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투어 · 아무 곳이나 누르면 멈춤
지도에 표시
지도는 휠·더블클릭·드래그 · PgUp/PgDn은 스냅샷 이동
게이지를 Shift+드래그하면 10배 정밀 · 오른쪽 눈금은 인물·전쟁·사건이 있는 자리
틀린 데나 빠진 데를 알려주시면 확인하고 고칩니다.
이 브라우저에만 저장됩니다. 서버로 아무것도 보내지 않습니다.
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히타이트·이집트 신왕국·바빌로니아가 사신과 군대를 주고받았다.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해당 없음
작은 도시 바빌론을 물려받아 40년에 걸쳐 메소포타미아를 통일했다. 정복보다 법과 운하로 더 오래 기억된다.
해당 없음
도시 · BC 1800 · 전차 수천 대가 부딪친 청동기의 결전
전차 5,000대가 부딪친 시리아의 성
시리아 오론테스강 유역, 이집트와 히타이트 두 강대국의 세력권이 맞닿는 자리였다. BC 1800년 무렵부터 요충지 도시로 기록에 등장한다.
BC 1274년(연대는 학설에 따라 몇 년씩 오간다) 이집트의 람세스 2세와 히타이트의 무와탈리 2세가 이 도시를 두고 크게 맞붙었다 — 「카데시 전투」다. 양측 전차 병력을 합쳐 5천~6천 대에 이르렀다는 추산이 있어, 인류사에서 가장 큰 전차전 중 하나로 꼽힌다.
람세스 2세는 이집트 신전 곳곳에 이 전투를 「위대한 승리」로 새겨 놓았지만, 히타이트 쪽 기록은 오히려 자신들의 승리로 적는다. 실제로는 이집트군이 기습을 받아 위기에 몰렸다가 간신히 버틴 무승부에 가까웠다는 것이 지금의 통설이다 — 승전 기록을 자국 입장에서 과장하는 것은 고대 왕조 비문에서 흔한 일이다.
이 전투가 도시 자체를 파괴하지는 않았지만, 이후 두 제국은 BC 1259년 인류 최초로 남은 형태의 평화조약(카데시 조약)을 맺었다. 조약 점토판 사본이 튀르키예 보아즈칼레(옛 하투샤)에서, 이집트 쪽 신전 부조가 카르나크에서 각각 확인돼 서로 대조할 수 있는 드문 사례다.
지도에서 보기: BC 2000년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