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노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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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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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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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전제군주정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제국을 넷으로 나눠 통치했고 콘스탄티누스가 다시 합쳤다. 수도가 동쪽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옮겨가고, 박해받던 기독교가 국교가 되어간다.

한반도

삼국의 각축

고구려가 낙랑을 몰아내고 남하했다. 광개토대왕·장수왕 대에 최전성기를 맞았고 백제와 신라가 동맹으로 맞섰다.

전쟁

해당 없음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2명

에자나정치330 · 악숨을 기독교 나라로 만든 왕
320 무렵 – 360 무렵

로마와 페르시아와 함께 당대 4대 강국으로 꼽히던 나라다. 홍해 무역을 쥐었고, 로마보다 앞서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축에 든다.

  • 기독교 공인
  • 자체 화폐를 찍은 아프리카 최초의 나라
  • 오벨리스크 — 한 덩이 돌로 24미터
콘스탄티누스정치313 · 로마 황제
272 – 337

기독교를 공인하고 수도를 동쪽으로 옮겼다. 제국의 무게 중심이 바뀌었다.

  •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 공인
  • 니케아 공의회 소집
  • 콘스탄티노폴리스 건설

그 무렵의 사건

330
콘스탄티노폴리스
제국의 중심이 동쪽으로 옮겨갔다. 이 도시는 1123년을 더 버틴다.
제국의 무게 중심이 동쪽으로 옮겨갔다. 이 도시는 1,123년을 더 버틴다.
325
니케아 공의회
콘스탄티누스가 소집한 첫 세계 공의회. 예수가 신과 「동일 본질」이라는 신조가 정해졌다.
아리우스는 아들이 아버지보다 낮다고 했고 알렉산드리아 주교들은 반대했다. 황제는 제국의 통일을 위해 300여 명의 주교를 니케아에 모아 결론을 강요했다. 여기서 나온 니케아 신조는 지금도 대부분의 교회가 외우고, 부활절 날짜도 이때 정해졌다. 종교 문제를 황제가 결정하는 선례가 함께 생겼다.
313
밀라노 칙령
기독교가 공인됐다. 박해받던 종교가 제국의 종교가 된다.
박해받던 종교가 공인됐고, 80년 뒤 국교가 된다.
300
바누아투의 사람들
한 섬에 100개가 넘는 말이 있다.
작은 섬무리에 서로 통하지 않는 언어가 100가지 넘게 산다. 인구 대비 세계에서 가장 언어가 많은 곳이다. 산과 바다가 마을을 갈라놓았고, 각 마을이 오래 따로 살았다는 뜻이다. 로이 마타의 무덤에는 마흔 명이 함께 묻혀 있었다.
300
야마토 정권
3세기 후반부터 7세기까지, 오늘날 나라·오사카 지역을 중심으로 성장한 야마토 정권이 일본 열도의 여러 지역 세력을 통합하며 고대 일본 국가의 기틀을 놓았다.
이 시기 곳곳에 거대한 열쇠구멍 모양의 무덤('전방후원분')이 세워졌는데, 그 규모는 지배자의 권력이 얼마나 커졌는지를 보여준다. 야마토 정권은 한반도의 백제·가야 등과 활발히 교류하며 유교·불교와 한자, 여러 선진 기술을 받아들였다. 6~7세기에는 쇼토쿠 태자가 불교를 진흥하고 중국식 관료제 요소를 도입하는 등 국가 체제를 정비했으며, 이후 다이카 개신(645년)을 거치며 천황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적 고대국가 체제로 발전해 나갔다.
372
고구려 불교 수용
소수림왕이 불교를 받아들이고 태학을 세웠다.
왕권 강화의 이념이 들어왔다. 백제·신라가 뒤이어 받아들인다.

