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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빈 체제

혁명 이전으로 되돌리려는 보수적 국제 질서. 열강이 회의로 세력 균형을 관리했지만 그 아래에서 자유주의와 민족주의가 끓었다.

한반도

조선 후기

세도정치와 삼정 문란이 겹쳤다. 서양 선박이 연안에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문을 닫아걸었다.

전쟁 3건

머스킷 전쟁1807 – 1837
마오리 부족 연합들 간의 전쟁

유럽 무역상을 통해 머스킷 총이 들어오면서, 총을 먼저 확보한 부족이 그렇지 못한 이웃 부족을 압도할 수 있게 됐다.

응아푸히족의 원정 1818무기 균형의 확산 1830년대

결과총을 먼저 손에 넣은 응아푸히족이 초기에 크게 우세했으나, 곧 다른 부족들도 총을 구하면서 전쟁이 뉴질랜드 전역으로 번졌다. 인구 이동과 전통적 세력권 재편이 뒤따랐다.

30년 · 마오리 사회 전역에 막대한 인명 피해와 재편
그리스 독립전쟁1821 – 1832
그리스 반군 vs 오스만 제국

약 4백 년간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던 그리스인들이 1821년 각지에서 봉기하며 독립전쟁이 시작됐다.

봉기 시작 1821나바리노 해전 1827

결과고대 그리스 문명에 대한 동경으로 유럽 각국에서 자원한 의용병(시인 바이런 등)들이 그리스 편에 섰고, 영국·프랑스·러시아 연합함대가 나바리노 해전에서 오스만-이집트 함대를 격파하며 전세가 결정적으로 기울었다.

11년 · 독립 승인(1832), 근대 최초의 발칸 독립국 탄생
영국-미얀마 전쟁1824 – 1885
영국 동인도회사 vs 콘바웅 왕조

콘바웅 왕조가 아삼과 마니푸르로 팽창해 영국령 벵골과 국경을 맞대자 세 차례 전쟁이 벌어졌다.

제1차 전쟁·양곤 점령 1824–1826제2차 전쟁·하부 미얀마 병합 1852제3차 전쟁·만달레이 함락 1885티보 왕 인도 유배

결과첫 전쟁으로 아라칸과 테나세림, 둘째로 양곤 일대, 셋째로 나라 전체를 잃었다. 마지막 왕 티보는 인도로 유배됐고 미얀마는 인도 제국의 한 주가 됐다.

3차례 · 왕조 멸망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25명

배비지과학1837 · 수학자·발명가
1791 – 1871

기계식 컴퓨터를 구상하다

  • 차분기관 설계
  • 해석기관 구상 1837
  • 에이다 러브레이스와 협업
패러데이과학1831 · 제본소 견습공 출신 실험가
1791 – 1867

정규 교육 없이 독학해 전자기유도를 발견했다. 그의 실험을 맥스웰이 방정식으로 완성한다.

  • 전자기유도 발견 1831
  • 발전기 원리의 토대
  • 왕립학회 크리스마스 강연 창시
라이엘과학1830 · 지질학자
1797 – 1875

동일과정설을 세우다

  • 지질학 원리 저술 1830
  • 동일과정설 확립
  • 다윈에게 큰 영향을 줌
에이다 러브레이스과학1843 · 최초의 프로그램을 쓴 사람
1815 – 1852

작동한 적 없는 계산 기계를 위한 절차를 최초로 적어 남겼다.

  • 해석기관 주석 집필 1843
  • 최초의 알고리즘 기록
  • 프로그래밍 언어 Ada의 이름
과학1827 · 물리학자
1789 – 1854

전류·전압·저항의 법칙

  • 옴의 법칙 발표 1827
  • 당대엔 무시당함
  • 전자공학의 기초 법칙
과학1843 · 물리학자
1818 – 1889

일이 열로 바뀐다는 것을 재다

  • 에너지 보존 법칙의 실험적 증명
  • 열의 일당량 측정
  • 에너지 단위 줄의 유래
젬멜바이스과학1847 · 산부인과 의사
1818 – 1865

손 씻기를 처음 주장한 의사

  • 손 소독으로 산욕열 사망률을 낮춤
  • 당대엔 배척당함
  • 사후에 세균설로 입증됨
켈빈과학1848 · 물리학자
1824 – 1907

절대영도를 계산하다

  • 절대온도 눈금 제안
  • 대서양 해저케이블 사업 참여
  • 열역학 이론 정립
무함마드 알리정치1820 · 근대 이집트를 연 사람
1769 – 1849

오스만의 알바니아계 군인으로 왔다가 실권을 잡았다. 유럽식 군대와 공장과 학교를 들였다. 아시아·아프리카에서 위로부터의 근대화를 시도한 첫 예로 꼽힌다.

