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헨조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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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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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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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문명의 새벽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도시와 문자가 나타났다. 관개 농업이 잉여를 만들고 신전과 왕궁이 그것을 관리했다.

한반도

선사

빗살무늬토기와 간석기의 시대. 아직 국가라 부를 정치체가 없다.

전쟁

해당 없음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해당 없음

그 무렵의 사건

BC 2600
모헨조다로
왕궁도 신전도 없는 계획도시.
격자로 구획된 도로, 집집마다 우물과 화장실, 도시 전체를 도는 하수도. 그런데 거대 무덤도 왕의 조각상도 없다. 누가 어떻게 다스렸는지 아직 아무도 모르고, 인더스 문자는 지금도 해독되지 않았다.
BC 2600
인더스 문명이 서다
왕궁도 거대한 무덤도 없는 계획도시.
모헨조다로와 하라파에 바둑판 거리와 상하수도를 갖춘 도시가 섰다. 벽돌 크기가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같다. 그런데 왕을 새긴 조각도, 거대한 무덤도 없다. 문자는 아직 해독되지 않아 이들이 무엇을 생각했는지 모른다.
BC 2560
기자 대피라미드
230만 개의 돌, 20년, 오차 몇 cm.
노예가 아니라 급료를 받는 노동자들이 지었다는 것이 인부 마을 발굴로 밝혀졌다. 밑변 230m의 네 변 길이 차이가 20cm 이내다. 4,000년 가까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
BC 2667
계단 피라미드
돌로 건물을 쌓는다는 발상이 처음 나왔다.
임호테프가 조세르 왕을 위해 마스타바를 여섯 층 겹쳐 올렸다. 그 전까지 건물은 진흙벽돌이었다. 이름이 남은 최초의 건축가이자 의사였고, 훗날 이집트인은 그를 신으로 모셨다.

교역로

해당 없음

모헨조다로

도시 · BC 2600 · 강의 물길이 바뀌자 떠났다

【그때 그 자리】

기원전 3천 년기 인더스강 유역에 문명이 있었다. 메소포타미아, 이집트와 함께 가장 오래된 문명 가운데 하나인데, 20세기 초까지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1920년대 하라파와 모헨조다로가 발굴되면서 드러났다. 철도 공사에 쓰려고 유적의 벽돌을 뜯어 가던 중이었다.

이 문명의 범위가 놀랍다. 100만 제곱킬로미터가 넘어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를 합친 것보다 넓다. 도시가 1,000곳 이상 확인됐다.

【왜 그렇게 됐나】

모헨조다로는 그중 가장 큰 도시다. 이름은 현지어로 죽은 자의 언덕이라는 뜻인데, 원래 이름은 모른다. 문자를 못 읽기 때문이다.

인구가 4만 안팎으로 추정된다.

【어떻게 흘렀나】

도시 계획이 이 문명의 특징이다.

거리가 남북과 동서로 반듯하게 나 있다. 벽돌 크기가 표준화돼 있어,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도시에서 같은 비율의 벽돌이 나온다. 도량형도 통일돼 있었다.

상하수도가 가장 놀랍다. 집집마다 우물과 욕실이 있고, 배수구가 거리 아래의 하수도로 이어진다. 하수도에는 점검용 뚜껑이 있어 청소할 수 있게 했다. 이 수준의 위생 설비는 이후 로마 시대까지 나오지 않는다.

큰 목욕탕이 있다. 가로 12미터, 세로 7미터, 깊이 2.4미터로 방수 처리가 돼 있다. 의례용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없는 것들이 더 흥미롭다.

왕궁이 없다. 거대한 무덤도 없다. 왕이나 신을 새긴 거대한 조각상이 없다. 다른 고대 문명이 반드시 남긴 것들이 여기에는 없다. 무기도 매우 적게 나온다. 성벽은 있지만 홍수 방어용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주거 규모의 차이도 크지 않다. 계급 격차가 작았을 가능성이 논의된다.

문자가 있었다. 인장 수천 점에 기호가 새겨져 있는데 아직 해독되지 않았다. 대부분 다섯 자 안팎으로 짧아 대조할 자료가 부족하다. 언어 계통도 모른다. 이것이 언어를 적은 문자인지 자체를 의심하는 학자도 있다.

【그래서】

기원전 1900년 무렵부터 도시가 버려졌다.

아리아인의 침입설이 오래 통용됐으나 지금은 지지받지 못한다. 학살의 흔적이 없다.

현재 유력한 설명은 환경이다. 몬순이 약해지면서 강수가 줄고, 하천의 물길이 바뀌었다. 사라스바티강으로 추정되는 물길이 말랐다는 연구가 있다. 도시가 급격히 무너진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동쪽 갠지스 방향으로 서서히 옮겨갔다는 것이다.

【남은 것】

이 문명의 유산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요가 자세로 보이는 인장, 성스러운 소의 형상, 목욕에 대한 강조가 뒷날 인도 문화와 이어진다는 견해가 있다.

198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다. 지하수의 염분이 올라와 벽돌이 부서지고 있어 보존이 어렵다.

문자를 읽지 못하는 한 이 문명이 무엇을 생각했는지 알 수 없다. 도시를 이토록 정교하게 지으면서 왕의 이름 하나 남기지 않은 사람들이 어떤 사회를 만들었는지가, 고대사에서 가장 큰 빈칸으로 남아 있다.

지도에서 보기: BC 30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하라파 카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