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티우아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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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년 전
AD 2025
시대
주요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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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원수정과 로마 평화

아우구스투스가 공화정의 외피를 남긴 채 1인 지배를 세웠다. 200년간 지중해 전역에 큰 전쟁이 없었고 속주마다 도시와 도로와 수도교가 깔렸다.

한반도

삼국의 성립

신라·고구려·백제가 차례로 서고 가야가 낙동강 유역에 자리 잡았다. 아직 연맹왕국 단계로 왕권이 강하지 않았다.

전쟁 1건

다키아 전쟁101 – 106
로마 (트라야누스) vs 다키아

다키아 왕 데케발루스가 도나우 남쪽을 위협하며 로마에서 조공을 받아냈다. 트라야누스는 이 굴욕과 다키아의 금광을 동시에 겨냥했다.

타파에 101사르미제게투사 106

결과다키아가 속주가 됐다. 로마 제국의 최대 판도가 이때다.

두 차례 원정 · 다키아 금광이 로마 재정을 채웠다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2명

트라야누스정치110 · 로마를 가장 크게 만든 황제
AD 53 – AD 117

속주 히스파니아 출신의 첫 황제. 다키아의 금으로 로마를 다시 짓고 동방으로 진군했다.

  • 다키아 정복 — 오늘날 루마니아
  • 제국 최대 판도 달성
  • 빈민 아동 부양 제도 알리멘타
하드리아누스정치122 · 장벽을 쌓고 제국을 순행한 황제
76 – 138, 재위 117 – 138

확장을 멈추고 지키기로 한 황제. 브리타니아에 장벽을 세우고, 재위 절반을 속주를 돌며 보냈으며, 판테온을 다시 지었다.

  • 하드리아누스 장벽(122)
  • 제국 전역 순행과 속주 정비
  • 판테온 재건, 바르 코크바 반란 진압

그 무렵의 사건

100
악숨
홍해를 쥔 아프리카의 제국.
에티오피아 고원에서 홍해로 나가는 길목에 섰다. 자기 동전을 찍은 아프리카 최초의 나라 축에 든다. 통돌을 깎아 세운 오벨리스크가 가장 큰 것은 33미터였다. 이슬람이 홍해를 쥐면서 고원 안쪽으로 물러났다.
100
모체와 나스카
얼굴을 그대로 빚은 토기, 하늘에서만 보이는 그림.
북쪽의 모체는 사람 얼굴을 사진처럼 빚었고 금세공이 정교했다. 남쪽의 나스카는 사막 바닥의 돌을 걷어 내 수백 미터짜리 선을 그렸다. 두 문화 모두 긴 가뭄과 엘니뇨에 시달리다 흩어졌다.
100
옥에오와 푸난
메콩 삼각주에서 로마 금화가 나왔다.
동남아시아 최초의 큰 나라로 꼽히는 푸난의 항구다. 인도 상인과 중국 사신이 드나들었고, 발굴에서 로마 안토니누스 시대의 금화와 인도 보석과 중국 거울이 함께 나왔다. 운하를 파서 배를 안쪽까지 들였다.
100
호프웰의 길
대륙을 가로지르는 물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오하이오의 무덤에서 로키산맥 흑요석, 오대호 구리, 멕시코만 상어 이빨, 애팔래치아 운모가 함께 나온다. 나라도 도시도 없었지만 북아메리카 절반을 잇는 교환망이 있었다. 종교 의례가 그 길을 움직였다고 본다.
105
채륜과 종이의 발명
105년, 후한의 환관 채륜이 나무껍질·삼베·헌 어망 등을 이용한 종이 제조법을 황제에게 보고했다. 이는 이후 인류의 지식 전파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은 발명이었다.
종이가 발명되기 전에는 대나무 조각이나 비단에 글을 썼는데, 대나무는 무겁고 비단은 지나치게 비쌌다. 채륜이 정리한 제조법은 값싼 재료로 가볍고 대량생산이 가능한 종이를 만들 수 있게 했다. 이 기술은 처음엔 중국 안에서만 비밀리에 전해지다, 8세기 무렵 이슬람 세계로 전파되고(전설에 따르면 탈라스 전투 포로를 통해), 다시 유럽으로 건너가며 점차 전 세계로 퍼졌다. 값싼 종이의 보급은 훗날 인쇄술의 발전과 맞물려 지식이 더 널리, 더 빠르게 퍼지는 밑바탕이 됐다.
80
콜로세움 완공
5만 명을 수용한 로마의 원형경기장이 열렸다. 개막 축제 100일 동안 맹수 9천 마리가 죽었다.
네로의 황금 궁전 연못 자리에 베스파시아누스가 짓기 시작해 아들 티투스가 완성했다. 검투사 경기와 맹수 사냥, 처형이 무료로 열렸고 황제가 민심을 얻는 장치였다. 지하에는 승강기와 통로가 있었다. 5세기까지 쓰이다 지진과 채석으로 허물어졌고, 중세엔 성당 건축의 돌 창고였다. 「콜로세움이 서 있는 한 로마도 선다」는 말이 전한다.

