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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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년 전
AD 2025
시대
주요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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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문명의 새벽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도시와 문자가 나타났다. 관개 농업이 잉여를 만들고 신전과 왕궁이 그것을 관리했다.

한반도

선사

빗살무늬토기와 간석기의 시대. 아직 국가라 부를 정치체가 없다.

전쟁

해당 없음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해당 없음

그 무렵의 사건

BC 3000
스톤헨지 착공
글자 없는 사람들이 30톤 돌을 240km 옮겼다.
문자도 금속도 없이 천 년에 걸쳐 지어졌다. 하지의 해가 정확히 힐스톤 위로 뜨도록 배치돼 있어 달력이자 신전이었다고 본다. 국가 없이도 이만한 협업이 가능했다는 증거다.
BC 2950
아비도스 왕릉
최초의 왕들이 신하까지 함께 묻혔다.
이집트 제1왕조 왕들의 무덤이 아비도스에 줄지어 있다. 주변에 하인·난쟁이·사냥개의 작은 무덤이 딸려 있어 순장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몇 대 만에 이 관습은 사라지고 인형이 대신하게 된다.

교역로

해당 없음

예루살렘

도시 · BC 3000 · 여러 번 무너지고 여러 번 다시 선 도시

여러 번 파괴되고 여러 번 다시 섰다

유대 산지의 물이 귀한 고지대에 자리 잡았다. BC 4천~3천년 무렵부터 정착이 시작된 것으로 보이며, 기혼샘이라는 하나의 수원이 초기 도시의 위치를 정했다.

BC 10세기 무렵 다윗·솔로몬이 이스라엘 왕국의 도읍으로 삼았다고 성서는 전한다. 이 시기 왕국의 실제 규모와 솔로몬 성전의 존재 여부를 두고는 고고학적 증거가 엇갈려 학계의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 「그때 그 자리」 문서 이견 항목에서 다룬다.

BC 586년 신바빌로니아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성전을 무너뜨리고 주민을 끌고 갔다(바빌론 유수). BC 538년 페르시아가 바빌론을 정복한 뒤 귀환을 허락하며 성전이 다시 섰다.

AD 70년 로마가 유대 반란을 진압하며 두 번째 성전을 또 무너뜨렸다. 지금 남은 「통곡의 벽」은 그 성전 외벽의 일부다. 135년 바르 코크바 반란 이후에는 유대인의 출입 자체가 한동안 금지됐다.

이후로도 비잔티움·이슬람·십자군·오스만·영국 위임통치를 거치며 지배자가 여러 차례 바뀌었다. 파괴와 재건이 유난히 잦았던 것은 세 종교(유대교·기독교·이슬람) 모두에게 성지였기 때문이다 — 지금도 도시의 지위를 둘러싼 다툼이 끝나지 않았다.

지도에서 보기: BC 30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니네베 다마스쿠스 트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