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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도시와 문자가 나타났다. 관개 농업이 잉여를 만들고 신전과 왕궁이 그것을 관리했다.
빗살무늬토기와 간석기의 시대. 아직 국가라 부를 정치체가 없다.
해당 없음
해당 없음
해당 없음
도시 · BC 3200 · 룩소르 신전만 남았다
【그때 그 자리】
나일강 중류의 도시다. 이집트어로 와세트라 불렸고, 테베는 그리스인이 붙인 이름이다. 지금의 룩소르다.
이집트 고왕국의 중심은 북쪽 멤피스였다. 테베는 남쪽 지방 도시였다.
제1중간기에 중앙이 무너지자 지방 세력이 다퉜다. 기원전 2050년 무렵 테베의 멘투호테프 2세가 이집트를 다시 통일하면서 이 도시가 중심이 됐다.
【왜 그렇게 됐나】
테베가 오래 중심으로 남은 데는 신이 있었다.
원래 지역 신이던 아문이 국가 최고신이 됐다. 태양신 라와 합쳐져 아문라가 됐다. 도시의 신이 나라의 신이 되면 그 신전이 나라의 부를 모은다.
제2중간기에 힉소스가 북쪽을 지배할 때 테베가 저항의 근거지였고, 기원전 1550년 아흐모세가 이들을 몰아내고 신왕국을 열었다. 이때부터 이집트가 밖으로 뻗는다. 정복지에서 들어온 공물이 아문 신전으로 갔다.
【어떻게 흘렀나】
카르나크 신전이 그 결과다. 2천 년에 걸쳐 여러 파라오가 증축해 면적이 100헥타르를 넘는다. 대열주실에는 높이 20미터 넘는 기둥 134개가 서 있다. 종교 건축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다.
강 건너 서안은 죽은 자의 땅이었다. 왕가의 계곡에 파라오들이 묻혔다. 피라미드가 반드시 도굴됐기 때문에, 산속에 굴을 파고 숨기는 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그래도 거의 다 털렸다. 예외가 투탕카멘의 무덤이다. 1922년 하워드 카터가 찾아냈을 때 부장품 5천여 점이 그대로 있었다. 어린 나이에 죽어 작고 눈에 띄지 않는 무덤이었고, 위에 다른 무덤의 공사 잔해가 덮인 덕이었다.
기원전 14세기 아크나톤이 아톤 하나만 섬기라며 수도를 아마르나로 옮겼다. 아문 신전의 힘을 꺾으려는 시도였다는 해석이 있다. 그가 죽자 곧 되돌려졌고 그의 이름은 기록에서 지워졌다. 투탕카멘은 그의 아들로 보이며, 원래 이름 투탕카톤을 아문의 이름으로 바꿨다.
기원전 663년 아시리아가 테베를 약탈했다. 이 사건이 구약 나훔서에 언급된다.
【그래서】
이후 이집트의 중심은 북쪽으로 옮겨갔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알렉산드리아에 있었다.
기원전 27년 지진으로 크게 무너졌다. 그 뒤 로마 시대에 관광지가 됐다. 멤논의 거상이 새벽에 소리를 낸다는 이야기가 있어 하드리아누스 황제까지 보러 왔다. 로마인들이 새겨 놓은 낙서가 지금도 남아 있다. 2천 년 전 관광객의 낙서다.
【남은 것】
197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다.
고대 이집트가 3천 년을 이어졌다는 사실이 이 도시에서 실감된다. 카르나크 신전을 지은 파라오들 사이의 시간 차가 우리와 로마 사이의 시간보다 길다.
룩소르는 지금 관광 도시다. 나일강 서안의 무덤들은 아직 다 발굴되지 않았다. 왕가의 계곡에서 새 무덤이 21세기에도 발견되고 있다.
지도에서 보기: BC 3000년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