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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종교전쟁

가톨릭과 개신교가 국가 단위로 갈라져 싸웠다. 신앙이 곧 국제 정치였고 30년전쟁이 그 정점이었다.

한반도

조선 전기

성리학을 국시로 삼은 새 왕조. 훈민정음과 측우기의 시대이자 사림과 훈구가 다투던 때다.

전쟁 1건

이탈리아 전쟁1494 – 1559
프랑스 vs 합스부르크·스페인

부유하고 분열된 이탈리아를 두고 프랑스와 합스부르크가 65년을 다퉜다.

포르노보 1495파비아 1525로마 약탈 1527

결과화약·상비군·용병이 결합한 근대 전쟁의 실험장이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이 혼란 속에서 쓰였고,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이 전쟁으로 끝났다.

65년 · 근대 전쟁의 시작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14명

이황사상1560 · 조선 성리학을 집대성한 대학자(퇴계)
1501 – 1570

이(理)를 중심에 둔 주리론을 세워 조선 성리학의 이론적 틀을 완성했다. 도산서원에서 후학을 길렀다.

  • 「성학십도」 저술
  • 주리론 정립, 사단칠정 논쟁
  • 도산서원에서 후학 양성
이반 4세정치1547 · 처음으로 차르를 칭한 사람
1530 – 1584

카잔과 아스트라한을 정복하고 시베리아 진출을 시작했다. 동시에 친위 조직을 만들어 귀족을 학살했고, 화가 나 자기 아들을 때려 죽였다.

  • 1547년 차르 즉위
  • 카잔 정복 — 성 바실리 대성당
  • 오프리치니나 — 귀족 학살
코페르니쿠스과학1543 · 해를 가운데 놓은 사람
1473 – 1543

폴란드의 성직자이자 천문학자였다. 죽는 해에야 책을 냈다. 지구가 도는 편이 계산이 훨씬 단순하다는 것이 그의 근거였다.

  •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 죽기 직전 출판
  • 갈릴레이와 케플러가 이 위에서 시작했다
베살리우스과학1543 · 직접 해부한 해부학자
1514 – 1564

시신을 직접 해부해 갈레노스 이래 1,300년 된 오류를 바로잡았다.

  • 인체의 구조에 관하여 1543
  • 근대 해부학 확립
  • 순례길에 조난해 객사
칼뱅사상1541 · 제네바를 개신교의 로마로 만든 종교개혁가
1509 – 1564

예정설과 엄격한 교회 규율. 그의 가르침은 네덜란드·스코틀랜드·뉴잉글랜드로 퍼져 근대 서구의 정신을 만들었다.

  • 「기독교 강요」(1536)
  • 제네바 교회 개혁과 신정 통치
  • 장로교·개혁교회의 뿌리
신사임당예술1540 · 조선의 화가
1504 – 1551

풀과 벌레를 그렸다. 당시 여성의 그림이 남은 것 자체가 드물다. 아들 이이를 길렀다는 것으로만 기억되는 것이 오래된 문제다.

  • 초충도 — 풀과 벌레
  • 시와 글씨와 그림에 모두 능함
  • 친정에서 오래 지내며 작품을 남겼다
헨리 8세정치1534 · 이혼 문제로 영국 교회를 로마에서 떼어 낸 왕
1491 – 1547, 재위 1509 – 1547

여섯 번 결혼하고 두 왕비를 처형했다. 교황이 이혼을 거부하자 스스로 영국 교회의 수장이 됐다.

  • 수장령(1534) — 영국 국교회 성립
  • 수도원 해산과 재산 몰수
  • 왕비 앤 불린·캐서린 하워드 처형
오다 노부나가장군1575 · 전국시대를 끝내기 시작한 사람
1534 – 1582

조총 3천 정을 줄지어 세워 번갈아 쏘게 했다. 기병 돌격이 통하지 않게 된 날이다. 사원 세력을 무력으로 눌러 종교가 정치에 개입하던 것을 끊었다.

  • 나가시노 — 조총 삼단 사격
  • 히에이잔 불태움
  • 부하 아케치에게 살해
이이사상1575 · 퇴계와 쌍벽을 이룬 성리학자이자 개혁가(율곡)
1536 – 1584

기(氣)의 역할을 중시하는 주기론을 세우는 한편, 대동법과 십만양병설 등 현실 개혁안을 제시했다.

