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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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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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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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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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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고대의 끝

서쪽에는 프랑크·서고트·동고트 왕국이 들어섰고 동쪽 로마만 제국으로 남았다. 유스티니아누스가 옛 영토를 되찾으려 했지만 역병과 재정 파탄이 뒤따랐다.

한반도

삼국의 각축

고구려가 낙랑을 몰아내고 남하했다. 광개토대왕·장수왕 대에 최전성기를 맞았고 백제와 신라가 동맹으로 맞섰다.

전쟁 1건

유스티니아누스 재정복535 – 554
동로마 vs 반달 왕국·동고트 왕국

유스티니아누스는 제국을 옛 경계로 되돌리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다. 반달·동고트 왕국의 내분이 개입의 빌미가 됐다.

카르타고 533로마 공방 537–538타기나이 552

결과이탈리아와 북아프리카를 되찾았지만 20년 전쟁과 역병으로 국력만 소진했다.

20년 · 이탈리아 인구가 급감하고 국고가 말랐다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1명

유스티니아누스정치537 · 동로마 황제
482 – 565

로마법을 집대성하고 하기아 소피아를 세웠다. 옛 영토를 되찾으려다 국력을 소진했다.

  • 로마법 대전 편찬
  • 하기아 소피아 건설
  • 북아프리카와 이탈리아 재정복

그 무렵의 사건

538
백제가 불교를 전하다
일본 고대 국가의 틀이 이 길로 갔다.
성왕이 불상과 경전을 보냈다. 함께 간 것이 글자와 역법과 건축과 기와 기술이다. 일본 최초의 본격 사찰 아스카데라를 백제 기술자가 지었고, 호류지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이다.
537
하기아 소피아
유스티니아누스가 5년 만에 완공했다.
5년 만에 완공된 돔이 천 년간 세계 최대였다.
541
유스티니아누스 역병
역사에 기록된 첫 페스트 대유행.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하루 5천 명이 죽었다.
이집트에서 배를 타고 온 쥐와 벼룩이 옮긴 페스트는 541년 수도에 닿았다. 프로코피우스는 시신을 묻을 곳이 없어 성탑에 쌓았다고 썼고 황제도 앓았다. 지중해 인구의 4분의 1 이상이 죽었다는 추산이 있다. 유스티니아누스의 재정복이 힘을 잃고 제국의 세수가 무너진 데는 이 역병이 컸다. 800년 뒤 같은 균이 흑사병으로 돌아온다.
534
유스티니아누스 법전
천 년의 로마법을 하나로 정리한 「로마법 대전」. 유럽 대륙법의 뿌리가 됐다.
황제는 법학자 트리보니아누스에게 흩어진 칙령과 학설을 정리하게 했다. 칙법전·학설휘찬·법학제요가 잇달아 완성됐고 모순된 조문은 폐기됐다. 서유럽에서는 잊혔다가 11세기 볼로냐에서 재발견되어 대학 법학의 교과서가 됐고, 나폴레옹 법전을 거쳐 한국 민법에까지 그 구조가 이어진다.
527
신라 법흥왕의 불교 공인
신라 법흥왕은 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불교를 나라의 공인 종교로 삼았다. 이차돈의 순교가 이를 가능케 한 계기로 전한다.
신라 왕실은 왕권 강화를 위해 불교를 받아들이려 했지만, 토착 신앙을 지지하는 귀족들의 반발이 거셌다. 젊은 신하 이차돈은 자신을 처형하면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 예언했는데, 실제로 목을 베자 흰 피가 솟구치고 하늘이 어두워졌다는 설화가 전한다(527년). 이 사건을 계기로 귀족들의 반대가 누그러지며 불교가 공인됐다. 법흥왕은 이어 율령을 반포하고 관등제를 정비하는 등 신라를 고대 국가 체제로 끌어올렸다.
553
신라 진흥왕의 한강 유역 정복
신라 진흥왕은 백제와의 동맹을 깨고 한강 유역을 독차지했으며, 화랑도를 정비하고 대대적인 영토 확장을 이뤄 신라 전성기를 열었다.
진흥왕은 처음엔 백제와 손잡고 고구려로부터 한강 상류를 되찾았으나, 553년 돌연 동맹을 깨고 백제가 차지한 한강 하류까지 빼앗아 한강 유역 전체를 손에 넣었다. 이 지역은 중국과 직접 교류할 수 있는 서해 뱃길을 확보해준 전략적 요충지였다. 그는 또 청소년 수련 단체였던 화랑도를 국가 조직으로 정비해 유능한 인재와 장군들을 길러냈고, 대가야를 정복하는 등 사방으로 영토를 넓혀 자신이 넓힌 국경 곳곳에 순수비(비석)를 세웠다.