  • 맘루크 학살로 권력 장악
  • 면화 재배와 공장
  • 프랑스에 유학생 파견
시몬 볼리바르장군1819 · 여섯 나라를 떼어 낸 사람
1783 – 1830

안데스를 넘어 스페인군의 뒤를 쳤다. 오늘의 베네수엘라·콜롬비아·에콰도르·페루·볼리비아·파나마가 그의 원정에서 나왔다. 하나로 묶으려 했으나 갈라졌다.

  • 보야카 1819
  • 그란콜롬비아의 결성과 해체
  • 혁명에 헌신한 자는 바다를 간 것이나 같다
샤카 줄루장군1818 · 줄루를 제국으로 만든 사람
1787 무렵 – 1828

던지는 창 대신 짧은 찌르는 창을 쓰게 하고, 소뿔 모양으로 감싸는 진형을 만들었다. 작은 부족을 10년 만에 남아프리카 최강으로 바꿨다.

  • 이클와 — 짧은 찌르는 창
  • 소뿔 진형
  • 이복동생들에게 살해
주제 지 산마르틴장군1817 · 안데스를 넘긴 장군
1778 – 1850

아르헨티나에서 군대를 만들어 눈 덮인 안데스를 넘어 칠레를 해방하고 배로 페루로 갔다. 볼리바르와 만난 뒤 지휘권을 넘기고 스스로 유럽으로 떠났다.

  • 안데스 도하 — 5,000명이 4,000m를 넘었다
  • 과야킬 회담 뒤 은퇴
웰링턴장군1815 ·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을 꺾은 「철의 공작」
1769 – 1852

이베리아반도에서 프랑스군을 몰아냈고 워털루에서 프로이센군과 함께 나폴레옹의 마지막 도박을 끝냈다. 뒤에 총리도 지냈다.

  • 반도전쟁 — 살라망카·비토리아 승리
  • 워털루 전투 승리(1815)
  • 영국 총리(1828–1830), 가톨릭 해방법
메테르니히정치1815 · 빈 체제를 설계한 반동의 재상
1773 – 1859

나폴레옹 이후의 유럽을 왕정과 세력 균형으로 되돌렸다. 33년간 혁명을 억눌렀으나 1848년 혁명에 쫓겨났다.

  • 빈 회의 주도(1814–1815)
  • 카를스바트 결의 — 언론·대학 통제
  • 1848년 혁명으로 실각·망명
나이팅게일사회1855 · 크림 전쟁의 「램프를 든 여인」, 근대 간호학의 창시자
1820 – 1910

스쿠타리 병원의 사망률을 위생 개선으로 40%에서 2%로 낮췄다. 통계 그래프로 정부를 설득한 최초의 사람 중 하나다.

  • 크림 전쟁 야전병원 간호(1854–1856)
  • 나이팅게일 간호학교 설립(1860)
  • 「장미 도표」— 통계 시각화의 선구
리빙스턴탐험1855 · 아프리카 내륙을 걸어서 횡단한 선교사 탐험가
1813 – 1873

빅토리아 폭포에 이름을 붙였고 노예무역의 참상을 알렸다. 「리빙스턴 박사님이시죠?」라는 인사가 그를 다시 세상과 이었다.

  • 아프리카 대륙 횡단(1853–1856), 빅토리아 폭포
  • 잠베지 원정, 노예무역 고발
  • 스탠리와 조우(1871), 잠비아에서 사망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과학1858 · 박물학자
1823 – 1913

다윈과 동시에 진화론에 이르다

  • 자연선택 이론 독자 도달 1858
  • 다윈과 공동 발표
  • 생물지리학의 기초를 놓음
테쿰세장군1811 · 부족을 하나로 묶으려 한 사람
1768 무렵 – 1813

땅은 누구의 것도 아니어서 팔 수 없다고 했다. 흩어진 부족을 하나의 연합으로 묶어 서쪽 확장을 막으려 했다. 1813년 전사하며 그 구상도 끝났다.