교역로 4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해상 실크로드100 – 1500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오간 것도자기와 차, 향신료와 향목. 배 한 척이 낙타 수천 마리 몫을 실었다.
거점광저우 · 참파 · 말라카 · 스리랑카 · 캘리컷 · 호르무즈 · 바스라
인도양 계절풍 항로BC 100 – 700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오간 것로마의 금화가 인도로 흘러가고 후추가 로마로 왔다. 로마 원로원이 금 유출을 걱정할 정도였다.
거점미오스호르모스 · 아덴 · 소코트라 · 무지리스

콘스탄티노플

도시 · 330 · 보스포루스 해협을 쥔 도시. 동로마의 도읍이었고 1453년 뒤에는 이스탄불이 된다

【그때 그 자리】

기원전 7세기 그리스인이 보스포루스 해협 유럽 쪽에 비잔티온을 세웠다. 신탁이 눈먼 자들의 맞은편에 도시를 세우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건너편에 먼저 정착한 사람들이 이쪽의 훨씬 좋은 자리를 보지 못했다는 뜻이다.

자리가 그만큼 좋았다. 흑해와 지중해를 잇는 유일한 물길을 쥐고,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육로가 여기서 만난다. 골든혼이라는 천연 항구가 있고 삼면이 바다라 방어가 쉽다.

【왜 그렇게 됐나】

330년 콘스탄티누스가 여기로 수도를 옮기고 새 로마라 이름 붙였다. 사람들은 콘스탄티누스의 도시라 불렀다.

이유는 분명했다. 제국의 부와 인구가 동쪽에 있었고, 페르시아와 다뉴브 국경 양쪽에 대응하기 좋은 위치였다. 서로마가 476년에 끝난 뒤에도 이 도시가 남은 것은 이 선택 덕이다.

【어떻게 흘렀나】

5세기 초 테오도시우스 성벽이 세워졌다. 해자와 삼중 벽으로 이뤄져 1,000년간 뚫리지 않았다. 골든혼 입구에는 쇠사슬을 걸어 배를 막았다.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가 하기아 소피아를 지었다. 5년 만에 완성했고 지름 31미터의 돔이 창을 두른 아래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완공된 날 그가 솔로몬이여 내가 그대를 이겼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이 도시는 스무 번 넘게 포위됐다. 아랍이 7세기와 8세기에 두 차례 왔다가 그리스의 불에 함대를 잃고 물러났다. 이 방어가 유럽의 판도를 바꿨다는 평가가 있다. 여기가 뚫렸다면 발칸이 곧바로 열렸을 것이다.

인구가 한때 50만이었다. 중세 유럽에서 비교할 도시가 없었다. 유럽 각지의 순례자와 상인이 와서 규모에 놀랐다.

1204년 4차 십자군이 약탈했다. 같은 기독교 세력이었다. 성물과 청동상이 뜯겨 나가 베네치아로 갔다. 산마르코 대성당 앞의 청동 말 네 마리가 그것이다. 이 타격에서 도시는 회복하지 못했다.

1453년 5월 29일 메흐메트 2세에게 함락됐다. 인구는 5만 아래로 줄어 성 안에 밭을 갈고 있었다.

【그래서】

오스만의 수도가 되어 이스탄불로 불렸다. 메흐메트는 도시를 비워 두지 않았다. 각지에서 사람을 옮겨 오고, 그리스 정교회 총대주교를 다시 세웠으며, 에스파냐에서 쫓겨난 유대인을 받았다. 다시 인구 50만의 도시가 됐다.

하기아 소피아는 모스크가 됐다. 1935년 박물관이 됐다가 2020년 다시 모스크가 됐다.

【남은 것】

1,600년 넘게 두 제국의 수도였다. 로마와 오스만이다.

이름이 여러 번 바뀌었다. 비잔티온, 콘스탄티노폴리스, 이스탄불이다. 마지막 이름은 그리스어로 도시로 간다는 말이 굳은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도시라고만 해도 여기였다.

지금도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있는 유일한 대도시다.

지도에서 보기: 300년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