교역로 4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해상 실크로드100 – 1500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오간 것도자기와 차, 향신료와 향목. 배 한 척이 낙타 수천 마리 몫을 실었다.
거점광저우 · 참파 · 말라카 · 스리랑카 · 캘리컷 · 호르무즈 · 바스라
인도양 계절풍 항로BC 100 – 700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오간 것로마의 금화가 인도로 흘러가고 후추가 로마로 왔다. 로마 원로원이 금 유출을 걱정할 정도였다.
거점미오스호르모스 · 아덴 · 소코트라 · 무지리스

사비

도시 · 538 · 나당연합군에 함락됐다

【그때 그 자리】

475년 한성이 함락된 뒤 백제는 웅진, 지금의 공주로 옮겼다. 급히 쫓겨 간 곳이라 산으로 둘러싸여 방어에는 좋았지만 좁았다.

웅진 시절 64년 동안 왕이 신하에게 살해되는 일이 잇따랐다. 문주왕과 동성왕이 그렇게 죽었다. 왕권이 약하고 귀족이 강했다.

무령왕이 이를 수습했다. 지방에 왕족을 보내 다스리게 하고 중국 남조와 다시 통했다. 1971년 발견된 무령왕릉이 그 시대를 보여준다. 도굴되지 않은 채 나왔고, 무덤 주인을 밝히는 지석이 함께 있었다.

【왜 그렇게 됐나】

538년 성왕이 사비, 지금의 부여로 옮겼다. 이번에는 쫓겨 간 것이 아니라 계획한 천도였다.

백마강이 감싸 돌아 방어에 유리하면서 주변에 평야가 넓다. 바다로 나가기도 좋다.

국호를 남부여로 고쳤다. 부여를 잇는다는 선언이다. 고구려에 밀려 내려온 나라가 자기 뿌리를 다시 말한 것이다.

【어떻게 흘렀나】

사비는 계획도시였다. 나성이라는 외곽 성벽이 도시를 감쌌고, 안을 다섯 부로 나누고 각 부를 다시 다섯 항으로 나눴다. 중앙 관청을 22부로 정비했다.

이 시기 백제 문화가 절정에 닿았다.

정림사지 5층 석탑이 남아 있다. 목탑에서 석탑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유물로, 비례가 정교하다. 백제 석탑의 원형으로 꼽힌다.

1993년 능산리에서 백제금동대향로가 나왔다. 높이 62센티미터에 봉황과 용과 다섯 악사와 산과 짐승 100여 마리가 새겨져 있다. 진흙 웅덩이에 묻혀 1,400년을 견뎠다. 나당 연합군이 올 때 급히 감춘 것으로 보인다.

일본과의 교류가 이 시기에 가장 활발했다. 538년 성왕이 불교를 전했고, 기술자와 학자가 건너갔다. 일본 최초의 본격 사찰 아스카데라를 백제 기술자가 지었다.

【그래서】

660년 나당 연합군이 왔다. 소정방의 13만이 금강으로 들어오고 김유신이 탄현을 넘었다. 계백이 황산벌에서 막았으나 무너졌다.

사비성은 열흘 만에 떨어졌다. 의자왕은 웅진으로 피했다가 항복했고 당으로 끌려가 그해 죽었다.

【남은 것】

낙화암에서 삼천 궁녀가 떨어졌다는 이야기는 조선 시대 문학에서 나온 것이다. 당대 기록에는 없고, 사비의 인구 규모로 볼 때 성립하기 어렵다.

망한 나라를 방탕함으로 설명하는 방식은 승자와 후대의 붓에서 자주 나온다. 금동대향로와 정림사지 석탑과 무령왕릉이 보여주는 것은 그 설명과 전혀 다른 수준의 나라다.

2015년 공주와 부여와 익산의 백제 유적이 묶여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다.

부여는 지금 인구 6만의 작은 군이다. 122년간 한 나라의 수도였던 자리다.

지도에서 보기: 500년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