  • 부족 연합 결성
  • 땅은 팔 수 없다는 논리
  • 템스 전투에서 전사
다윈과학1859 · 비글호의 박물학자
1809 – 1882

갈라파고스의 새들을 보고 자연선택을 떠올렸다. 20년을 미루다 종의 기원을 냈다.

  • 비글호 항해 1831–1836
  •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
  • 종의 기원 출판 1859
아보가드로과학1811 · 물리학자
1776 – 1856

기체 속 입자 수의 법칙

  • 아보가드로 가설 1811
  • 분자 개념을 도입
  • 사후 재조명돼 인정받음
호세 아르티가스정치1811 · 우루과이 독립의 아버지
1764 – 1850

스페인, 이어 이 지역을 점령한 브라질(포르투갈)에 맞서 게릴라식 저항운동을 이끌며 우루과이 독립운동의 기틀을 놓았다. 정작 자신은 독립을 보지 못한 채 파라과이로 망명해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 스페인·포르투갈에 맞선 저항운동 지도
  • 토지 개혁 등 급진적 사회 개혁 시도
  • 말년 파라과이 망명, 사후 '독립의 아버지'로 추앙
최제우사상1860 · 동학을 연 사람
1824 – 1864

사람이 곧 하늘이라 했다. 신분에 상관없이 사람이 같다는 말은 그때 조선에서 위험한 말이었다.

  • 1860년 동학 창시
  • 인내천 — 사람이 곧 하늘
  • 1864년 혹세무민으로 처형
베니토 후아레스정치1860 · 멕시코의 원주민 대통령
1806 – 1872

사포텍 원주민 출신으로 스페인어를 열두 살에 배웠다. 프랑스가 세운 황제를 몰아내고 공화국을 지켰다. 교회와 군의 특권을 없앤 개혁법을 밀어붙였다.

  • 레포르마 개혁
  • 막시밀리안 황제 축출
  • 이웃의 존중이 곧 평화다
주세페 가리발디장군1860 · 천 명의 의용군으로 시칠리아와 나폴리를 얻어 사르데냐 왕에게 바쳤다
1807 – 1882

천인원정대를 이끌고 시칠리아와 나폴리 왕국을 점령한 뒤, 권력을 챙기지 않고 그대로 사르데냐 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에게 헌납했다. 이탈리아 통일의 상징적 인물이다.

  • 천인원정대(1860)로 시칠리아·나폴리 점령
  • 점령지를 사르데냐 왕에게 헌납
  • 여러 나라의 독립운동에도 참여한 국제적 혁명가
김정호과학1861 · 대동여지도를 만든 사람
1804 무렵 – 1866 무렵

22첩을 접었다 펴면 전국이 된다. 목판에 새겨 여러 벌 찍을 수 있게 했다. 지도를 소수의 비밀에서 꺼낸 것이다.

