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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50년 동안 황제가 스무 명 넘게 바뀌었다. 군대가 황제를 세우고 죽였으며 은화의 은 함량이 5퍼센트 아래로 떨어졌다. 국경이 동시에 뚫렸다.
신라·고구려·백제가 차례로 서고 가야가 낙동강 유역에 자리 잡았다. 아직 연맹왕국 단계로 왕권이 강하지 않았다.
왜파르티아를 무너뜨린 사산조가 옛 아케메네스 영토의 회복을 내걸었다. 로마의 동방 속주가 바로 그 대상이었다.
결과에데사에서 황제 발레리아누스가 사로잡혔다. 로마는 처음으로 대등한 상대를 만났다.
국력이 위의 5분의 1인 촉을 이끌고 다섯 번 북벌했다. 이기려는 것이 아니라 지지 않기 위한 전쟁이었다는 해석이 많다.
야마타이국의 여왕으로 위나라에 사신을 보내 친위왜왕 칭호와 거울 100장을 받았다. 나라가 어디였는지는 지금도 규슈설과 기나이설로 갈린다.
황건적 진압으로 이름을 얻고 헌제를 옹립해 명분을 쥐었다. 둔전제로 군량을 자급한 것이 다른 군벌과의 결정적 차이였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도시 · 229 · 손오의 도읍, 지금의 난징
손오의 도읍. 지금의 난징
장강 하류 남안, 방어에 유리한 구릉과 강이 어우러진 자리다. 본래 「말릉」이라 불리다, 229년 손권이 오나라를 세우고 도읍으로 정하며 「건업(業을 세운다)」으로 이름을 바꿨다.
삼국시대 오나라의 수도로서 강남 개발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위·촉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록이 적게 남아 덜 조명되지만, 손권 정권이 이 도시를 중심으로 강남을 안정적으로 통치한 것이 훗날 동진·남조 왕조들이 같은 자리(건강으로 개칭)를 도읍으로 삼는 선례가 됐다.
이후 동진·송·제·양·진(南朝) 등 여러 왕조가 이름을 「건강」으로 바꿔 이어서 도읍으로 썼고, 명나라 초 다시 「남경(난징)」이라는 이름으로 도읍이 되면서 지금까지 이어지는 이름을 얻었다.