  • 주기론 정립, 「성학집요」 저술
  • 수미법(대동법의 원형) 등 개혁안 제시
  • 십만양병설로 국방 강화 주장
피사로장군1533 · 잉카 제국을 정복한 문맹의 정복자
1478 무렵 – 1541

168명으로 카하마르카에서 황제 아타우알파를 사로잡고 방 하나 가득한 금을 받은 뒤 죽였다. 쿠스코가 무너지고 리마가 세워졌다.

  • 카하마르카에서 아타우알파 생포(1532)
  • 쿠스코 점령(1533), 리마 건설(1535)
  • 정복자들 내분 중 암살
아타우알파정치1532 · 금으로 방을 채운 왕
1502 무렵 – 1533

형과 5년을 싸워 이긴 직후 168명의 에스파냐인에게 사로잡혔다. 몸값으로 방 하나를 금으로, 두 개를 은으로 채웠는데도 죽임을 당했다.

  • 카하마르카에서 사로잡힘
  • 몸값을 다 치르고도 처형
  • 그의 죽음으로 잉카가 무너졌다
카를 5세정치1530 · 「해가 지지 않는」 첫 제국을 다스린 황제
1500 – 1558, 재위 1519 – 1556

에스파냐·네덜란드·오스트리아·나폴리·신대륙을 한 손에 쥐었다. 루터를 심문했고 프랑스와 오스만과 싸우다 지쳐 수도원으로 물러났다.

  • 보름스 국회에서 루터 심문(1521)
  • 파비아에서 프랑스 왕 생포(1525)
  • 제국을 두 갈래로 나누고 퇴위
술레이만 대제정치1529 · 오스만 제국의 절정을 이끈 「입법자」
1494 – 1566, 재위 1520 – 1566

베오그라드와 로도스를 취하고 빈을 포위했다. 법전을 정비하고 이스탄불을 건축으로 채워 튀르크인은 그를 카누니(입법자)라 부른다.

  • 모하치 승리, 헝가리 정복(1526)
  • 빈 포위(1529)
  • 쉴레이마니예 모스크, 오스만 법전 정비
아크바르정치1580 · 무굴을 인도의 나라로 만든 황제
1542 – 1605

열세 살에 즉위해 49년을 다스렸다. 비무슬림에게 물리던 인두세를 없애고 힌두 가문을 고위직에 썼다. 글을 못 읽었는데 남이 읽어주는 것을 듣고 기억했다.