  • 대동여지도 — 22첩 목판본
  • 10리마다 눈금을 넣어 거리를 재게 함
  • 전국을 답사했다는 이야기는 후대의 창작으로 본다

그 무렵의 사건

1838
트레일 오브 티어스
1838년 체로키족 등 미국 남동부 원주민 약 6만 명이 강제로 서쪽 인디언 준주로 이주당했다. 수천 명이 도중에 죽었다.
1830년 인디언 이주법에 따라 연방 정부가 강행했다 — 대법원이 체로키족의 손을 들어줬는데도 잭슨 대통령이 이를 무시했다. 체로키족만 4천 명 가까이 숨졌다고 추산된다.
1831
그란콜롬비아
시몬 볼리바르의 꿈이 10년 만에 갈라졌다
시몬 볼리바르가 스페인으로부터 해방시킨 남미 북부를 하나의 국가로 묶어 세운 그란콜롬비아는 지역 간 이해관계 차이를 끝내 좁히지 못했다. 볼리바르가 병으로 물러난 직후인 1830~1831년 베네수엘라와 에콰도르가 차례로 이탈하며 콜롬비아·베네수엘라·에콰도르 세 나라로 갈라졌다.
1830
벨기에 독립
1830년, 브뤼셀에서 시작된 봉기로 벨기에가 네덜란드 연합왕국에서 분리독립했다.
빈 회의 이후 개신교 네덜란드와 한 나라로 합쳐졌던 가톨릭·프랑스어권 남부 지역 주민들의 불만이 오페라 공연장에서의 소요를 계기로 폭발했다. 유럽 열강들은 이 신생국을 영세중립국으로 인정했지만, 이 중립은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침공으로 깨지게 된다.
1840
와이탕이 조약
영어본과 마오리어본의 뜻이 다르다.
마오리 부족장들과 영국이 맺은 조약이다. 영어본은 주권을 넘긴다고 썼고 마오리어본은 통치를 맡긴다고 썼다. 그 차이가 전쟁과 땅 몰수로 이어졌고, 지금도 이 조약을 근거로 배상 심판이 열린다.
1825
철도의 개통
스티븐슨의 증기기관차가 스톡턴과 달링턴 사이를 달렸다. 인류의 속도가 말에서 기계로 바뀌었다.
9월 27일 「로코모션」호가 석탄과 승객 450명을 싣고 40km를 시속 20km 안팎으로 달렸다. 5년 뒤 리버풀-맨체스터 철도가 정기 여객 운행을 시작했고, 1840년대 영국은 「철도 광풍」에 빠졌다. 미국은 1869년 대륙횡단 철도를, 러시아는 1916년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놓았고 조선엔 1899년 경인선이 열렸다. 표준시와 시간표, 통근과 관광이 철도가 만든 것이다.
1845
아일랜드 대기근
1845년부터 5년 가까이 감자 마름병이 반복되며, 감자에 크게 의존하던 아일랜드에서 약 100만 명이 굶어 죽고 100만 명이 넘게 나라를 떠났다.
당시 아일랜드를 지배하던 영국 정부의 미흡하고 늦은 구호 대응은 이후 두고두고 비판받았으며, 곡물 등 다른 식량이 아일랜드 밖으로 계속 수출된 사실은 특히 큰 분노를 샀다. 대기근을 피해 떠난 이민자들은 주로 미국으로 건너가 훗날 아일랜드계 미국인 공동체의 뿌리가 됐고, 이 시기의 기억은 아일랜드 민족주의와 독립운동을 키우는 밑거름이 됐다.

교역로 2개

희망봉 항로1500 – 1900

바스쿠 다 가마 이후 400년. 지중해를 거치지 않고 아시아에 닿는 길이 열리며 베네치아와 오스만이 밀려났다.

오간 것후추와 면직물, 그리고 나중엔 차와 아편. 지중해를 거치지 않는 길이 베네치아와 오스만을 밀어냈다.
거점리스본 · 카나리아 · 희망봉 · 모잠비크 · 고아 · 말라카
대서양 삼각무역1600 – 1850

유럽의 공산품 → 아프리카의 노예 → 아메리카의 설탕·면화 → 유럽. 세 대륙이 하나의 경제로 묶였다.

오간 것유럽의 총기·직물 → 아프리카의 노예 → 아메리카의 설탕·면화. 1,200만 명이 대서양을 건넜다.
거점리버풀 · 리스본 · 기니만 · 카리브 · 버지니아

멜버른

도시 · 1835 · 금이 나오며 한때 세계에서 가장 부유했던 도시

금이 나오며 한때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였다

오스트레일리아 남동부, 포트필립만에 자리했다. 1835년 자유 이민자들이 세운 정착지로, 시드니와 달리 죄수 유형지가 아닌 자발적 이주로 시작된 도시라는 점이 자주 강조된다.

1851년 인근 빅토리아 지역에서 대규모 금맥이 발견되며 「골드러시」가 일었다. 이 시기 유입된 부와 인구로 19세기 후반 멜버른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유한 도시로 성장해, 「마본빌리스(경이로운 멜버른)」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1901년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이 결성됐을 때 캔버라가 완공되기 전까지(1927년까지) 임시 수도 역할을 하기도 했다. 지금은 시드니와 함께 오스트레일리아를 대표하는 대도시로, 문화·스포츠 도시로서의 정체성이 강하다.

지도에서 보기: 1815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두바이 시카고 오클랜드 홍콩 싱가포르 블라디보스토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