 트로이 7a층에서 화재와 파괴의 흔적, 급히 묻은 시신, 투석용 돌이 나왔다. 시기가 전승과 맞아떨어진다.
히타이트 문서에도 단서가 있다. 윌루사라는 도시와 아히야와라는 세력이 나오는데, 각각 일리오스와 아카이아에 대응한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즉 이 지역에서 그리스계 세력과의 분쟁이 실제로 있었다.
【그래서】
지금 학계는 대체로 이렇게 본다. 트로이는 실재했고, 청동기 말에 파괴됐으며, 그 기억이 구전으로 이어져 서사시가 됐다. 다만 목마와 신들의 개입 같은 이야기는 문학이다. 10년 전쟁이 한 번 있었다기보다 여러 차례의 분쟁이 하나로 합쳐졌을 가능성이 크다.
【남은 것】
일리아스는 유럽 문학의 출발점이다. 그런데 이 작품이 다루는 것은 승리가 아니라 분노와 죽음이다. 첫 단어가 분노다. 마지막 장면은 아킬레우스가 자기가 죽인 헥토르의 아버지에게 시신을 돌려주며 함께 우는 것이다. 적을 사람으로 그린 최초의 전쟁 문학이라는 평가가 있다.
슐리만의 이야기는 오래 낭만적으로 전해졌다. 어린 시절 그림책을 보고 트로이를 찾겠다고 결심했다는 회고는 그가 나중에 지어낸 것으로 밝혀졌다. 발굴 방식도 지금 기준으로는 파괴에 가깝다.
199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다. 신화를 믿고 판 사람이 실제로 무언가를 찾아냈고, 동시에 찾으려던 것을 부쉈다.
지도에서 보기: BC 30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니네베 다마스쿠스 예루살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