  • 지즈야 폐지
  • 궁정에 여러 종교를 불러 토론시킴
  • 실제 수확에 맞춘 세제

그 무렵의 사건

1565
몰타 대공방전
1565년, 오스만 제국의 대함대가 지중해의 전략 요충지 몰타섬을 공격했으나, 소수의 성 요한 기사단이 넉 달에 걸친 포위를 끝내 막아냈다.
오스만 제국은 지중해 패권을 굳히기 위해 몰타를 근거지로 삼은 기독교 기사단(구호기사단)을 뿌리 뽑으려 대규모 원정군을 보냈다. 병력에서 크게 밀렸던 기사단은 요새를 사수하며 끈질기게 버텼고, 결국 지원군이 도착하자 오스만군은 막대한 손실을 입고 물러났다. 이 승리는 유럽 기독교 세계에 오스만의 진격을 저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고, 6년 뒤 레판토 해전 승리로 이어지는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1575
붕당의 형성
선조 때 사림이 정계를 장악한 뒤, 이조 전랑 임명 문제를 둘러싸고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지며 붕당 정치가 시작되었다.
여러 사화를 거치면서도 꾸준히 세력을 키운 사림은 선조 즉위 이후 마침내 훈구파를 밀어내고 중앙 정계를 완전히 장악했다. 그러나 정권을 잡은 사림은 이조 전랑(인사 실무를 담당하는 요직) 임명을 둘러싼 갈등을 계기로, 1575년 김효원을 지지하는 동인과 심의겸을 지지하는 서인으로 나뉘었다(붕당의 시작). 동인은 다시 정여립 모반 사건 처리를 둘러싸고 강경파인 북인과 온건파인 남인으로 갈라졌다. 붕당은 처음에는 학문적 입장과 정책 노선의 차이에서 비롯된 정치 집단이었으나, 시간이 흐르며 상대 붕당을 배척하는 당쟁으로 흐르는 경우도 잦아, 이후 조선 후기 정치사의 큰 흐름을 이루게 된다.
1527
마자파힛
동남아 최대 해상제국이 내분과 이슬람화로 저물었다
가자 마다 재상 시절 오늘날 인도네시아 대부분을 아우르는 해상 세력권을 이뤘던 마자파힛은 15세기 후반 왕위 계승 다툼과 이슬람 항구 도시국가들의 성장으로 쇠퇴했다. 1527년 드막 술탄국이 마지막 수도를 함락하며 사실상 소멸했다.
1526
대서양 노예무역
16~19세기,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로 약 1,250만 명이 강제로 끌려갔다.
포르투갈이 1526년 첫 직항 노예선을 아메리카로 보낸 뒤 약 350년간 이어졌다. 유럽에서 무기·직물을 아프리카로, 노예를 아메리카로, 설탕·면화를 다시 유럽으로 나르는 삼각무역의 한 축이었다. 항해 중 사망률이 10~15%에 달했다.
1523
칼마르 동맹
덴마크·스웨덴·노르웨이를 하나로 묶었던 동맹이 무너졌다
1397년 세 스칸디나비아 왕국이 한 왕을 섬기기로 맺은 칼마르 동맹은 덴마크가 사실상 주도권을 쥐면서 스웨덴 귀족들의 불만을 샀다. 1520년 덴마크의 스웨덴인 대학살(스톡홀름 피바다) 이후 구스타브 바사가 반란을 이끌어 1523년 스웨덴을 독립시키며 동맹이 사실상 끝났다.
1522
마젤란의 세계일주
마젤란 함대의 마지막 배 빅토리아호가 3년 만에 세비야로 돌아왔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몸으로 증명됐다.
1519년 다섯 척 270명이 떠나 남미 끝 해협을 찾았고, 석 달 넘게 육지 없는 바다를 건너 「태평양」이라 이름 붙였다. 마젤란은 필리핀 막탄에서 죽었고 엘카노가 한 척을 이끌고 인도양과 희망봉을 돌았다. 돌아온 18명은 날짜가 하루 어긋난 것을 발견했다. 실은 향료로 항해 비용을 뽑았지만 에스파냐는 향료 제도를 포르투갈에 팔았다.

교역로 1개

희망봉 항로1500 – 1900

바스쿠 다 가마 이후 400년. 지중해를 거치지 않고 아시아에 닿는 길이 열리며 베네치아와 오스만이 밀려났다.

오간 것후추와 면직물, 그리고 나중엔 차와 아편. 지중해를 거치지 않는 길이 베네치아와 오스만을 밀어냈다.
거점리스본 · 카나리아 · 희망봉 · 모잠비크 · 고아 · 말라카

상파울루

도시 · 1554 · 커피와 이민으로 남반구 최대 도시가 되다

커피와 이민으로 남반구 최대 도시가 됐다

브라질 남동부, 해안에서 조금 떨어진 고원에 자리했다. 1554년 예수회 선교사들이 원주민 선교를 위해 세운 작은 정착지에서 시작됐다.

19세기 후반~20세기 초, 인근 고원 지대가 커피 재배에 적합하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대규모 커피 농장이 들어섰고, 이 부를 바탕으로 도시가 급성장했다. 노예제 폐지(1888년) 이후 부족해진 농장 노동력을 메우기 위해 이탈리아·일본 등지에서 대규모 이민을 받아들인 것도 이 시기다 — 상파울루가 지금도 일본 이외 지역에서 가장 큰 일본계 인구를 가진 도시로 꼽히는 배경이다.

20세기 들어서는 커피 경제를 발판으로 공업화가 진행돼 브라질 최대의 산업·금융 도시로 성장했고, 지금은 남반구 전체에서 인구 최대급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지도에서 보기: 153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리우데자네이루 산티아고 보고타 나가사키 마닐라 리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