교역로 4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해상 실크로드100 – 1500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오간 것도자기와 차, 향신료와 향목. 배 한 척이 낙타 수천 마리 몫을 실었다.
거점광저우 · 참파 · 말라카 · 스리랑카 · 캘리컷 · 호르무즈 · 바스라
인도양 계절풍 항로BC 100 – 700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오간 것로마의 금화가 인도로 흘러가고 후추가 로마로 왔다. 로마 원로원이 금 유출을 걱정할 정도였다.
거점미오스호르모스 · 아덴 · 소코트라 · 무지리스

테오티우아칸

도시 · 100 · 신전과 궁전만 골라 불탔다

【그때 그 자리】

멕시코 중부 고원의 계곡이다. 해발 2,300미터다.

기원전 1세기 무렵 사람이 모이기 시작했다. 인근 화산이 폭발해 다른 정착지가 파괴되면서 사람들이 이곳으로 왔다는 설명이 있다.

흑요석 산지가 가까웠다. 금속을 쓰지 않던 이 지역에서 흑요석은 칼과 도구의 재료였다. 이 자원을 쥔 것이 성장의 바탕이 됐다.

【왜 그렇게 됐나】

기원후 1세기부터 도시가 계획적으로 지어졌다.

놀라운 것은 그 규모와 정밀함이다.

남북으로 뻗은 큰길이 있다. 폭 40미터에 길이 4킬로미터다. 이 축이 정북에서 약 15.5도 동쪽으로 기울어 있는데, 특정 별의 위치나 지형에 맞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축을 따라 태양의 피라미드와 달의 피라미드가 섰다. 태양의 피라미드는 밑변 220미터, 높이 65미터다. 아메리카에서 세 번째로 큰 피라미드다.

전성기 인구가 10만에서 20만이었다. 당시 세계에서 손꼽히는 대도시였다.

거주 구역이 특이하다. 아파트 같은 다세대 복합 건물이 2천 채 넘게 확인됐다. 한 건물에 수십에서 100명이 함께 살았다. 벽에 벽화가 그려져 있고 안뜰이 있다.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구역을 이뤄 살았다. 오아하카 구역과 마야 구역이 확인된다. 이민자들이 자기 방식대로 묻히고 자기 토기를 썼다.

【어떻게 흘렀나】

이 도시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

문자 기록이 거의 없다. 몇 개의 기호가 있지만 체계적인 문자로 보기 어렵다. 마야가 왕의 이름과 즉위 날짜를 새긴 것과 대비된다.

왕의 무덤이 확인되지 않았다. 왕을 새긴 조각도 없다. 다른 메소아메리카 도시에서 흔한 통치자 개인 숭배의 흔적이 없다.

그래서 이 도시를 누가 다스렸는지 모른다. 집단 지도 체제였다는 설, 여러 가문의 연합이었다는 설이 제기된다.

동시에 폭력의 흔적은 있다. 깃털 달린 뱀 피라미드 아래에서 무장한 채 묶여 매장된 200여 구가 나왔다. 건물을 지을 때 바친 것으로 보인다.

멀리까지 영향을 미쳤다. 1,000킬로미터 떨어진 마야 도시 티칼의 비문에 378년 서쪽에서 온 사람들이 왕조를 갈아치웠다는 기록이 있다. 그 인물들이 테오티우아칸과 관련된 것으로 본다.

【그래서】

550년 무렵 도시 중심부가 불탔다. 신전과 궁전이 집중적으로 파괴됐다.

외부 침입이라는 설과 내부 봉기라는 설이 있다. 지배층 건물만 골라 태운 흔적이 내부 반란 쪽을 뒷받침한다는 견해가 있다.

기후 자료에서 이 시기 가뭄이 확인된다. 식량 부족이 배경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남은 것】

수백 년 뒤 아즈텍이 이 폐허를 발견했다.

그들은 누가 지었는지 몰랐다. 신들이 모여 태양을 만든 곳이라 여겨 테오티우아칸이라 불렀다. 신들의 도시라는 뜻이다. 지금 우리가 쓰는 이름이 그것이다.

원래 이름은 모른다. 사람들이 자기를 뭐라 불렀는지도 모른다.

아즈텍 왕들이 이곳에 순례를 왔다. 자기보다 앞선 위대한 문명의 자리로 여겼다.

198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다. 발굴은 계속되고 있고 그때마다 새로운 것이 나온다. 2003년 깃털 달린 뱀 피라미드 아래에서 긴 터널이 발견돼 수천 점의 유물이 나왔다.

지도에서 보기: 100년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